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나비네트워크 회원 등이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딥페이크 성범죄대응 긴급 대학생 기자회견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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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텔레그램을 중심으로 광범위한 불법합성(딥페이크) 성범죄가 드러난 것을 계기로 경찰에 아동·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착취물의 삭제 또는 접속차단 요청 권한을 부여하는 법 개정이 추진되는 가운데, 경찰이 사실상 반대 의견을 낸 것으로 확인됐다. 현 체제가 가장 효율적이며 이를 흔들면 경찰 업무가 지나치게 늘 수 있단 게 주요 반대 근거인데, 피해자 입장엔 눈 감은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22일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지난 6일 아동·청소년 디지털 성착취물 삭제·접속차단 요청 권한을 경찰에 부여하는 내용의 청소년성보호법 개정안에 대해 ‘신중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이 개정안은 아동·청소년 디지털 성착취물을 발견하면 경찰이 직접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에 삭제·차단 요청을 하는 ‘응급조치’ 규정 신설을 골자로 한다. 이미 가정폭력, 아동학대, 스토킹범죄에서는 경찰의 현장 대응을 위한 응급조치 규정이 있는데, 디지털 성범죄에는 전무하다.
경찰청은 의견서에서 “(청소년성보호법 개정안은)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의 삭제·차단 요청 의무를 경찰에 지우게 되어 현 체제의 균형을 깨뜨릴 수 있는데, 이는 그간 축적된 효율성과 노하우를 저하시킬 수 있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아울러 “문제되는 모든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 등에 대해 개별적으로 삭제·차단 요청 업무를 수행하게 될 경우 그에 따른 업무부담이 크게 가중될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현재 디지털 성범죄물이 발견됐을 때 이를 삭제하려면 ‘음란물’ 등 심의기구인 방심위를 통해야만 한다. 현행법상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에게 디지털 성범죄물을 삭제·차단하라고 시정요구할 권한이 방심위에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경찰에 디지털 성범죄물을 신고하거나 경찰이 수사 중 성범죄물을 발견해도, 경찰이 방심위에 ‘삭제 요청’을 해야만 삭제 조처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방심위는 디지털 성범죄물에 한해 ‘24시간 상시 심의지원’ 체계를 갖췄지만, 시정요구 불응과 시정명령 전 의견 청취 등 절차를 거치면 실제 삭제·차단까지는 적지 않은 시일이 걸린다.
이런 체제는 피해 확산이 빠른 디지털 성범죄 대응에 적합하지 않은 데다, 성범죄물과 음란물을 구분하지 않고 있어서 비판을 받아왔다. 신진희 성범죄 피해자 전담 국선변호사는 “피해를 가장 먼저 신고하는 곳은 경찰이기 때문에 경찰이 전속적인 삭제·차단 등 권한을 가진다면 가장 신속한 조처가 가능할 것”이라며 “디지털 성범죄는 피해물 확산을 막는 것이 가장 중요한 만큼 경찰에 관련 인력과 예산을 투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법무부 디지털성범죄전문위원회도 2021년 “범죄 수사 전문가인 경찰관이 디지털 성범죄물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전문성·객관성·공정성 등에서 방심위보다 부족하다고 보기 어렵”고 “방심위가 성범죄물 삭제 등 시정요구 여부를 심사해온 것은 종래에 성범죄물을 음란물과 동일시한 탓”이라며 경찰의 디지털 성범죄 응급조치 신설을 권고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경찰청은 “방심위가 삭제차단의 전속적 권한을 가지고 있는 현 구조에서는 개정안과 같이 경찰에 사업자에 대한 삭제차단 요청 의무를 부여하더라도 다시 방심위 심의절차를 거치게 될 수 있어 오히려 신속성이 저해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윤건영 의원은 “딥페이크 범죄 관련해서 앞에서는 적극적 수사를 말하는 경찰이 뒤에서는 부처간 업무 떠넘기기에 열중하고 있다는 것이 참담하다”며 “지금 이 순간에도 피해를 보고 있는 피해자들 입장에서는 어느 부처가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철저히 피해자 입장에서 사건을 해결해주기를 바라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겨레 자료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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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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