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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2 (금)

    이슈 미술의 세계

    [일사일언] 누구를 위한 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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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사를 그만둔 후로는 정장을 입지 않는다. 결혼식장에도 면바지에 재킷을 입고 간다. 문득, 무슨 생각인지 양복을 입고 나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 옷장을 열어보았다. 옷장의 3분의 1 정도는 정장으로 채워져 있었다. 입어보니 허리가 맞지 않거나, 옷깃이 부채만큼 넓거나, 바지통이 좁은 것뿐이다. 세월이 지나 몸은 커졌고 유행은 바뀐 것이다. 맘에 드는 정장은 장례식장에 입고 가는 검은 양복 한 벌뿐이었다.

    매일 옷장을 열고 닫는다. 옷장 속의 옷들은 매일 보면서도 몇 년간 한 번도 입지 않은 것이 부지기수다. 관상용 미술품도 아니면서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냉장고 속 형편은 또 어떤가. 언제 넣었는지 기억도 안 나는 떡과 고기들이 빙하 속 매머드처럼 굳어 있다.

    입춘도 지났겠다, 이래도 되는가 싶어서 오랜만에 대청소를 했다. 옷이나 냉장고 속 음식뿐 아니라, 착용했거나 이용한 지 10년도 더 된 신발, 모자, 키보드, 명함 지갑, 안경, 필라멘트 전구, 노트북, 반려동물 장난감, 편 적도 없는 접이식 의자, 딱 한 번 쓴 채칼과 보온병 등 앞으로 쓸 일이 있을까 싶은 물건이 끝없이 나왔다.

    하루 만에 이것들을 처리할 수는 없었다. 버리고 비우는 작업은 며칠간 계속됐다. 한편, 포장도 안 뜯은 건전지, 반창고, 진통제 등 정말 필요한 물품도 ‘발굴’됐다. 어디에 있는지 몰랐기에 다시 사곤 했던 것들이다.

    내게 현재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어떤 물건을 쓰며 지내는지 하루를 되짚어 보았다. 침대, 컴퓨터, 휴대폰, 의자, 식기 등 쓰던 것들만 반복적으로 사용했다. 침대와 책상을 제외하면 나머지 공간은 내가 아닌 짐이 쓰는 듯 느껴지기도 했다. 물건이 늘어날수록 사용 빈도는 줄어든다. 먹지 않는 음식이 얼어있는 큰 냉장고, 입지 않는 옷이 들어있는 옷장, 존재조차 잊어버린 물건들을 보관하는 서랍장은 야금야금 나의 공간을 침범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람이 개인적으로 필요한 공간은 다섯 평이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나머지는 대부분 짐이 차지하고 있다. 주객이 전도된 생활을 하고 있진 않은지 되돌아보게 된다. 샀으면 아끼지 말고 쓰고, 쓰지 않는 것은 과감히 버려야 하지 않을까. 기억도 못 할 만큼 소비를 하지만, 다 쓰지도 못하고 죽는다. 그렇게 생각하니 슬퍼진다.

    [나연만·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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