컨텐츠 바로가기

11.18 (월)

패션계의 큰 별이 지다...칼 라거펠트 타계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주재현 기자]

[문화뉴스 MHN 주재현 기자] 패션계의 세계적 거장 칼 라거펠트가 프랑스 파리 현지 시간 19일 85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그는 지난 1월 파리에서 열린 샤넬 오뜨 꾸뛰르 패션쇼에도 참석하지 못하는 등 최근 몇 주 사이 건강상태가 많이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었다.

샤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칼 라거펠트는 샤넬의 부흥을 이끈 인물이다. 지난 19일 샤넬은 인스타그램 공식 계정에 "칼 라거펠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죽음을 발표하게 된 것은 깊은 슬픔"이라며 그의 부고를 알렸다. 샤넬을 "그(칼 라거펠트)는 '내 일은 그녀(가브리엘 샤넬)이 한 일이 아니라 그녀가 했을 일을 하는 것이다'고 말하곤 했다. "샤넬은 그의 재능 덕을 많이 봤다"며 그를 추모했다.

문화뉴스

ⓒ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연합뉴스

그의 부음이 알려지자 국내외에서 추모 물결이 이어졌다.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 회장은 "소중한 친구의 죽음에 무한한 슬픔을 느낀다"고 말했고 이탈리아 명품 베르사체의 도나텔라 베르사체는 개인 인스타그램 계정에 "당신의 천재성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줬다"며 추모에 동참했다.

국내에서도 패션계를 중심으로 추모가 이어졌다. 모델 한혜진은 지난 20일 개인 인스타그램에 "팬으로서, 모델로서, 그리고 여자로서 그와 함께 일할 수 있어 행복했다"며 "그가 없는 펜디와 샤넬은 상상하기 힘들지만 그의 마지막 컬렉션들이 잘 마무리되길 기도한다"고 밝혔다.

문화뉴스

ⓒ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연합뉴스

1933년생인 라거펠트는 1954년 국제양모 사무국 콘테스트에서 코트 부문 1등을 하며 파리 패션계에 입문했다. 이후 피에르 발망, 장 파투 등의 브랜드에서 경력을 쌓았다. 이때부터 보수적인 디자인에 반감을 드러내며 '패션계의 아웃사이더'를 자처하기도 했다.

1964년부터 패션 브랜드 끌로에 수석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1965년에는 브랜드 펜디에 합류해 펜디를 세계적 브랜드의 반열에 올렸다. 이후 1982년 샤넬에 공식 영입돼 '샤넬의 디자이너'가 됐다. 당시 오뜨 꾸뛰르(고급 양복) 디자이너가 아닌 기성복 디자이너가 영입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독특한 감각과 혁신으로 샤넬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샤넬을 부활시켰다'는 평을 받았다. 고급 브랜드에 대중적인 문화 요소를 결합시켜 젊은 층까지 샤넬의 열성 팬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그의 이런 시도는 이후 구찌의 톰 포드, 디올의 존 갈리아노 등 이후 다른 명품 디자이너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며 '패션계의 교황'으로 불리기도 했다.

한편 그의 장례식은 화장이 될 예정이다. 현지 시간 20일 칼 라거펠트 대변인은 AFP통신에 "장례절차는 그의 유지를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칼 라거펠트는 생전 "매장은 끔찍하다. 무덤에 남아 사람들을 거추장스럽게 하는 것은 질색이다"며 자신이 죽으면 화장해 달라고 말한것으로 알려졌다.

<저작권자 Copyright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