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당 당원들이 1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 모여 최근 불거진 ‘제2의 N번방’ 사태와 관련해 성착취물 제작·유통·소지 강력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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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플랫폼을 이용해 미성년자 성착취 범행을 저지른 이른바 ‘제2의 n번방’ 사건의 피해자가 사건 발생 후 ‘디지털성범죄 피해자지원센터(지원센터)’를 가장 먼저 찾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서울·인천·경기 등 3곳에만 있는 이 지원센터는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전국으로 설치를 늘려가겠다고 약속했지만, 정부가 편성한 내년도 예산안에는 센터 증설 관련 예산이 하나도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원센터는 여성가족부 산하 기관으로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와 수사기관을 연결해 주는 등 피해자에게 필요한 법률 지원은 물론 심리 상담 등 폭넓은 분야를 지원한다. 여성가족부 폐지 계획과 맞물려 당초 약속한 지원센터 증설이 물거품이 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2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제2의 n번방 사건은 피해자 A씨가 올해 초 경기도 디지털성범죄 피해자 원스톱 지원센터에 도움을 요청했고, 이 센터에서 경기 북부의 한 경찰서로 사건을 접수하면서 수사가 시작됐다. 지원센터가 피해자와 수사기관의 가교 역할을 한 셈이다. 지원센터는 현재까지도 A씨 사건을 모니터링하는 등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 작성한 ‘2021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 보고서’에 따르면 지원센터에 접수되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 발생 건수는 매년 늘고 있다. 2021년 지원 건수는 총 18만8083건으로 전년 대비 약 1.1배 증가했다. 특히 지난해 지원센터에 접수된 피해 유형으로 유포불안이 2660건(25.7%)으로 가장 많았고, 불법촬영 2228건(21.5%), 유포 2103건(20.3%), 유포협박 1939건(18.7%)이 뒤를 이었다.
서울시가 2021년 발표한 초·중·고등학생 디지털성범죄 피해 실태를 보면, 서울에 거주하는 12∼19세 초·중·고등학생 4012명 중 21.3%(856명)가 ‘디지털성범죄 위험에 직접 노출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
제2의 n번방 사건이 알려지면서 지원센터의 역할과 필요성이 재조명되고 있지만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센터가 설치된 곳은 서울·경기·인천 3곳에 불과한 상황이다. 부산은 지원센터 설립을 추진하는 단계다.
문제는 정부가 내년도 여가부 예산안에 지원센터 확대 운영을 위한 예산을 별도로 편성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당시인 지난 2월 범죄예방·피해구제 공약의 일환으로 전국 지자체 산하에 디지털성범죄 피해자지원센터를 확대 설치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정부가 편성한 내년도 예산안을 보면 이 약속을 이행하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정부는 “지원센터 운영은 지자체 몫이며 정부의 역할은 지원센터 설치를 독려하는 정도”라고 하지만, 중앙 정부 차원의 지원 없이 지원센터를 빠르게 확충하기는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백미연 경기도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원스톱 지원센터장은 이날 통화에서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가운데 아동·청소년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는데, 이들을 위한 심리치료나 소송지원 등 보다 폭 넓게 지원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며 “특히 디지털 성범죄 지원 인력들은 대체로 고용 상태가 불안정한 편인데, 이런 문제가 해결돼야 피해자 지원 역량도 보다 전문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백 센터장은 여가부가 폐지될 경우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해 이뤄지는 다양한 성폭력 방지 시설과의 연계 활동이 상대적으로 축소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여가부 관계자는 “지자체와 협의해서 지원센터를 늘려가도록 노력할 예정”이라며 “다만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상담과 치유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디지털성범죄 지역특화상담소’라고 있는데, 이 상담소를 (현행 10개소에서 14개소로) 증설하기위해 내년도 예산이 확대 편성된 상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가부가 폐지되더라도) 국가가 법적으로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를 지원하도록 명시돼있다. 법률에 근거해 센터를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n번방 사건은 텔레그램 채팅방에서 2018년부터 2020년 초까지 아동·성착취물을 제작하고 유통한 사건이다. 최근 이와 비슷한 수법의 사건이 재발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경찰은 ‘엘’로 불리는 이 사건 핵심 피의자를 검거하기 위해 전담 수사팀을 꾸린 상태다. 피의자는 미성년자 피해자들을 협박해 성착취물을 촬영하게 하고, 영상을 텔레그램을 비롯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유포한 혐의를 받는다. 그는 ‘추적단 불꽃’ 활동가의 이름을 사칭하거나 여성인 척 피해자들에게 접근한 것으로 전해졌다.
강연주 기자 play@kyunghyang.com, 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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