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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목)

이슈 러시아, 우크라이나 침공

러, 우크라 침공 두고…결속 과시한 미·유럽, 거리 두는 중·인도, 국익 따라 제각각인 중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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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개진 세계

[경향신문]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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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러 규탄 결의안’ 놓고
러와 협력 관계 중국 ‘기권’
내전 도움받은 시리아 ‘반대’
중동·아프리카는 러 영향권

중남미 ‘반미’ 여부 따라 갈려
옛 소련 출신 중앙아시아 침묵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한 달 동안 국제사회는 단결과 분열이 교차했다. 세계적으로 압도적인 반전 여론이 형성됐고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러시아 제재, 우크라이나 지원이 이어졌다. 하지만 나머지 지역에서는 러시아와의 관계를 두고 정치적 분열이 더 선명하게 드러나거나 깊어지는 모습도 나타났다. 특히 중동과 아시아의 지역 질서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군과 미·중 대립에 이어 이번 전쟁으로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결속 과시한 미국과 유럽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마자 미국과 유럽연합(EU)은 강력한 대러 전선을 구축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 주도로 서방이 규합하면서 대서양 동맹 복원의 신호탄이 됐다는 해석까지 나왔다. 미국과 유럽의 대러 제재는 ‘핵옵션’으로 거론되는 국제은행간통신협회(스위프트) 결제망 배제까지 포함했다. 제재와 동시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적극적인 군사지원도 펼쳤다.

관료화되어 힘이 빠졌다는 평가를 받았던 EU와 나토는 화려하게 부활했다. EU는 사상 처음으로 공격받는 나라를 위해 무기 조달을 위한 재정지원을 결정하면서 외교적 입지가 커졌다. 나토 분열을 노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의도와는 달리 나토의 결속은 더욱 단단해졌다.

하지만 전쟁이 장기화할수록 ‘빈틈없는’ 공조를 과시해온 미국과 유럽의 대응에도 틈새가 나타날 수 있다.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유럽과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미국이 추가 제재 범위를 놓고 이견을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 패권과 주권 사이

아시아에서는 국익을 우선시하는 행보가 두드러진다. 인도와 중국은 모두 지난 2일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러시아 규탄 결의안 투표에서 기권표를 던졌다. 러시아와 전례 없는 협력관계를 구축한 중국은 러시아 경제 제재의 탈출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된다. 중국은 러시아에 대한 군사적 지원에 대해서는 선을 긋고 있으나 서구의 경제 제재는 분명히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러시아와 거리를 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장은 “중국은 미국의 영향력을 견제한다는 점에서 러시아 편에 서 있지만 러시아와 깊이 연루돼 국가 위상이 추락하는 것을 원치 않는 시선이 있다”며 “특히 안보를 중시하는 베이징 엘리트들은 친러시아 입장이지만 경제를 중시하고 자유주의 성향인 상하이 엘리트들은 거리를 두자는 입장으로 내부적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인도는 미국, 일본, 호주와 함께 쿼드 협의체의 일원임에도 러시아 제재에 불참했다. 인도의 우선 과제는 중국 견제에 있기 때문이다. 인도 싱크탱크인 옵서버 리서치 파운데이션(ORF)은 우크라이나 침공 전 이미 미국의 대러 제재 동참 요구 가능성을 예측하고 “서방 및 러시아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강대국으로서 제재 와중에도 상품과 기술의 환승 허브 역할을 해 경제성장을 도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동남아시아 국가들 중에서는 싱가포르가 러시아 제재에 동참했지만 나머지 국가들은 중립 입장을 밝히거나 입장 표명을 유보하고 있다.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은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평화적 대화를 촉구했지만 러시아를 비판하지는 않았다. 베트남은 구소련 시절부터 러시아와 유대관계를 다져왔다.

■러 영향력 강해진 중동·아프리카

중동과 아프리카에서는 러시아의 강화된 영향력이 확인됐다. 시리아는 유엔 총회에서 러시아 규탄 결의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내전에서 러시아 도움을 받은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은 우크라이나에 용병 4만명을 보내기로 했다. 이란과 이라크 등 전통의 반미 국가들도 기권표를 던졌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중국에 수출하는 원유 일부에 대해 위안화 결제를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실화된다면 중동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예전보다 낮아지게 된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러시아가 전쟁에서 밀리는 것처럼 보여도 중동에서 러시아의 확장세가 드러나고 있다”며 “시리아 등 권위주의 국가 지도자들은 무슨 짓을 하더라도 푸틴 대통령이 지켜준다는 경험을 쌓았다. 러시아를 축으로 한 권위주의 블록이 형성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영향력은 아프리카에서도 확인된다. 유엔 총회에서 기권표를 던진 35개국 중 17개국이 아프리카 국가들이었다. 2014년 크름반도(크림반도) 병합 이후 서방의 경제 제재가 시작되자 러시아는 아프리카와 중남미에 공을 들이며 위기를 타개하려 했다. 수단, 말리, 부르키나파소 등과 군사협정을 체결해 정권의 안정을 지원하고 있다. 짐바브웨의 금과 다이아몬드 채굴에도 러시아가 관여한다. 요웨리 무세베니 우간다 대통령은 “백인이 아닌 인류 대다수는 러시아를 지지한다”며 푸틴 대통령을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반미’ 여부 따라 갈린 중남미

중남미에서는 러시아를 강하게 비판하는 입장과 국익을 고려한 중립, 강하게 지지하는 입장이 골고루 나타난다. 좌파정부가 집권한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칠레는 러시아를 적극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반면 미국과 대립하면서 정치적 격변을 겪은 쿠바, 볼리비아, 니카라과는 러시아를 지지하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브라질은 러시아와 가깝게 지내지만 규탄에는 찬성했으며 중립행보를 보이고 있다. 전쟁이 장기화돼 자국의 에너지·농업이 영향받는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중앙아시아, 의미심장한 침묵

러시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옛 소련 출신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러시아 규탄 결의안에 기권하거나 불참했다. 하지만 러시아를 옹호하는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으며 군사적 협력에도 선을 긋고 있다.

옛 소련의 6개 공화국으로 구성된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회원국인 타지키스탄은 지난달 27일 이후 러시아로 가는 항공편을 모두 중단시켰다. 키르기스스탄은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호소하며 사실상 우크라이나에 우호적 입장을 표명했다. 지난 1월 러시아군의 도움을 받아 국내 반정부시위를 진압했던 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보낼 군대를 지원해달라는 러시아의 요청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국가 모두 러시아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높으며 권위주의 성향의 정부가 통치하고 있다. 연간 780만명의 노동자들이 러시아에서 송금하는 금액이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국내총생산(GDP)의 10~30%를 차지한다. 하지만 이 나라들은 옛 소련 소속이었다는 점에서 우크라이나와 공통점이 있다. 우크라이나 상황에 공감하고 러시아의 팽창에 경계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대러 제재 여파로 경제적으로 곤란한 상황인 이들 국가는 향후 중국 의존도를 높여갈 것으로 예상된다.

박은하·김유진·김혜리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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