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서원씨와 안민석 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조선DB |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 핵심인물인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가 5일 자신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기소된 안민석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첫 법정 대면을 했다. 8년 전 국회 ‘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의 ‘구치소 청문회’ 이후 둘이 직접 대면한 것은 처음이다. 이날 증인석에 선 최씨는 눈물을 흘리며 “가짜뉴스를 퍼트리는 안민석 같은 정치인이 근절돼야 한다”고 했다.
수원지법 형사19단독 설일영 판사는 이날 안 전 의원의 정보통신망법 위반(명예훼손 등) 혐의 속행 공판을 열었다. 이날 법정엔 이 사건의 피해자로 안 전 의원을 수사 당국에 고소한 최씨가 증인으로 나왔다. 이날 최씨는 검은색 뿔테 안경을 쓰고, 흰색 트레이닝복 위에 검은색 자켓을 입은 모습이었다. 최씨는 서류 뭉치를 잔뜩 든 채 오른손으로 허리를 부여잡고, 절뚝 대며 법정에 들어섰다. 그는 방청석을 슬쩍 바라보기도 했다. 안 전 의원은 양손으로 깍지를 낀 채, 최씨를 바라보다 곧바로 눈길을 돌렸다.
이날 최씨는 “록히드마틴(미국 최대 방위산업 기업)을 알고 있느냐” “록히드마틴의 회장이 누군지 아느냐”는 등의 검찰 질문에 “전혀 모르고, 안민석씨한테 처음들었다”고 했다.
최씨는 또 안 전 의원이 2016년 라디오 방송 등에 출연해 “최씨가 2015년 6월 방한한 록히드마틴 회장이랑 만났고,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와 관련해 커미션을 받았다”는 취지로 발언한 사실에 대해, “완전히 허위, 날조된 가짜뉴스”라며 “방한도 몰랐고, 무기와 관련된 것도 몰랐다”고 했다. 증인석에 앉아있던 그는 돌연 안 전 의원을 향해 “어떻게 그런 허위사실을 말할 수 있냐” “명예훼손을 넘어서 허위로 선동한 것이다”라고 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이에 안 전 의원은 최씨를 뚫어지게 쳐다보기도 했다.
검찰은 “국정농단 특검팀이 발표한 재산 외에, 수조원 대의 해외 재산을 보유하고 있느냐”고 최씨에게 물었고, 최씨는 “제가 갖고 있는 건 200억짜리 건물 하나고, 스위스 은행이 어딨는지도 모른다. 그걸 어떻게 감출 수가 있느냐”고 했다. 그는 “해외 보유 자산이 없다. 스위스 비밀 계좌가 있으면 밝혀라. 제가 왜 이런 누명을 써야하느냐”며 재차 안 전 의원을 향해 “너무 기가 막혀서 안민석씨를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했다. 최씨는 “여기 앞에 계신데, 그렇게 허위발언 해도 되는 거냐. (전) 국회의원이신데?”라고 했다. 안 전 의원은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失笑)하는 모습이었다.
2017년 1월 25일 오전 11시 15분쯤 특검에 강제 구인된 최순실씨가 서울 대치동 특검 사무실로 들어가면서 취재진을 향해 소리치고 있다. 최씨는 “특검이 내가 박 대통령과 경제 공동체임을 자백하라고 강요하고 있다”“여기는 더 이상 민주주의 특검이 아니다”“너무 억울하다”고 항변했다./이진한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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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바로 이어진 안 전 의원 측의 반대신문이 시작되자마자 최씨는 격정을 쏟아냈다. 안 전 의원의 변호인은 “건강이 안 좋다고 했는데, 수년 전 있었던 일을 기억해서 진술할 수 있냐”고 했고, 최씨는 “저는 멀쩡한데, 그런 거 왜 물어보느냐”고 말을 세웠다.
변호인은 또 “독일의 비텍스포츠, WK라는 회사를 아느냐” “이외에도 똑같은 이름, 주소로 등록된 독일의 법인이 있는데, 무슨 목적으로 설립한 것이냐”고 최씨에게 물었고, 최씨는 “지금 명예훼손 사건에서 국정농단 조사하는 거냐”며 “대답하지 않겠다. 다른 의혹 제기 하지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변호인은 “독일 슈미텐 지역의 신문에선 (최씨가)14개의 법인을 등록했다는 보도를 했다”며 “왜 이런 법인을 추가로 설립했느냐”고 물었다. 최씨는 “허위다” “설립한 적 없다” “가상으로 의혹 제기 하지 말라”거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최씨는 “(자금 세탁을 위한 페이퍼컴퍼니가) 안민석씨가 500개라고 얘기했잖나. 왜 저한테 물어보나”라고 따졌다.
최씨는 계속되는 변호인의 페이퍼컴퍼니 의혹 등에 대해 “독일 검찰에서도 자금 추적 조사를 받아본 적 없다. 안민석씨가 조사받았다고 거짓말을 치고 다녔다”며 “증거 없이 허위 발언 하지 말라”고 했다. 최씨는 “상당한 재산을 보유하고 있는 거 같다”는 변호인의 말에 “현재 재산 없다. 안민석씨 때문에 거지됐다. 다 뺏어갔다”며 “보여주세요. 찾아주세요. 좀 쓰게”라고 했다.
변호인은 최씨에게 록히드마틴에 대해 물으며,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친분은 말할 필요도 없는데, 청탁 위해 접촉하는 사람들과 관계가 있었느냐”고 했다. 이에 최씨는 “사드는 알지도 못하고 안민석씨한테 처음 들었다”며 “들은 적도 없다.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했다.
변호인이 재차 “박 전 대통령이 이와 관련해 조언이나 의견을 들은 적이 있느냐”고 하자 최씨는 “변호사님도 (명예훼손)걸 겁니다”라고 했다. 그는 또 “안민석이 주장하는 허위 가짜뉴스가 대한민국을 흔들어 놓은 것”이라며 “제가 서열 1위면 비서실장은 했을텐데, 안민석처럼 국회의원해서 면책특권을 논했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최씨는 또 “변호사님이 안민석씨에게 돈을 너무 많이 받았나보다”라고 했고, 방청석에선 피식하는 웃음소리가 나왔다. 최씨는 안 전 의원을 향해서도 “왜 웃느냐. 웃지말라”고도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사건에 비선실세로 알려졌던 최서원 씨(개명 전 최순실)에 대한 각종 의혹 제기에 나섰던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4월 23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 혐의 첫 공판을 마친 후 취재진에게 입장을 말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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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최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세탁돼 최씨의 스위스 비밀계좌에 있다는 등의 변호인 측 의혹제기에 전부 “그런 사실 없다”거나 “모른다”면서 “없다고 하는데 계속 물어본다”고 소리를 질렀다. 변호인은 “사실상 증언을 거부했는데, 국민이나 본인 양심에 부끄러운 점 없느냐”고 했고, 최씨는 “없다”며 “안민석이 날조해서 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날 재판 말미에 발언권을 받은 최씨는 “증인석에 서게 된 이유는 이 나라를 혼돈에 빠트리고 사법체계를 무력화시킨 가짜뉴스와 거짓 의혹제기 때문”이라며 “거의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안민석은 사실관계를 확인하지도 못했고, 은닉재산이 수백조라며 선동해왔다”고 했다. 최씨는 눈물을 흘리며 “안민석은 국민을 모독한 정치인으로 처벌받아야 마땅하다”고 했다.
안 전 의원은 최씨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 실세라는 의혹이 제기되던 2016년부터 각종 라디오와 TV 방송 등에 출연해 “독일 검찰이 독일 내 최순실 재산을 추적 중인데 돈세탁 규모가 수조원대”라는 주장을 했다. 안 전 의원은 “최씨가 페이퍼컴퍼니를 세워 돈을 빼돌린 기업은 독일에서만 수백개에 달한다는 사실이 독일 검찰로부터 확인됐다”고도 주장했다. 안 전 의원은 또 최씨가 록히드마틴 회장과 만나 사드 도입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실제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고, “최씨가 록히드마틴 측에 무기 계약을 몰아줬다”고 발언했다. 또 “스위스 비밀 계좌에 입급된 한 기업의 돈이 최씨와 연관돼 있다”는 등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숱하게 제기했다.
최씨는 지난 2019년 9월 “안 의원의 발언은 모두 거짓”이라며 안 의원을 고소했고, 검찰은 안 전 의원의 발언이 허위 사실이라고 판단하고 지난해 11월 불구속 기소했다.
[수원=김수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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