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강제 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할 방법을 찾자며 이달 초 민관 협의회가 출범했습니다. 정부는 시작부터 '속도감'과 '긴장감'을 강조했습니다. 원고들이 나이가 들고 있고, 일본 기업의 자산을 매각하는 법적 절차가 다가왔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협의회는 첫 회의를 한 지 열흘 만인 어제(14일) 다시 만났습니다.
지난 2018년 대법원 판결 선고 당시 미쓰비시중공업 강제 징용 피해자 김성주 할머니.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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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현금화 가장 우려"…누구를 위한 협의회일까
박진 외교부 장관은 앞서 11일 기자회견에서 "일본에서는 지금 (일본 기업 자산) 현금화를 가장 우려하고 있다"며 "현금화가 이뤄지기 전에 바람직한 해결 방안이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이라고 직접 해결할 의지를 보였습니다. 우리가 급한 문제이기도 하지만, 일본이 더 급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따로 방법을 못 찾으면 우리 사법부 판단에 따라 일본 기업의 국내 자산을 파는 것이 곧 현실이 됩니다.
일부 피해자는 민관 협의회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하루 전 광주에서 이렇게 알려온 피해 할머니들은 '일본 기업의 진솔한 사죄와 배상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입장입니다. '책임을 가해 기업에 물어야지, 왜 우리가 해결책을 찾느냐'며 정부에 불신을 드러냈습니다. 이들은 현금화 절차가 많이 진행된 원고들입니다. 이들이 정부 방식에 동의 안 해 법대로 간다면 협의회가 방법을 찾기도 전에 상황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지난 2019년 강제 징용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와 이춘식 할아버지가 일본에 항의하기 위해 일본대사관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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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해자 측 마지노선 "일본 기업이 최소한 사과·배상"
두 번째 회의에서는 사죄와 배상이 논의됐다고 합니다. 어제(14일) 회의 직후 외교부 당국자는 "피해자들이 말하는 사과는 주체, 시기, 방식의 문제가 있는데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들었다"며 "사과의 주체는 기업 또는 정부가 될 수 있다고 의견이 개진됐다"고 전했습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피해자 소송대리인 임재성 변호사는 "불법 행위에 있어 일본 정부와 기업이 모두 사과가 필요하지만, 현실적으로 일본 기업이라도 사과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일본 정부의 사과는 더 큰 사과인데 그럴 일은 없어 보인다"면서 말입니다.
강제 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를 풀 민관 협의회 2차 회의가 끝난 뒤 14일 피해자 측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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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 일본 기업의 사과를 받아야 한다'는 마지노선을 다시 내건 셈인데, 배상에도 마지노선을 뒀습니다. 이날 피해자 측은 '타협안으로 갈 수밖에 없고 그게 대위 변제라면 최소한 일본 기업의 참여가 마지노선'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기금을 대신 만들어 피해자들에 배상하는 쪽으로 정리되더라도 일본 기업이 돈을 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피해자를 지원하는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은 "돈을 모으는데 가해 기업은 빠진다면 2018년 대법원 판결 이행과 아무 상관이 없고, 또 돈을 줄 이유도 없지 않겠느냐"고 반문했습니다.
■ 우리 국민 피해 봤는데…외교적 보호권은?
이번 회의에서 또 하나 쟁점은 외교적 보호권이었다고 합니다. 이는 일본 측이 우리 국민에 가한 불법 행위에 대해 우리 정부가 보호해야 한다는 개념입니다. 첫 회의 때 피해자 측이 가해 기업과 직접 협상하게 해달라면서 거론됐습니다. 이날 외교부 당국자가 피해자 측에 설명한 대로라면 외교적 보호권은 "국제법적으로 일본 사기업이 한 것이 아니라 일본 정부가 불법 행위를 했을 때 여러 가지 요건 하에 쓸 수 있는 것"입니다. 엄밀히 한국 정부가 외교적 보호권을 행사할 영역은 아니라는 뜻으로 읽힙니다.
피해자 측은 민관 협의회를 통해 외교부가 "외교적 보호권으로서 일본 기업과 피해자 간 직접 협상 위해 노력해달라"고 했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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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변호사는 "강제 징용 피해자들에게 외교적 보호권이 남아있다는 건 2018년 대법원 판결이 확인한 중요한 사실"이라며 "일본 정부나 기업에 의해 권리를 침해당한 피해자들을 대신해 한국 정부가 싸울 수 있다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만큼 일본 기업과 협상할 수 있게 우리 정부가 중간에서 나서달라는 취지라는 것입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그 과정에서 교섭해야 한다면 틀림없이 교섭해야 하는 문제"라고 답했습니다. 이건 국제법상 외교적 보호권이 적용되고 안 되고 문제라기보다 정부의 중재 의지에 달린 것일 수 있습니다.
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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