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법 대책예산 280억원, 단기일자리 6만여개 창출에 2600억
野 "추경 사업, 실효성 검토 없이 정치적 목적으로 제출"
'문화가 있는 날'은 매달 마지막 수요일과 그 주간에 영화관, 미술관, 박물관, 스포츠시설 등 주요 문화시설 입장권을 할인해주거나 무료로 개방하고, 공연 등 기획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4월 국회에 제출한 추가경정예산안 사업설명자료에서, '문화가 있는 날' 사업 중 기획사업을 확대하겠다며 25억원을 편성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에서 밝힌 이번 추경 목적은 미세먼지 대응 등 국민안전과 선제적 경기 대응, 민생경제 긴급지원이다. 문체부는 설명자료에서 "경제적으로 열악한 상황에 있는 청년 예술가에 대한 지원 필요성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야당에선 이런 사업이 추경으로 긴급히 편성해야 할 사업이냐고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국가재정법에 따르면, 추경은 △전쟁이나 대규모 재해가 발생한 경우 △경기 침체·대량 실업 등 대내외 여건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한 경우 △법령에 따라 국가가 지급해야 하는 지출이 발생한 경우 편성할 수 있다. '문화가 있는 날' 사업이 과연 이런 기준에 부합할 정도로 시급한 사업은 아니라는 것이다.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이 9일 정부 21개 부·처·청이 국회에 제출한 '추경 사업 설명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이처럼 추경의 목적과는 동떨어졌다는 논란을 부를 수 있는 사업이 다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경기 대응'을 위해서 편성했다는 예산 항목 중 상당한 예산이 단기·임시직 일자리에 돌아가거나 현금성 지원 사업도 적지 않았다.
지난 4월 18일 오전 더불어민주당과 기획재정부가 국회 의원회관에서 당정협의를 갖고 국회에 제출할 추경안을 논의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조선일보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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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 추경'이라더니…제로페이, 체육관 짓기, 강사법 대책 예산도 추경
정부는 지난 4월 25일 "미세먼지로 인한 국민고충을 해결하고 선제적 경기대응을 하겠다"면서 6조7000억원 규모의 '미세먼지·민생' 추경을 편성했다. 세부적으로 미세먼지 등 국민 안전에 2조2000억원, 경기·민생에 4조5000억원을 각각 배정했다. 추경 예산으로 실시할 사업은 총 223개다.
그러나 '문화가 있는 날'처럼 추경 요건에 맞는지 의문이 드는 사업이 적지 않았다. 문체부는 이번 추경안에서 '국민체육센터 건립'에 163억원을 편성했다. 수영장, 체육관, 체력단련장 등 생활체육시설을 세금으로 짓는 사업이다. 다른 추경 사업엔 '추경 필요성'으로 미세먼지 해결이나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그러나 '국민체육센터 건립'의 경우, 이런 설명도 없다. 단지 "학생, 근로자, 지역주민이 함께 활용할 수 있는 체육활동 공간을 확충하여 국민 체육복지 향상에 기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중소벤처기업부의 경우서울시가 주도하고 부산·인천, 경남·전남 등 몇몇 광역지자체가 동참한 '제로페이'의 조기정착을 위한 추가 예산을 편성했다. 단말기 지원과 홍보·마케팅 사업에 76억원 등이다. 그런데 제로페이 확대 사업 예산은 이미 올해 본예산으로 60억원이 편성돼있다. 그런데 이 예산으로는 25만개 점포에만 제로페이 지원을 할 수 있다며, 본예산보다 많은 금액을 추경으로 편성해 연말까지 총 50만개 점포에 제로페이를 보급하겠다는 것이다. 중기부는 "현재(올해 4월)까지 가맹점은 17만개이고, 연말까지 70만개 점포가 가맹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추경 확보를 통해 최소 50만개 점포에 대한 가맹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교육부는 '강사법(개정 고등교육법)'으로 대량 해고 위기에 놓인 시간강사를 위해 추경 예산으로 280억원을 편성하겠다고 했다. 교육부는 예산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추경을 통해 연구 역량이 뛰어난 비(非)전임 연구자에 대한 연구지원이 시급하다"면서 "올해 8월 강사법 시행에 따른 고용여건 변화, 학과 구조조정 등을 고려할 때, 인문사회 분야 강사의 고용 감소로 인한 연구력이 손실될 우려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 관계자는 강사들도 대량 해고 사태가 우려된다는 이유로 반대해온 강사법 시행을 작년 말 정부·여당이 대책 없이 밀어붙여놓고 추경으로 예산을 편성하겠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했다.
교육부는 또 국립대 건물에 사용된 석면 제거 비용 220억원을 편성했다. 이 사업비는 원래 올해 예산에 220억원이 반영돼 있다. 교육부는 지난해부터 이 사업을 시작해, 10년간 시행하기로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런데 본예산만큼 추경 예산을 더 편성해 사업 기간을 1년 단축하겠다는 게 교육부의 추경 예산 요청 이유다. 그러나 이 역시 이번 추경의 취지와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오른쪽 두 번째)과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오른쪽 첫 번째)가 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의 한 편의점에서 제로페이로 물건을 구매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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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행안·고용부 등 "추경으로 단기 일자리 6만여개 창출"
이번 추경안에서 가장 금액이 큰 부분은 '경기 대응 목적'의 예산이다. 그런데 이 가운데 상당수 일자리 사업이 '아르바이트' 수준의 단기 공공 일자리다. 보건복지부, 행정안전부, 고용노동부, 산림청이 이번 추경을 통해서 만들겠다는 단기 일자리만 6만개가 넘는다.
보건복지부는 1345억원을 들여 자활근로 참여자(1만명)와 공익활동형 노인일자리(3만개)를 확대하고 공익활동 참여기간도 2~3개월 연장키로 했다. 행정안전부는 1011억원을 투입해 9개 고용·산업 위기지역과 강원 특별재난지역에 희망근로 사업으로 1만1609명을 선발한다. 산림청은 209억원을 들여 산불예방진화대의 활동 기간을 30일 연장하는 등 단기일자리 1만여개를 만들기로 했다. 고용노동부도 81억원을 들여 중장년층 5000명에게 사회공헌 활동 지원비를 주고 지역사회 서비스 일자리 1000개를 제공키로 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자유한국당 간사인 추경호 의원은 "정부·여당이 국가재정법상 추경을 편성할 수 있는 요건에 맞지도 않는 추경을 무작정 요구하고 있다"고 했다. 추 의원은 "추경안에 편성된 다수 사업들이 갑자기 눈먼 돈이 생긴 것처럼, 실효성과 필요성을 전혀 검토하지 않고 정치적 목적으로 추경에 포함됐다"며 "이런 사업들은 본예산 심사 때 실효성과 필요성을 철저히 따져야 한다"고 했다. 또 정부가 추경으로 창출하겠다는 단기 일자리에 대해서도 "경제가 외부 충격을 받았을 때 정부가 일시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단기일자리인데, 지금 경제 상황은 그런 상황이 아니다"며 "추경으로 땜질식 처방을 할 게 아니라 일자리난을 가져온 현 정부 정책 기조의 변화가 우선돼야 한다"고 했다.
[손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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