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현지시각)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열린 이란 정부 내각 긴급회의장에 마련된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 자리에 그의 사진과 검은 천이 놓여있다. 테헤란/로이터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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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현지시각) 헬리콥터 추락 사고로 실종된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의 사망이 20일 확인되면서 이란 국내외 정세가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실질적인 의사결정 권한이 최고지도자에게 있는 이란 정치체제상 핵 개발 기조나 중동 내 지정학적 입장 변경은 없을 것으로 여겨지지만, 내부 불안이 증폭되고 정치권력 구도가 변화하면서 역내 질서 변화를 불러올 가능성도 적지 않다. 특히 7개월을 넘어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가자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시점에 발생한 이번 사고는 중동 전역에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그가 탔던 헬기는 동아제르바이잔주의 주도 타브리즈에서 약 100㎞ 떨어진 숲속에서 추락한 것으로 확인됐다. 50년 이상 운용된 미국산 노후 기종 벨-212를 타고 산악지대를 이동하다 악천후 속 사고를 당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수색 활동을 맡은 국제적신월사(IRCS)의 드론 촬영 영상을 보면 추락 지점은 검게 그을렸고, 헬기의 꼬리 부분은 깊은 숲 가운데 처박혀 있다. 꼬리 외에 다른 부분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쪼개져 있다. 인근에서 “연료 냄새가 심하게 났다”는 주민들 증언도 있었다. 적신월사는 북서부 타브리즈 지역으로 시신을 인도했다고 밝혔다.
이란 당국은 내부 혼란을 잠재우려 했다.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는 이날 텔레비전 연설을 통해 “이번 사고가 국정 운영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을 것”이라며 국민들을 안심시켰다. 라이시 대통령은 하메네이에 이은 2인자이자, 그의 후계자로 꼽혀왔다. 이란 내각의 긴급회의 장소에는 라이시 대통령 자리에 사진이 놓였고, 그의 의자에는 추모를 뜻하는 검은 천이 둘려 있었다. 라이시 대통령의 무사 귀환을 바라왔던 이란 시민들은 그의 사망 소식을 들은 뒤 광장에 모여 명복을 비는 기도회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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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 모하마드 모흐베르 제1부통령이 최고지도자 승인을 받아 대통령 권한대행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후 현직 대통령 사망 시 50일 안에 대선을 치르도록 하는 헌법 조항에 따라, 예정보다 1년여 앞당겨진 오는 7월께 대통령 선거가 치러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이란 국영 이르나(IRNA) 통신은 보도했다. 하메네이의 후계자 자리를 놓고 권력 다툼이 일어날 수 있으나 이 과정에서 근본적인 정책 방향이 바뀔 가능성은 적을 것이란 해석이 지배적이다. 미국 비영리단체 이란핵반대연합(UANI)의 제이슨 브로드스키 정책국장은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에 “이란의 대통령은 (정책) 실행자이지 의사결정자가 아니다”라며 “이란 정책의 기본 원칙들은 똑같이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적 공백 상황에서 꾸려진 과도정부가 내부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강경 노선을 따를 것이란 관측도 있다. 유달승 한국외국어대 이란학과 교수는 한겨레에 “정부를 향한 국내 여론이 좋지 않은 상황이기에 당국이 이번 사건으로 내부 결속을 다지려 할 수 있다”며 “정치적 메시지 수위를 높이는 방식으로 대서방 강경책을 펼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함께 이동한 다른 헬기 2대가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한 데 반해, 라이시 대통령이 탄 헬기만 추락한 것을 두고 여러 음모론도 제기되고 있다. 이란 내 초강경 보수 노선을 따랐던 그가 반대 세력을 강력하게 진압하면서 이에 분노하는 이란 내부 목소리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지난달 이스라엘과 이란이 ‘영사관 공격’과 ‘이스라엘 본토 보복’을 주고받으며 갈등이 고조돼왔던 상황과 연결짓는 해석도 있다.
다만 이스라엘 쪽은 헬기 추락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익명을 요구한 이스라엘 관리는 이날 로이터 통신에 이스라엘은 라이시 대통령을 죽음에 이르게 한 헬기 추락에 관여하지 않았다며 “우리가 한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등 이스라엘 정부는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노지원 기자 z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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