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주는 작고하자마자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서정주가 추천사를 씀으로써 등단의 길을 열어줘 제자 격인 고은 시인은 한 계간지에 “미당은 역사의식 없이 권력편에서 음풍농월했다”고 통렬히 비난하는 글을 기고했다. 이 글이 촉발하여 서정주 시는 모든 교과서에서 자취를 감추었고, 모의고사와 수능시험에 출제되지 않고 있다. 한때 “미당(서정주의 호)은 한국시의 정부(政府)”라고 추켜세웠던 고은이 서정주를 비판한 이유는 친일적 색채가 농후한 작품을 한때 발표했던 탓도 있지만 ‘처음처럼ㅡ전두환 대통령 각하 56회 탄신일에 드리는 송시’를 썼다는 것이 더 큰 이유였다.
언제부터인가 대학 신입생들에게 서정주의 작품 가운데 아는 것을 말해보라고 하면 대부분 알지 못하고 말문을 닫는다. 그저 ‘친일 시인’이라고 이구동성 말할 뿐이다. 윤동주 시가 텍스트가 되면 눈이 반짝이고 얼굴이 환해진다. 몇 마디씩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윤동주는 ‘식민지 하늘의 가장 빛나는 별’이며, 독립운동하다 옥사한 시인이요, 일본과 중국 조선족의 교과서에도 작품이 실려 있는 시인이다.
서정주에 대해서는 비판의 말도 옹호의 말도 하기가 조심스럽다. 재작년 ‘미당시맥’이라는 문예지가 창간되었고 올해부터 동국대 미당연구소에서 제1회 미당학술상을 공모하고 연구 논문을 받아 2명에게 500만원씩의 상금을 준다. 계간 ‘미당문학’은 작년 11월 제9회 신인상 시상식을 열었다. 이렇듯 서정주의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려는 운동이 일각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교과서에 한 편의 시도 실리지 않음으로써 학생들은 전혀 모르고 있다.
서정주의 작품을 학교에서 가르치면 정녕 안 되는 걸까. 학생들에게 서정주의 ‘송정오장송가’와 ‘처음처럼’을 복사해 나눠주고 또한 그의 주옥같은 작품들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문인이든 정치인이든 공과 과를 함께 논할 수 있는 시대가 오기를 바란다.
2월 일사일언은 이승하 시인을 포함해 나연만 소설가, 진담 작가, 에노모토 야스타카·'나만의 일본 미식 여행 일본어’ 저자, 박시영 2025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당선자가 번갈아 집필합니다.
[이승하 시인·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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