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급적용은 위헌이라 적용 불가능하다는 현실적 판단이 나오지만, 일각에서는 당정이 과거 임대차법 등 소급입법 소지를 가진 정책을 추진해오지 않았느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비리 행위자를 패가망신시켜야 할 것"이라는 정세균 국무총리의 공언도 무색해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지난 9일 경남 진주시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에서 압수수색을 마친 경찰이 압수품을 가지고 건물 밖으로 나오고 있다. /김동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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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지난 19일 업무 중 알게 된 택지 개발 관련 미공개 정보를 부적절하게 이용할 때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공공주택특별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 개정안은 이달 중 본회의에서 통과돼 즉시 시행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 개정안은 공공주택특별법 개정안 14건과 한국토지주택공사(LH)법 개정안 10건을 병합심사해 위원회의 대안으로 정한 것이다. 개정안은 주택지구 지정과 관련한 미공개 정보를 부동산 매매에 사용하거나 타인에게 제공·누설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투기 이익의 3~5배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투기 이익이 50억원 이상일 경우 최대 무기징역까지 내려진다. 범죄 행위로 취득한 재물이나 재산상 이익은 몰수·추징된다.
기존 공공주택특별법은 5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 벌금이 처벌규정이었고, 몰수·추징 조항은 없었다. 개정안은 전보다 처벌을 대폭 강화한 것이다.
당초 의원들이 낸 개정안 중 일부에는 소급적용이 명시됐으나, 위원회 대안에선 빠진 것으로 나타나 논란이 됐다. 회의록을 보면, 허영·김교흥 민주당 의원, 심상정 정의당 의원 등은 소급적용 방안을 주장했고 소위원장인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반대했다.
조 의원은 "몰수나 추징, 혹은 형벌의 소급효가 인정되는 것은 친일 재산이나 부패 재산 같은 것"이라면서 "국민의 재산과 신체에 위해를 가하는 소급효는 거의 백발백중 위헌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이어 "국민 법 감정을 생각해 소급효를 하면 시원하겠지만, 분노로 인해 헌법을 뛰어넘는 입법을 하는 것은 극히 위험하다"는 의견을 냈다.
전문가들도 소급적용은 위헌적이라 불가피한 결정이었다고 해석한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국민 정서상 소급적용을 해야 마땅하겠지만, 법치주의의 근간을 생각하면 소급적용은 나쁜 입법"이라면서 "국민감정에 편승해 소급적용한다고 해도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범죄 행위가 진행 중인 상태에서 입법을 변경하는 ‘부진정소급’은 헌법 위반이 아니지만, LH 직원 사례는 이미 투기가 끝난 상태여서 진정소급이지 부진정소급이 아니다"면서 "국회에서 소급적용을 반영해 입법한다고 하더라도 위헌 결정이 날 것"이라고 했다.
다만 국민 사이에선 못마땅하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지난 12일 ‘왜 임대차법만 소급적용했나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LH) 부패방지 5법은 위헌성 논란 때문에 소급입법이 어려워 적용할 수 없을 거라고 한다"면서 "도대체 왜 임대차법은 소급입법한 건가요?"라고 적었다.
실제 정부는 지난해 7월 임대차법을 시행하며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 임대료 5% 제한 등을 신규 계약뿐만 아니라 법 시행 전 기존 계약에도 적용했다. 소급 적용 논란이 일자, 국토부는 "임차인을 폭넓게 보호하고 갑작스러운 전월세 가격 급등을 방지할 필요가 있어 존속 중인 계약에도 임대차 3법을 적용할 공익상 필요가 상당히 높다"고 했다. 이보다 앞선 6·17 부동산 대책에서도 정부는 조정대상지역과 투기과열지구를 지정하며 주택담보대출비율(LTV) 규제를 소급 적용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에 대해 심 교수는 "정부가 위 사례처럼 소급적용을 해온 것도 물론 나쁜 정책이었다"면서도 "임대차법 소급입법 등 사례는 재산상 피해를 주는 사례이고, 이번 LH 직원을 처벌하는 입법은 형법이라 더 엄격하게 해석할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장 교수도 "법률적으로 보면 임대차법 변경 등은 (기존과 달리 앞으로 이렇게 하겠다며) 앞선 약속을 지키지 않은 문제이지 소급의 문제는 아니라고 판단한다"고 했다.
한편, LH 직원들은 현재 경찰에 부패방지법으로 입건돼 있다. 이 법은 공직자가 업무처리 중 알게 된 비밀을 이용해 재물 또는 재산상 이익을 취했을 때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다. 투기 이익 몰수와 추징도 처벌 규정으로 두고 있다.
다만 공공주택특별법 개정안은 ‘미공개 정보를 부동산 매매에 사용한 경우’를 처벌하는 반면 부패방지법은 ‘재물 또는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한 경우’를 처벌해 아직 토지보상이 이뤄지지 않은 LH 직원에 대해 법 적용이 힘들다는 의견도 일각에서 나온다. 공공주택특별법 개정안이든 부패방지법이든 업무 연관성을 입증해야 한다는 숙제도 수사기관은 갖고 있다.
고성민 기자(kurtg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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