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오바디스, 윤석열 정부]②
국정 비전 부재와 정책 혼란
용산 대통령실 청사 전경. 대통령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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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의 지난 2년6개월은 방황과 혼돈으로 요약된다. 추구할 국정 비전이 없으니 아젠다도 설정할 수 없었다. 역대 최악의 지지율로 임기 반환점을 맞은 이유도 여기에서부터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 대통령 지지율이 10%대로 진입한 지난 1일 한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윤 대통령 국정 운영 실패 이유를 묻자 “갑자기 불려와서 대통령이 됐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그래서 하고 싶은 일도 없었고 뭘 해야 하는지도 몰랐던 것”이라며 “정치도 숙련된 사람이 해야 한다는 걸 보여준 사례”라고 말했다. ‘준비 안 된’ 대통령의 한계라는 것이다.
검찰총장 출신인 윤 대통령은 혜성처럼 정치권으로 들어와 국민의힘 대선 후보를 거쳐 단숨에 대통령 자리까지 올랐다. 그만큼 준비와 고민의 시간은 짧았다. 갈 길을 찾지 못한 결과는 정책 혼선과 인사 실패로 돌아왔다. 과도한 확신으로 점철된 일방 외교 정책으로도 나타났다. 이런 과정은 여야는 물론 당정 갈등으로 비화해 정치 상실로까지 연결됐다. 결국 윤 대통령 자신의 공천 개입 의혹, 김건희 여사의 각종 논란까지 불거지며 정치에 입문하면서 내놨던 공정과 상식이란 핵심 가치마저 훼손했다.
방향성 부재가 불러온 정책 혼란 사례는 즐비하다. 초등학교 입학 연령 하향은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 취임 2달 뒤인 2022년 7월30일 교육부는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만 6세에서 5세로 1년 하향하겠다고 밝혔다. 교육계, 학부모, 여야 정치권 모두에서 전방위적인 반발이 나왔다. 초등학교 교사들은 현장에서의 부담, 유치원은 수요 감소, 학부모들은 어린 나이에 입학하게 될 아동들의 학교 생활 적응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무엇보다 졸속 정책이란 비판이 컸다. 초등학교 입학 연령 하향 정책은 결국 철회됐고 박순애 교육부 장관이 2022년 8월8일 사퇴하면서 마무리됐다. 박 장관의 근무 기간은 35일밖에 되지 않았다.
‘주 최대 69시간 근무제’ 도입도 혼란만 남긴 채 철회된 정책이다. 지난해 3월6일 고용노동부가 주 최대 69시간 근무가 가능하도록 하고 대신에 장기 휴가를 쓸 수 있도록 하는 노동 유연화 정책을 내놨다. 하지만 근무 시간을 줄여가는 추세와는 정반대인 정책에 여론 반발은 극심했다. 이후 윤 대통령은 지난해 3월14일 “소통이 부족했다”며 법안 재검토를 지시했다. 윤 대통령은 이틀 뒤인 지난해 3월16일에는 “주 60시간 이상 근로는 무리”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13일 고용노동부는 주 52시간제를 유지한 채 유연하게 운영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과학기술계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은 방향성 부재의 상징적 사례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6월28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나눠먹기식, 갈라먹기식 R&D는 제로 베이스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과학계에도 카르텔이 있어 연구비가 적절하게 배분되지 않는다는 게 정부의 문제 의식이었다. 이후 실제로 정부는 2024년도 R&D 예산을 13.9% 삭감해 발표했다. 이후 과학계의 강력한 반발 속에 2025년도 R&D 예산은 증액하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당시 한 국민의힘 의원은 기자에게 “카르텔을 때려잡아야 한다는 건 검사식 사고에서 시작된 것”라며 “재정 관리와 과학계 예산이라는 가치에 대한 고민도 부족하다는 걸 보여준다”고 말했다.
지난달 11일 정부가 디딤돌 대출을 일부 제한하겠다고 밝혔다가 철회한 것도 과학계 예산 삭감과 비슷한 접근 사례로 읽힌다. 지난 5월 해외 직구 제품의 국가통합인증마크(KC) 의무화 정책을 추진했다가 사흘 만에 철회한 것도 졸속 행정의 상징적 사례다. 당시 대통령실은 이 정책이 국무총리실 중심으로 마련됐고, 윤 대통령은 이를 보고받지 못했다는 입장을 내놨다.
윤석열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4대(연금·노동·교육·의료) 개혁 역시 방향성과 추진 방식에서 혼란을 낳고 있다. 노동 개혁은 노조에 대한 강경 대응으로 단순화됐다. 노동 유연화를 말하지만, 노동계와의 대화는 사실상 없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임명은 노동 개혁에 대한, 혹은 노동 정책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철학 부재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한 국민의힘 중진 의원은 기자에게 “장관 인사는 정책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김 장관 임명은 그저 보수 강경 지지층을 바라보며 최소한의 지지율을 지켜달라고 내는 메시지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의료 개혁 역시 시작할 때는 국민적 지지를 받았지만, 응급실 ‘뺑뺑이’ 등 부작용 관리에 실패하면서 국민적 비판의 대상이 됐다. 전공의 복귀도 여전히 요원하다.
한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기자와 만나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하고 싶었던 일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역사적으로 대통령의 업적들을 ‘잘못했다, 잘했다’ 나중에 따질 수 있지만 윤석열 정부처럼 뭘 할지 조차 모르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국민의힘 의원은 기자에게 “용병 정치의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대선만 이기면 무슨 소용이냐”며 “‘신상’(새로운 상품)만 좋아하는 당원들도 이제는 바뀌지 않겠느냐. 정치도 전문가가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순봉 기자 gabgu@kyunghyang.com, 유새슬 기자 yoos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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