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本紙 신춘문예 당선자 8인
올해 신춘문예 당선자 8명이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층계참에 섰다. 지금까지 올라온 계단을 내려다보며 잠시 숨을 고르고, 새로운 마음으로 계단을 올라야 한다. 왼쪽부터 김웅기(문학평론), 이수빈(시), 한승남(시조), 박시영(미술평론), 송희지(희곡), 김지나(동시), 김은희(동화), 차영은(단편소설). /김지호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문학의 영토에 발을 내딛는데 나이 제한은 없다. 올해 신춘문예 당선자 8명의 나이는 20대부터 50대까지 골고루였다. 평균 연령은 36.8세. 작년(40.1세)보다 어려졌다. 최연소는 이수빈(21·시)씨, 최고령은 한승남(57·시조)씨다. 이 밖에 송희지(23·희곡)·김지나(29·동시)씨가 20대, 김웅기(30·문학평론)·박시영(37·미술평론)씨가 30대, 차영은(41·단편소설)·김은희(56·동화)씨가 각각 40, 50대다.
◇”시에 나오는 어린아이? 사실은 나…”
올해 최연소 당선자 이수빈씨는 최근 본지 신춘문예 당선자 중 가장 어리다. 2021년 희곡 당선자 임규연(당시 21세)씨 이후 최연소다. 시 부문만 놓고 보면 지난 50년을 거슬러 올라가도 이씨보다 어린 경우는 없었다. 차분히 서정을 쌓아올리는 당선작 ‘아름다운 눈사람’, 투고작 ‘영원’ 등을 읽고 일부 심사위원은 “아이가 있는 30대 중후반의 여성일 것 같다”고 추측했다. 이 이야기를 전하자 이씨는 “이렇게 말하면 시를 읽는 재미가 떨어질 것 같아서 고민되지만, 사실 시에 나오는 어린 아이는 나”라고 고백했다. “제가 아주 아주 어린 아이 같다고 느껴요. 그래서 스스로를 들여다볼 때면 조금 안쓰럽고 슬프고, 그럼에도 잘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는 “어린아이를 향한 애정이 시에 생생하게 잘 그려졌다는 칭찬처럼 들려 기분이 좋다”고 했다. 고양예고 졸업, 추계예대 문예창작과 2학년 재학 중인 이씨는 고교 1학년 때부터 시를 썼고, 고교 2학년 때부터 신춘문예 문을 두드려왔다.
그래픽=송윤혜 |
평단의 주목을 받는 젊은 시인이 희곡으로 등단하는 깜짝 사건도 있었다. 주인공은 시인 송희지씨. 2019년 ‘시인동네’로 등단, 2023년 시집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을 냈다. 작년 말엔 문학과지성사가 주는 ‘문지문학상’을 받았다. 송씨는 “시인이 되기 이전부터 늘 다양한 갈래의 문학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며 “가변에 능한 시적 공간이 아닌 고정된 무대 위에서, 사람의 입을 빌려 읊어진다면 어떨까 궁금해서 희곡을 써보기로 마음 먹었다”고 했다. “시와 희곡 어느 쪽의 쓰기도 소홀해지지 않도록 노력하려 합니다. 두 세계가 맞닿을 때, 혹은 양극으로 치달을 때 어떤 효과가 생길지 고민하고, 또 재현해보려 합니다.”
◇”절필 결심했지만 ‘거의 다왔다’는 말에…”
꾸준함은 결실을 본다. 오랜 애정, 지속적인 투고는 내공이 된다. 단편소설 당선자 차영은씨가 처음 신춘문예에 도전한 때는 2018년.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2021년 한 신문 신춘문예 최종심에 올랐지만, 고배를 마셨다. 차씨는 “당선이 아니어서 절필을 결심했는데, 소설 쓰는 지인이 ‘거의 다 왔다’고 말해주었다”고 했다. “미미한 전진 혹은 퇴보까지도 변화로 간주해주는 너그러운 세계가 바로 문학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나도 소설을 쓸 수 있지 않을까….” 그는 “애쓰는 인간에 대해 쓰고 싶다”며 “주어진 여건에 순응하지 않고 결과가 어떻든 애쓰는 인간이 내 소설에 나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시조 당선자 한승남씨는 2020년 가을부터 시조를 썼다. 조선일보에 투고한 지는 올해로 네 번째다. 한씨는 “남들보다 늦게 시작해 쉽지 않았지만 일하며 밤늦은 시간과 아침, 주말에 틈틈이 시조를 썼다”며 “신춘문예에서 떨어진 쓰라린 경험이 실력으로 향상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자신을 위로했다”고 했다.
문학평론 당선자 김웅기씨가 기억하는 최초의 시는 초등학교 6학년, 작은누나가 읽어준 기형도의 ‘엄마 걱정’. 그때부터 시를 마음에 품었다. 대학·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그는 “시인 한 명 한 명을 깊게 들여다보는 일을 즐겼다”고 했다. 그러면서 차츰 “나는 시를 쓰는 사람보다는 읽는 사람이 더 잘 어울리는구나” 갈피를 잡았다.
◇”삶의 순간 모여 무럭무럭 자라는 중”
자신의 삶과 밀착된 작품이 주는 울림은 남다른 면이 있다. 동시 당선자 김지나씨는 7~14세 아이들을 가르치는 공부방에서 일한다. 그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언니, 오빠 할 것 없이 서로 배움을 주고받는다”며 “일을 하며 동시를 쓰는 저의 삶은 이런 순간들이 모인 것”이라고 했다. “매일 새롭게 펼쳐지는 상황들과 주고받는 언어들 사이에서 동시가 쓰입니다. 제 동시는 그 속에서 어린이들과 함께 무럭무럭 자라고 있어요.”
동화 당선자 김은희씨는 명지대 교육학과 유아교육전공 교수였다. 유방암 발병으로 재직 중이던 학교를 그만두고 치료에 매진했다. 이 과정을 온라인 플랫폼 브런치스토리에 연재해 에세이 ‘당신의 밤은 낮보다 아름답습니다’를 출간했다. 그는 “논문으로 시작한 글쓰기가 에세이를 거쳐 동화로 이어졌다”며 “전공 분야 덕에 아이들을 잘 이해할 수 있고, 아이들이 익숙하다”고 했다.
미술평론 당선자 박시영씨는 2017년부터 작품 활동을 한 화가다. 2019~2021년 본지 주최 미술축제 아시아프(ASYAAF) 선정 작가이기도 하다. 연세대 국문과 졸업 후 동 대학원 박사 과정 재학 중인 박씨는 “작가와 비평가의 관계는 화자와 청자의 관계로 보인다. 작가들이 말하는 세레나데를 많은 이에게 읽어주고, 더불어 내 사랑 고백을 알아들어 주는 이도 나와주길 고대한다”고 했다.
[황지윤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