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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2 (금)

    이슈 미술의 세계

    [2025 신춘문예] 아우라 없는 아우라 - 한국 공공미술의 캐릭터 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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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평론 당선작

    <목차>

    Ⅰ. 아우라의 붕괴 – 아름답지 않다는 죄

    Ⅱ. 아우라의 주체 – 정부 혹은 관객

    Ⅲ. 아우라 없는 아우라 – 한국만의 아우라

    Ⅳ. 아우라 이후의 아우라 – 공공미술과 삶

    Ⅰ. 아우라의 붕괴 – 아름답지 않다는 죄

    한국에서 공공미술에 대한 담론이 형성되기 시작한 시기는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올림픽 게임을 준비하면서부터일 것이다. 국제행사에 걸맞은 도시미관을 만들겠다는 정부의 정책에 따라 온갖 조형물이 공공장소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현재(2024년 12월 01일 기준) 공공미술 포털에서 찾을 수 있는 건축 미술작품의 수는 24,151개에 달한다. 이들 중 관람객에게 완전히 수용되고, 그들의 삶의 안으로 의미 있게 진척해나간 공공미술의 수는 얼마나 될까? 관객이 주(主)가 아닌 정부와 예술가들이 주(主)가 되어 전국 곳곳에 흩뿌려놓은 ‘작품’이라는 명칭의 조형물들은 한 번쯤 시대별 혹은 주제별로 연구되었을 법도 하다. 그러나 한국의 공공미술은 시대별 정리 혹은 연구가 전무하다. 연구되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의 공공미술은 철저히 정부의 주도 아래 행해졌다. 시작은 좋았다. 공공의 공간에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조형물을 놓음으로써 공간에 의미를 부여하고 관객이 되는 행인들의 삶에 미적 경험을 선사하겠다는 의도 아래 공공미술은 시작되었다.

    그러나 공공미술은 어떤 식으로든 그 미학적 특질이 관람객에 의해 복제될 때만 존재의 당위성이 증명된다. 복제되지 않는다는 것은 그 대상이 아름답지 않음을 뜻한다. 이 시대 미술에서 ‘복제’란, 결국 수용자들의 관심 여부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즉, 아름답지 않을 때, 작품은 복제되거나 변형되지 않는다. 즉, 관람객에게 수용되지 않는 것이다. 발터 벤야민은 기술 복제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변화된 생산 조건에 의해 아우라가 해체되기 시작했다고 보았다. 복제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예술은 본래 스스로가 지니고 있던 제의적 가치 외에 다른 속성도 함께 지니게 되었는데, 복제가 가능해지면서 감상자들은 예술 작품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고, 이를 통해 대상과 수용자 사이의 거리가 좁혀졌다.

    복제가 가능한 만큼 도덕과 멀어진 예술은 예술창작에 관한 죄의식 또한 옅어졌다. 예술작품이 시간과 공간의 역사에 종속될 때, 그 역사성을 결정하는 것이 일회적 현존성인데 그 의미 가치가 예술작품의 진품성이 된다. 진품성은 사물의 심원(心源)에서 우러나오는 본질이다. 그러나 벤야민에 따르면 예술작품은 ‘여기 지금’이라는 형식으로 존재해야 하기에 진품성을 가질 수 없는 복제품은 아우라를 잃게 된다. 그럼에도 벤야민은 사물을 구성함에 있어서 “현재의 실재성이 과거의 한 장면을 건드리기 위해서는 현재와 과거 사이에 연속성이 있으면 안 된다.”(수잔 벅 모스, 김정아 옮김, 『발터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 문학동네, 2004, 283쪽)라며, 파괴를 전제로 한 역사적 사물로서의 구성을 도출했다. 그렇다면 공공미술의 본질은 어디에 있는가?

    “아우라의 쇠퇴는 문화 텍스트의 생산물을 전통의 권위와 의식에서 멀어지게 한다. 이는 텍스트나 행위의 다양한 해석을 허용하며 다른 맥락에서나 다른 목적으로도 사용될 수 있게 해준다. 더 이상 그 중요성은 전통의 보호를 받지 못할 뿐 아니라 의문시되기까지 한다. 즉, 의미는 소비의 문제로, 즉 수동적 사건이 아닌 능동적(정치적) 사건이 된다.

    존 스토리, 박모 역, 『문화연구와 문화이론』, 현실문화연구, 1994, 159쪽.



    벤야민에게 있어 아우라가 붕괴하는 시점은 대중이 수용 방식을 변화시킬 때이다. 부르주아 이전 시대에는 예술이 제의적 가치를 포함하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부르주아 시대에 들어서는 예술에 현실이 개입하면서 예술은 삶의 실천 차원의 문제나 자율성에 대해 언급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 현실의 개입으로 인해 정치적 성향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된 예술 제도는 재현과 현실 사이의 경계를 파괴하면서 비로소 경험적 검증을 통한 수용방식을 열게 되었다. 예술을 수용자 입장에서 볼 때 수용미학적 시각은 미적인 ‘상(相)’과 역사적인 ‘상(相)’ 사이의 대립도 중재하여 역사주의가 단절시켰던 작품의 현재적 경험에 대한 과거의 현상들의 연결선도 회복한다는 것이다. (박찬기 외, 『수용미학』, 고려원, 199, 17쪽) 예술 작품에 진품성과 숭배 가치를 부여하는 아우라는 기술의 발달과 대중의 출현으로 그 절대적인 심미적 속성을 잃게 되었다. 작품에 대한 거리감을 통해 관객에게 강요되었던 숭배가치를 뒤로 하고 예술작품에 대한 경험이 가능해진 것이다. 즉, 도덕적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도덕성과 관련하여 ‘이타적’이라는 말과 ‘이기적’이라는 말을 두고 보자면, 전자는 자기보다 남을 위하는 마음이고, 후자는 자신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을 뜻한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많은 이타심은 결국에는 이기적인 선택이 될 때가 있다.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타인의 개입을 원하지 않는 개인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또한 이기심에서 촉발된 예술이 많은 이들에게 예술적 향유를 제공하여 결국에는 이타적 존재로 자리하게 되는 때도 있다. 예술이란 본래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아닌 미적 경험의 대상 그 자체였다. 아름다움만으로도 그 목적과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다.

    현재의 공공 미술들은 작품 자체로서의 자격을 상실했다. 스스로가 무엇을 상징하는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알 수 없는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그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미술은 죽어있는 것이 아니다. 살아 움직여야만 미술이다. 죽은 공공미술은 그저 대형폐기물에 불과하다. 시대가 변하고 현재가 역사가 됨에 따라 미술의 가치와 주제는 변해간다. 낡을 수도 있지만 확장될 수도 있는 것이 미술의 주제와 주체성이다. 그러나 공공미술의 경우 어딘가에 자리를 차지하는 순간부터 퇴색되고 먼지가 쌓여갈 뿐이다. 생명력이 없는 미술은 목표도 목적도 없이 떠돈다. 그저 부유하는 것이다. 미술이 나아가야 하는 바는 유영하는 것이다. 유영한다는 것은 주체 스스로가 의지를 가지고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것을 말한다. 이처럼 유영하는 미술은 서로 부딪치고 의미를 재생산하며 그렇게 영생을 사는 것이다. 긴 수명을 획득하는 것이 공공미술이 가져야만 하는 목표이기에 공공미술은 다각적인 내용과 형식을 지녀야만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일종의 공해로 전락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공미술은 지금보다 더 혁명적이어야 한다.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혁명이 아니라, 그 존재 자체가 혁명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생명력을 얻는다.

    Ⅱ. 아우라의 주체 – 정부 혹은 관객

    아우라의 주체는 누구이며, 독자는 누구일까. 일반적으로 미술 작품은 작품이 걸린 갤러리에 일부러 시간을 내어 찾아가야만 마주할 수 있다. 반면, 공공미술은 찾아가지 않아도 마주할 수밖에 없는 장르의 예술이다. 기존의 미술작품들의 경우 감상자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등을 돌리면 그만이지만 공공미술은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작품으로부터 등을 돌려 앉는 것이 불가능하다. 파리의 에펠탑이 꼴보기 싫어서 에펠탑이 지어진 그 당시의 사람들이 에펠탑을 마주보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인 에펠탑에서 식사를 했던 것처럼, 공공미술의 경우 노출되고 싶지 않다면 작품이 놓인 곳으로부터 멀리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돌아간다 한들 비슷한 주제와 수준의 다른 공공미술을 마주할 뿐이다. 스스로가 독자가 되기를 거부했음에도 독자로서의 자격을 부여하고야 마는 공공미술은 그래서 반드시 미적 가치를 지녀야만 한다. 거부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노출된 공공미술은 어쩌면 일종의 폭력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술은 보는 것인가, 읽는 것인가에 관한 질문과 관련하여 공공미술은 읽히는 기능이 강한 미술이다. 작품이 가진 의미나 상징 등이 전무할 경우, 공공미술은 관람객의 시선을 끌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공공미술에는 온갖 상징과 서사가 난무하게 어질러져 있다. 기술 복제가 가능해짐에 따라 전통적인 방식의 내러티브는 한계를 맞이했다. 유기적인 방식의 서사 전개는 조화로울 수는 있겠으나, 독자들에게는 유효할 수 없다. 어제와 오늘을 순차적으로 사는 이들은 드문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토록 쉽게 쓰여진 미술은 기존의 내러티브에 흡수되어 버리고 그렇게 휩쓸려버린 미술은 그 누구의 시선도 붙잡아둘 수 없다. 공공미술은 사회적으로 존재하는 미술이다. 작품이 존재함에 따라 사회 속에서 어떻게 가치와 의미를 획득하는지는 다소 기호학적인 특징이 따른다. 그래서 이러한 기호를 나열해 놓을 수밖에 없는 공공미술은 결국에는 읽히는 장르의 미술이다.

    공공미술은 오감이 존재하는 곳에 자리한다. 고정된 조명과 환경에 놓인 작품이 아니라, 순환하는 공간에 놓인 작품이기 때문에 이는 단순히 미적 리터러시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리터러시의 문제이다. 그렇다면 사회는 무엇을 추구하는가? 고정된 존재로서의 부유였다면 공공미술에 투자할 비용은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이 맞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존재 자체의 당위성의 도전을 받는 것들이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잘못 놓인 것이라면 그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렵다. 미술이 무엇으로 기능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관한 질문을 해야 한다.

    하지만 사회적 관계에 균열이 올 경우 그것은 공공과는 거리가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공공미술은 이러한 지점을 추구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공공의 장소라는 장소성의 문제이기 때문에, 어떻게 협동하여 창작하고, 영향을 주며, 정동(affection)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해결해야 한다. 여기에서 ‘협동’은 아담 스미스의 개념이 아니라, 공동의 기억과 잠재성을 가진 존재들이 꾸려나가는 공동의 장이다. 사회란 본래 개별적인 별들의 총체인 ‘Galaxy’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가 융합된 ‘Cosmos’가 아니라, 접촉과 이접을 통한 관계로서의 ‘Universe’이므로 공공미술은 결국 관계의 장 안에서 탄생하고, 그 가치를 창출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것이 생각 혹은 아이디어로 머무르기만 해서는 안 된다. 미술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그것은 반드시 입 밖으로 발화되어 물리적 에너지를 가지고 세상을 유영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자생이 가능하다. 탄생을 지명받는 순간, 공공미술은 시장에 포섭당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파시즘은 정치를 예술화하려 했다. 예술화된 정치 체제는 시선을 끌고, 현혹하는 데 유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공미술은 공통된 주제를 말하며, 관람객에게 감동할 것을 요구한다. ‘빨강’ 색은 누구에게는 사랑을 의미할 것이고, 누구에게는 열정적인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에게 ‘빨강’은 피의 색이며, 어떤 이에게는 여전히 폭력을 의미한다. 그런데도 공공미술은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것을 음미하며, 같은 감정을 느끼도록 요구한다. 이것이 요구가 아니라면 이처럼 비슷한 내용과 형식으로 늘어져 있을 리 없다. 물론 독자에게 주체성을 줘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대중들이 매체를 다룰 수 있다고 해서 예술이 더 발전하지는 않았으며, 그러한 시도들은 대중의 손에 칼자루만 쥐여주었을 뿐 그들을 각성하게 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미 주체성을 지니고 있었던 미술의 창조자들은 무엇을 해야 했는가?

    Ⅲ. 아우라 없는 아우라 – 한국만의 아우라

    한국인은 역사의 대부분을 피해자로서 살아왔다. 저항의 역사가 있으며, 한국만이 지닌 ‘다름’을 개성으로 승화하여 문화화하는 데 성공했다. 흑인 문화와 다른 점은 한국의 경우 피해자로서의 서사를 가지는 데 있어 성별, 신분별 차별이 존재했다는 점과 이에 대한 의식이 분열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인식은 저항의 역사를 완전하게 만들지 못했다. 그래서 한반도는 나뉘었고, 나누어진 가운데 좌와 우로 다시 나뉘었다. 이는 정치적인 담론에 의한 것이었으므로 개인으로서 ‘한국인’에게 ‘선택’은 우월을 상징했으며, 권리에 가까웠다.

    수많은 선택을 축적하여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나라의 사람들과 달리 당장의 목숨을 유지해야 하는 ‘살아남기’로서의 서사를 살아낸 한국인들은 그들 내에 있는 ‘다름’을 기피해왔다. ‘다름’이 몸집이 커져서 하나의 집단이 되면 본래의 집단은 나누어지고, 이는 하나의 힘을 키우는 데 걸림돌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양한 문화가 유입되고 사회적 부(富)의 계층이 본격화됨에 따라 한국과 한국인들은 ‘개인’의 개념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 개념을 주체적으로 수용한 것이 아니라 강제적으로 맞닥뜨린 탓에 한국은 ‘개인’이란 개념을 집단에서 ‘떨어져 나온’ 혹은 ‘도드라진’ 무엇으로 잘못 인식하곤 했다.

    ‘개인’과 ‘다름’을 혼동하며, ‘다양성’을 여전히 터부시하는 시대에서 한국은 ‘국기에 대한 경례’의 문구를 ‘국가와 민족의 무구한 영광’에서 ‘국가와 국민의 무구한 영광’으로 다시,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으로 바꾸어야만 하는 상황에 처했다. 민족의 정체성이 모호해짐에 따라 ‘민족’은 ‘국민’으로 치환되었으며, ‘국민’에 대한 정의(定義)를 내리기 힘들어지자 아예 개념화라는 선택을 포기하고야 만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의 대중은 더 이상 민족의 정체성을 지니지 않으며, 국기에 대한 경례가 낯선 자들이다.

    역사적으로 낯선 이들이 등장하면서 국외적으로는 한국만이 가진 ‘다름’을 내세워 이를 문화산업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혹은 문화산업을 이용하기 위해 ‘다름’이 소비되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여전히 ‘다름’은 ‘다양성’으로 존중받지 못하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부모로부터 부여되곤 한다. 이러한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것은 소속감의 문제를 불러온다. 자신만의 공간과 시간을 갖고 싶은 ‘개인’인 동시에 어딘가로 귀결되고야 마는 공통점이 없이 대한민국에서 적응하기란 불가능하다. 완전한 ‘개인’으로 저항할 경우 집단으로부터 도려내어지기 때문이다. 이를 적극 답습하는 장르가 공공미술이다. 그래서 한국의 공공미술은 집단적인 형질로부터 시작한다.

    90년대 공공미술은 이후의 것들에 비해 비교적 서사적인 의미를 지닌 것들이 주를 이룬다. 먼저, ‘최재은, <시간의 방향>, 1994년(서울시 강남구 일원로 81 삼성서울병원 후문)’의 경우, 마치 눈물 한 방울이 똑 떨어진 듯한 형체를 지니고 있다. 병원이란 곳은 눈물로 시작하여 눈물로 끝을 맺는 곳이다. 누구나 태어날 때 눈물짓고, 죽음을 맞닥뜨린 이들은 삶을 정리하면서 눈물짓는 곳이 병원이다. 그들에게 눈물 한 방울은 시작이자 끝이고, 기쁨이자 회한의 모순적 정서를 갖는다. 인간의 삶 또한 모순적인 부분이 많고, <시간의 방향>은 그러한 수많은 사연과 이야기를 마치 시 한 구절처럼 표현하고 있다.

    ‘심현지, <물고기>, 1995년(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대로 56 한화손해보험빌딩 앞)’는 건물도, 의상도,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도 모두 회색빛을 이루는 여의도를 색채와 빛으로 물들인다. 물고기의 비늘은 유리로 뒤덮여 낮에는 찬란하도록 빛나고, 밤에는 묵묵히 반짝인다. 대학로에서 볼 수 있는 작품으로는 ‘박실, <마로니에 상징탑>, 1997년(서울시 종로구 대학로3길 마로니에 공원)’이 있다. 세계 공연예술축제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상징탑은 대학로에서 공연되는 수많은 극의 목표를 보여주듯, 공간을 헤치지 않으면서도 새롭게 다른 공간을 만들어 낸다. 순수예술가들의 목표가 누군가에겐 지나치게 이상적인 무엇이겠지만 그것을 추구하는 것 자체로도 아름다울 수 있음을 하늘을 향한 탑의 몸짓이 보여주는 듯하다.

    이렇듯 ‘어떤’ 공공미술은 아름답다. 예술은 형식과 내용을 모두 갖추어야 한다. 물론 이때, 어떤 형식은 내용이 되고, 어떤 내용은 형식이 될 수 있지만, 예술이 가진 ‘부정성’을 무기 삼아 이를 무조건 예술성이라 치환할 수는 없다. 예술은 절대적인 부정성을 띠도록 강요되지만 바로 그러한 부정성 때문에 결코 절대적으로 부정적인 것이 아니므로 예술작품이 표현이나 형식에만 매몰될 때, 그것은 그저 예술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만다. 예술이 양식화되는 과정에서 예술은 그 자체로서 교환가치가 성립되어야 하는데, 예술이란 자율성을 가지면서도 사회적 사실의 영역을 차지하므로 예술과 사회는 서로 의존하는 동시에 갈등한다.

    ‘프랭크 스텔라, <아마벨>, 1997년(서울시 강남구 테헤란로440 포스코센터 앞)’에 놓여 있는 조형물을 시작으로 한국의 공공미술은 외국 작가의 것들로 채워지기 시작한다. ‘클레스 올덴버그, <건축가의 손수건>, 1999년(서울시 중구 퇴계로 77 신세계백화점 본점 앞)’에 놓인 조형물은 형태의 미학적 가치와 관련하여 한국 관람객에게 물음표를 갖게 했다. 이어서 등장한 ‘조너선 보로프스키 <해머링 맨>, 2002(서울시 종로구 새문안로 68 흥국생명빌딩 앞)’에 이후 청계천 복원 사업의 말미에 등장한 ‘클레스 올덴버그, <스프링>, 2006(서울시 종로구 서린동 청계로)’은 공공미술과 관련하여 가장 많은 논란을 가져왔다. 한국의 공공미술이란, ‘한국 사람이, 한국에서, 한국적인 것을 주제로 삼아 한국에 설치하는 것’이라 생각했을 한국 관람객들의 예상을 빗나간 것이다. 이는 ‘청계천’이라는 장소의 상징 때문에 그 논란이 더해졌다. 이로써 한국에서의 공공미술은 조형적 아름다움과 함께 반드시 그 형체가 거기에 놓여야만 하는 ‘사연’ 혹은 ‘이야기’가 필요함이 입증되었다. 한국의 공공미술이란 그것이 공공의 미술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조형적 아우라뿐만 아니라, 서사적 아우라 또한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공공미술이 반드시 ‘한국인의, 한국인에 의한, 한국인을 위한 것’일 필요는 없다.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 미술을 작품과 관객의 1:1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작품과 내가 소통할 때 그 둘 사이에서의 예술적 합의 혹은 전이가 가능하다. 반면, 공공미술은 나와 작품의 소통이 아닌 다수가 지켜보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지는 소통의 특징을 지닌다. 그러므로 작품을 보는 이는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이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는 아직 사회적 언어를 획득하지 못한 어린아이뿐이다. 미술작품을 보고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결정하는 것은 정치적 양식을 따를 수밖에 없다. 이는 분명 관계의 커뮤니케이션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도적 반응이 사회적 관계를 유지시킨다. 그러나 칸트가 이야기한 이해관계에서 벗어난 미학은 사회적 관계를 거부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러한 거리감이 미적 가치를 만든다고 보는 것이다.

    한국이란 나라에서 도시의 인간은 집을 떠나온 사람들이 많다. 재산으로서의 집(house)도, 정서적인 안식처로서의 집(home)도 없는 이들은 정처 없이 떠돈다. 그러한 이들이 머무르는 도시 혹은 공간에는 벽과 지붕이 주는 안락함이 없다. 언젠가는 자리를 비켜주어야 하는 거리에 머무르는 이에게는 애초에 뿌리 내렸던 고향으로서의 공간이, 뿌리내려 살아갈 희망으로서의 공간이 부재한 것이다. 현실에 실존하는 공간에서의 방황인 동시에 정신적인 방황이기도 한 대중들이 매일 같은 공간을 떠도는 행위는 결국에는 떠나기로 마음먹었던 공간으로의 회귀로 점철된다. 그러나 이러한 회귀는 문제의 해결이 아닌 방황의 연속을 의미한다. 돌아갈 곳도, 돌아갈 수 있는 곳도 모두 잃어버린 대중은 근대가 낳은 거리에 내몰린다. 어차피 거리에 머무르고 거리에 살 수밖에 없다면 그 거리가 살만한 곳이어야 한다.

    Ⅳ. 아우라 이후의 아우라 – 공공미술과 삶

    공공미술품들은 따돌림이나 유기로 인해 정서적 안정이 부재하는 원인을 스스로에게서 찾으며, 매 순간 곁에 있는 이에게 사랑을 확인받으려 하듯이 소속이 없고, 갈 곳이 없는 현대의 대중은 끊임없이 자신이 어디에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확인시킨다. 한국 사람들은 소속이 없는 이에게 정체 없는 불안증을 느끼기 마련이기에 공공미술들은 자신의 이름을 꽤나 멋들어지게 짓고, 자신이 어디서부터 시작된 누구의 혈통인가를 분명히 한다. 개척을 중심으로 하는 생활반경을 보이는 서양과 달리 농업 중심의 동양은 아버지 대의 역사를 이어받아야만 생존 가능 하기 때문에 자신의 뿌리와 소속이 중요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이 때문에 우리는 집단중심적이고, 자신이 타인에게 어떻게 평가받는가를 살피며 눈치를 보며 산다. 이러한 사회에서 소속감은 자신의 삶이 안녕한가를 따지는 수단이 되기에 그러한 소속감이 좌절될 경우 개인은 사회적 자살 욕구를 경험할 수 있다.

    자살이라는 행위가 사회적 타살로 해석될 가능성이 가장 큰 지역성을 가진 나라가 한국이다. 그 전에 소속을 가질 수 있는 경우 자신이 속하게 될 집단이 자신의 본래 기준과 얼마나 상이했는가에 대한 문제는 외면하거나, 혹은 합리화한다. 그럼에도 살아남은 이들은 오늘도 생활인으로서의 공간으로 걸어 들어가고자 하는 것이다. 살아남은 사람들을 위해서는 공동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이야기만이 죽지 않고 영생하며 다시 태어난다. 단순한 대물림이 아닌 영원히 부활하는 예술이 되기 위해서는 이야깃거리가 있어야 하며, 이 이야기는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것일수록 효과적이다. 이는 다시 공공미술에도 적용된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서 공공미술은 점점 더 이분화되어 갔다. 건축법에 의해 그저 떼우기 식으로, 마구잡이로 들어선 조형물스러운 덩어리들이 실내나 행인들이 오가는 거리에 들어섰다. 어떤 것은 분명한 시각적 공해였고, 어떤 것은 심지어 보행을 방해하거나, 미술 존재 자체에 대한 반성적 질문을 자아내기까지 했다. 그러나 어떤 공공미술들은 공공의 삶 안으로 들어와 대중들과 소통하며, 자신만의 공간성에서 타자와 함께 사는 공간으로 그 정체성을 확대시키기도 했다.

    근대 미학이 일상적 감성을 배제한 아름다움에 관한 판단이나 평가에 대한 주제였던 반면, 현대 미학은 미적 감성 혹은 경험은 대상에서 얻는 고유함을 뜻하게 되었다. 제의적 성격을 가진 예술작품들은 원본성과 유일성, 그리고 일회성이라는 특성을 통해 감상자에게 권위적 경험을 제공하며, 이를 통해 일종의 권력을 행사해왔다. 반면 벤야민은 아우라를 느낌, 시선, 지각으로 파악하여 감상자가 주체로서 경험하는 것에 집중하였다. 아우라는 객관적 특성을 넘어 주체적 경험을 통해서도 다다를 수 있다. 현대 예술에서는 작품 앞에서 작품이 스스로를 전시하면서 산출하는 일시적 집단 형태의 한가운데에서 나타난다.(부리요 니꼴라, 현지연 역, 『관계의 미학』, 미진사, 2011, 108쪽) 이제 관람객은 단순한 수용자 혹은 응시자가 아닌 예술의 의미를 창출해 내는 생산자로서의 지위를 가지게 되었다.

    ‘김무기, <미래로의 도약>, 2007년(인천공항 진입로 중앙 잔디광장)’ 작품은 장소의 상징과 함께 조형물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보여주며 대중에게 ‘쾌(快)’를 선사했고, ‘이재효, <0121-1110=107042>, 2007년(서울시 강동구 천호대로 1006 브라운스톤 천호빌딩 앞)’는 나무가 가진 따스한 질감을 우연히 밤나무에 노출된 관객의 감정에 그 따스함을 이입시키는 데 성공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조너선 보로프스키, <하늘을 향해 걷는 사람들>, 2008(서울시 강서구 공항대로 396 귀뚜라미보일러 사옥 앞)’과 같이 관람객들에게 즐거운 이야기를 한 편 들려주는 듯한 조형물이 있는가 하면, ‘서도호, <카르마>, 2009년(서울시 영등포구 영중로 15 타임스퀘어 앞)’ 과 ‘베르나르 브네, <37.5°ARC>, 2010년(서울시 중구 을지로5길 19 페럼타워 앞)’, ‘하우메 플렌자, <칠드런스 소울>, 2012년(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 산록남로 762길 69 본태박물관 야외)’ 작(作)과 같이 작품을 관람함으로써 소비하는 관람객들의 지위를 2차 생산자로 끌어올리는 작품들도 존재했다. 위에서 언급한 작품들은 많은 대중들에게 공감되고, 이해받으며, 그들의 삶으로 스며들었다. 이를 통해 관람객들은 공공미술의 소비자에서 의미를 생산해 내는 주체로 자리하게 되었다.

    과거 예술은 시공간적 제약을 받았다. 기술 복제가 가능해짐에 따라 전통적 아우라는 해체되었으며 그 의미는 확장되었다. 또한 공공미술은 정지한 것이 아니라, 그 길을 걸어 다니는 이들에 의해 여기저기로 옮겨붙는 불이 될 수도 있는 파급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소수가 아닌 대중이 예술을 소비하게 되면서 예술에 대한 지각 방식은 유희의 영역으로 전환되었다. 이러한 참여 방식의 변화는 대중이 예술을 비평할 수 있게 만들었고, 이는 예술이 정치적으로 기능할 수 있게 하였다. 사회적 변화를 멀리서 관조하는 것이 아니라 혁명으로써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관객은 여전히 자신이 마주하는 예술에 아우라가 존재하기를 원한다. 아우라가 있지 않은 대상은 예술 그 하등의 것으로 취급될 것이기 때문이다. 좋은 예술은 존재 자체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조금 욕심을 내어 스스로 예술로서 인정받고 자신의 가치에 대해 평가받고자 한다. 그러므로 아우라의 주체가 작품 그 자체로 이동하는 상황 속에서 공공미술은 여전히 숭배 가치를 높이고자 하는 시도를 해야 한다.

    “아우라의 경험은 그러니까 인간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반응 형식을 무생물이나 자연이 인간과 맺는 관계로 전이시키는 것에 기초한다. 시선을 받은 사람이나 시선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시선을 열게 된다. 어떤 현상의 아우라를 경험한다는 것은 시선을 여는 능력을 그 현상에 부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발터 벤야민(김영옥, 황현산 역), 「보들레르의 몇 가지 모티브에 관하여」, 『발터 벤야민 선집 4』, 도서출판 길, 240-241쪽.



    아우라가 상실된다는 것이 감각의 평등화를 의미한다면 공공미술의 여기에서 탄생한다. 감각의 공동소유가 가능해짐으로써 예술의 권력적 실재들에 대해 고찰할 수 있게 되고 예술은 특별한 무엇의 의미를 누릴 수 있는 기회는 늘어났다. 기존의 예술이 갖고 있던 진지성이 해체되고 새로운 미적 가치가 들어설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예술의 본질은 단순히 물리적 대상으로서의 작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을 창조하고 감각적으로 받아들이는 역동적이고 진화하는 경험적 활동에 있다. 그래야만 예술은 지속될 수 있다. 물질로 권위조차 사들일 수 있다고 해서 모든 예술이 세속화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유로워지거나 민주화된 것도 아니다. 예술이 가진 본위가 아닌 오독은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기에, 예술가는 이제 권력층과 어설픈 권력을 가진 관람객 모두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체계화될수록 예술가들은 창작자가 아닌, 그저 상품에 대한 생산자의 위치로 그 지위가 떨어진다. 문학이든 미술이든 소비시장의 눈치를 봐야만 하는 현재 상황에서 현대의 예술 소비자는 무한 복제된 예술품을 구매함으로써 스스로가 예술을 향유하고 소비하고 있으며 심지어 소유했다고 착각할 수 있다. 반면, 공공미술은 주인이 많을수록 가치가 올라간다.

    특정 개인들만이 독점적으로 향유하던 과거의 예술 작품은 일시성과 지속성에 그 근거를 두고 있었던 반면, 현대의 예술 작품은 즉시성과 반복성을 그 특징으로 하며, 이러한 특징이 없는 현대예술은 수명이 짧다. 아우라의 개념이 고정된 의미로 존재하지 않듯 것처럼 다양한 뜻을 지닌 아우라가 이제는 완전히 붕괴하였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게르노트 뵈메에 의하면 아우라가 공간적 폐쇄성을 지닌 ‘제의가치(Kultyrwert)’를 상실했더라도 예술작품에서는 인간의 인식 단계에서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존재한다. 그러한 부분이 없다면 매체는 예술로서 승화의 단계까지 갈 수 없다. 그 ‘부분’이 있는 한, 아우라는 일회성의 소멸에 의해 소멸하는 것이 아니다. 미술작품이 하나뿐일 때만 그 아우라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듯 일상에서 익숙하게 마주하던 것에서도 아우라를 느낄 수 있다.

    뒤샹의 <샘>이 단순히 변기가 아닌 예술 작품이 되기 위해서는 이를 예술 작품이라 부르는 이들이 있어야 하고 그들은 예술계 내에서 권력을 가져야 한다. 권력은 아우라를 낳고 아우라는 이렇게 회귀 혹은 부활하는 것이다. 특히 팝아트는 계속해서 공산품과 무엇이 다른가에 대한 질문을 받아왔다. 공산품이 예술이 되는 방법은 간단하다. 어떤 사회제도가 감상의 대상으로서 지위를 부여하면 되는 것이다. 기성품의 외형을 가지고 있지만, 작가의 손을 거쳐 오브제로 재탄생 된 팝아트의 경우 유일성을 가지기는 하나, 원본성에 대한 공격을 받을 수 있다. 어떤 대상을 예술 작품으로 끌어올리는 방법은 대상이 가지고 있는 특질에 대한 분석이 아니라, 예술계에 몸담은 이들에게서 부여되는 어떠한 자격이다. 과거에는 제의적 가치를 통해 예술의 권위가 생겨났던 것과 달리 현대에는 얼마나 권위 있는 곳에서 전시되고, 얼마나 권위 있는 예술계 인사가 인정했는지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진다. 작품성과는 별개로 누가 그 대상을 만들어 냈는가, 그가 얼마나 유명한가도 중요한 문제가 된다. 이렇게 생겨난 아우라는 아우라의 부활이 아닌 퇴화이다. 즉 아우라 없는 아우라이다.

    그러나 공공미술의 권위는 소비자, 즉 길에 서 있는 사람이 만들어 낸다. 그러므로 그들을 위한 미술이어야만 한다. 그래서 공공미술은 반드시 장조일 필요가 없다. 공공미술을 마주하는 행인들이 자신을 예술 앞에서 감각하게 하는 정서는 반드시 긍정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술의 역할이 애초에 무엇이었는가를 따져보기 위해 과거를 돌아보자면, 선창을 하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된다. 남의 장례에서 돈을 받고 곡을 하는 곡비(哭婢)는 선창자의 역할을 한다. 죽은 이가 몇 살인지, 어떻게 살다가 어떤 방식으로 죽었는지에 따라 곡비는 그에 맞는 곡조와 목소리, 내용과 형식을 갖추어 곡을 한다. 곡비가 하는 선창을 들은 이들이 이에 반응하고 장단을 맞춤으로써 개인의 죽음이 모두의 예술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한국의 공공미술은 내용과 형식을 갖춤과 동시에 저만의 ‘이야기’를 지녀야만 주체로서의 생명이 생겨난다.

    그러나 모든 공공미술이 따뜻한 정서를 불러올 수는 없거니와 불러올 필요도 없다. 우리는 모두 어떤 불행으로부터 살아남은 사람들이고, 그러한 불행을 마주 보며 살아야 하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독특한 나라다. 아무리 슬픈 일을 겪어도 그 일이 일어난 곳을 떠나지 않는다. 한국인에게는 슬픔이 발생한 그곳은 여전히 삶의 공간이기 때문에 그곳에서 슬픔을 곱씹으며 살아간다. 통증을 스스로 영원히 건드리며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대신 울어줄 곡비가 필요하다. 슬픔이 모자랄 일이 없도록 상을 치르는 내내 곡을 쉬어서는 안 되는 곡비의 역할은 죽은 이의 시신을 매장하는 순간 끝이 난다. 사건의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기에 사건을 더 객관화하고 실감 나게 노래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한국에서의 공공미술은 우는 표정을 짓고 있어도 된다. 한국이라는 독특한 나라의 공공미술은 울어도 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울어야 마땅한 미술일 것이다.

    [박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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