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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0 (토)

이슈 미국 흑인 사망

“인종차별·독재는 안 돼”…시민들은 침묵하지 않았다 [이슈로 본 세계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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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에 맞선 행동

[경향신문]

미 ‘조지 플로이드’ 사망에
들불처럼 전역서 항의 시위
각국에 ‘흑인인권운동’ 번져

어떤 권력은 떠났고 어떤 권력은 남았다. 권력의 얼굴은 그대로지만, 무서운 민심을 확인한 나라도 있었다. 세계의 시민들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키기 위해 죽고 다치고, 목소리를 내며 행동했다.

지난 5월25일(현지시간)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발생한 흑인 조지 플로이드(당시 46세) 사망사건은 미 전역과 세계 각국에서 흑인인권운동으로 번졌다. 플로이드는 식당에서 20달러(약 2만원) 지폐를 지불했는데 이를 위조지폐로 의심한 식당주인이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비무장상태였던 그를 폭력적으로 체포했다. 백인 경찰 데릭 쇼빈은 8분46초 동안 수갑을 찬 그의 목을 무릎으로 눌렀다. 땅바닥에 얼굴을 파묻은 채 엎드린 플로이드는 의식불명에 빠진 뒤 숨졌다. 공식 사인은 ‘살인’으로 판명됐다.

플로이드가 숨지는 장면은 거리 폐쇄회로(CC)TV와 현장을 목격한 시민들의 휴대전화에 촬영됐고, 소셜미디어에 공유됐다. 그가 의식을 잃어가며 남긴 “숨을 쉴 수가 없어요”라는 말은 여전히 탄압받는 흑인과 소수자 현실을 상징하는 말이 됐다. 다음날부터 미국 전역에서 시위가 시작되고, 세계 각국에서도 동조시위가 일어났다. ‘BLM(Black Lives Matter·흑인 생명은 소중하다)’이라는 구호하에 곳곳에서 평화시위가 벌어졌다.

그러나 일부에서 방화, 약탈이 발생하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폭력사태에 초점을 맞춰 야간통행금지를 실시하고 국가경비대원들을 투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폭동진압법’을 적용해 시위대 해산을 위해 군까지 투입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언급했다가 더 큰 비판을 받았다.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언론들은 후에 “플로이드의 죽음이 흑인들을 11월 대선 투표장으로 몰려가게 한 중요한 원인 중 하나”였다고 했다.

벨라루스서는 독재에 맞서고
총리 퇴진·군주제 개혁 등
태국은 민주화운동 힘 받아

인구 944만명, 동유럽의 작은 나라 벨라루스는 지난 8월 이후 세계의 관심을 받고 있다. 1994년부터 26년째 집권 중인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이 8월9일 대선에서 80% 이상을 득표하며 또 당선되자 시민들과 야권은 ‘개표조작’ 가능성을 제기했다. 국제사회에서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로 낙인찍힌 루카셴코 대통령이 도둑 취임식(9월23일)을 하고 부정통치를 이어나가는 것은 더 이상 ‘뉴스’가 아니다. 세계를 놀라게 한 것은 벨라루스 시민들의 저항과 연대였다. 시민들은 지난 21일까지 20주째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시위를 열 때마다 수백명이 연행되고 부상자가 발생하지만, 시민들은 ‘바이헬프’라는 펀딩사이트를 만들어 서로 돕고 있다. 특히 중심엔 여성들이 있다. 루카셴코에 맞서 출마해 2위를 득표한 스베틀라나 티하놉스카야는 국제사회 회의에 벨라루스 지도자 자격으로 참석해 벨라루스의 현실을 알리고 국제사회 연대를 호소하고 있다. 그를 돕는 마리야 콜레스니코바, 베로니카 쳅칼로도 여성운동가다.

벨라루스를 상징하는 색깔인 흰색과 빨간색을 이용한 우산과 꽃, 털실(뜨개질 시위) 등으로 평화적 시위를 주도한 것도 여성들이었다. 수도 민스크에선 많은 예술가들이 밤마다 거리 곳곳에 정치적 저항을 상징하는 그림을 그리는 ‘예술시위’도 벌이고 있다. 유로뉴스는 22일 “사진가, 화가 등 많은 예술가들이 독재를 대체하는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전파하고 있다”고 전했다.

태국에서도 민주화운동이 이어졌다. 지난 2월 헌법재판소가 선거법 위반 등을 이유로 진보정당인 퓨처포워드당 해산을 결정하자 대학가를 중심으로 시위가 시작됐다. 시위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중단됐다가 7월 중순 재개됐다. 쁘라윳 짠오차 총리 퇴진, 개헌, 군주제 개혁 요구까지 분출하면서 시위는 연말까지 5개월간 이어졌다. 태국에선 국왕이 신성시되는 데다 최장 15년형에 처할 수 있는 왕실모독죄가 있어 왕실 개혁 요구가 금기시돼 왔다.

특히 시위대가 영화 <헝거게임>에 나왔던 세 손가락 인사를 사용하면서 세 손가락을 높이 든 모습은 민주화를 갈망하는 저항의 상징적인 장면이 됐다. 시민들은 지난 12일 유엔에 “왕실모독죄까지 이용해 시위대를 탄압하는 왕실로부터 시민들을 지켜달라”는 청원서를 전달했다. 시위대는 지난 14일 연말을 맞아 잠시 휴지기에 들어간다면서 새해에 더 많은 참가자와 더 강력한 시위를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시위대의 지도부 가운데 한 사람인 아논 남빠 인권변호사는 “올해는 서곡에 불과하다”고 했다.

장은교 기자 ind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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