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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0 (토)

“산불 피해 큰데 불놀이 웬말”...전국 유일 불 지르기 축제 어쩌나 [방방콕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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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충구제·묵은 풀 제거…제주전통 목축문화
전국적인 산불 피해와 환경훼손 논란 속에서
오름 통째로 태우는 제주들불축제 2년째 차질
“달라진 시대 상황 반영” 방향성 전면 재검토


매일경제

제주시가 주최한 2017년 제주들불축제 전국 사진촬영대회에서 금상작에 뽑힌 강윤방(제주시)씨의‘들불축제2’[자료=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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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가 매년 초 여는 들불축제는 2016∼2018년 3년 연속 ‘대한민국 축제콘텐츠 대상’에 선정될 정도로 우리나라 대표 축제 반열에 올랐다.

불보다 더 축제에 어울리는 소재는 없을 것이다.

“불은 사물을 태울 뿐 아니라 소리 지르게 한다”는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실제 달집에 불이 당겨지고 불길이 치솟으면 들불축제장에 모인 사람들은 저절로 환성을 내지른다.

하지만 최근 들불축제가 존폐기로에 섰다.

전국적으로 산불 피해가 발생하는 시기에 불을 일부러 놓는 축제가 과연 필요한가라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다. 제주시 역시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2년 연속 불놓기 행사를 취소했다.

들불축제 언제부터
제주는 예로부터 봄에는 소를 기르는 집에서 순번제로 아침 일찍 마을 소들을 이끌고 풀을 뜯으러 다녔다.

모인 소들에게 풀을 먹이기 위해 중산간 지역 양질의 목초가 있는 들판을 찾아다녀야 했다.

특히 옛 제주인들은 초지에 해묵은 풀을 없애고 해충을 구제하기 위해 늦겨울에서 초봄 사이 들판에 불을 놓았다.

이를 ‘방애놓는다(들불놓기)’라고 표현했다.

이 ‘방애’라는 제주의 옛 목축문화가 들불축제로 발전한 것이다.

1997년 옛 북제주군 당시 애월읍 어음리에서 시작돼 구좌읍 덕천리 마을공동목장(1999년)을 거쳐 2000년부터 새별오름이 고정축제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당초 들불축제는 음력 정월 대보름에 맞춰 개최했지만, 폭설과 강풍 등 악천후가 반복되자 2013년부터는 경칩이 포함된 주의 금~일요일로 변경됐다.

명칭도 ‘제주정월대보름들불축제’에서 ‘제주들불축제’로 바뀐 것도 이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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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오전 제주시청 브리핑룸에서 이날 개막식이 예정된 제주들불축제와 관련해 오름불놓기 등 불과 관련된 행사를 취소한다고 발표하고 있다. [자료=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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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폐기로에 선 들불축제
오름 전체에 불을 지른 모습이 알려지면서 들불축제는 삽시간에 전국적인 관심을 끌었다.

실제 코로나19가 터지기 직전인 2018년 들불축제를 찾은 방문객은 35만5664명에 달했다.

관심이 높아진 만큼 우려의 목소리도 커졌다.

오름 주변에 거대한 주차장을 조성하면서 환경훼손 논란이 촉발됐고, 불을 놓기 위해 화약과 기름을 사용한다는 사실도 알려지며 환경오염을 일으킨다는 지적도 나왔다.

실제 2021년 비대면으로 열린 들불축제에서는 사용된 화약은 총 1000㎏에 달했다.

하지만 새별오름 토양에 대한 화약잔류물 조사나 지하수 영향에 대해서는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여기에 지난해부터 산불 논란이 결정적으로 발생했다.

민둥산인 새별오름은 별도의 방화선이 구축돼 화재 확산 우려가 낮지만, 여론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먼저 지난해에는 강원·경북에서 대형 산불이 발생해 사회적 분위기가 악화하자 개막을 9일 앞두고 모든 행사를 전면 취소했다.

올해 역시 정부가 산불재난 국가위경보 단계를 ‘관심’에서 ‘경계’로 상향한 데 이어 산불특별대책 기간까지 선포하면서 불놓기 행사가 취소됐다.

어디로 가나
들불축제가 잇따라 차질을 빚으면서 결국 방향성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강병삼 제주시장이 간부들 앞에서 “들불축제 관련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라”고 지시해 지난 22일 온라인채널인 ‘들불축제 소통방’이 개설된 것이다.

지난 13일 오영훈 제주도지사 역시 “달라진 시대적 상황이나 조건을 확인해 적절히 대응해야 한다”며 “들불축제 발전방향을 다시 한번 논의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사람의 감정은 불과 같다.

난로 속 순한 불 앞에서는 감정도 순해지지만, 들불의 격한 불길 앞에서는 감정도 격해진다.

난로 앞에서 차분해지는 것은 불이 일정한 규제하에 있기 때문이다. 그 규제에서 풀려나는 경우 불은 재앙으로 돌변한다.

안전조치가 된 들불축제의 불은 사실 난로처럼 억제된, ‘갇힌 불’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풀려난 불 앞에서처럼 환성을 지르고 후련해한다. 연극용어로는 ‘카타르시스’라고 할 수 있다.

들불축제라는 연극의 주인공인 ‘불’이 향후 어떤 방법으로 ‘카타르시스’를 선사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 ‘방방콕콕’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발생하는 따끈따끈한 이슈를 ‘콕콕’ 집어서 전하기 위해 매일경제 사회부가 마련한 코너입니다. 지방자치단체의 소식부터 지역 경제 뉴스, 주요 인물들의 스토리까지 다양한 소식을 전하기 위해 현장에서 열심히 발로 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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