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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4 (일)

    이슈 미술의 세계

    사카모토 “시간 앞 나약해지는 인간… 그럼에도 굳건한 마음 그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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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물’로 칸 영화제 각본상 수상

    日 사카모토 유지 작가 인터뷰

    조선일보

    시간 여행을 하게 된 칸나(마쓰 다카코·오른쪽)는 젊은 시절의 남편 가케루(마쓰무라 호쿠토)와 다시 사랑에 빠진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바꾸고 싶으냐는 질문에 사카모토 유지는 “무엇을 바꾸기보다는 세상을 떠난 사람이나 반려동물을 다시 한번 만나고 오고 싶다”고 했다. /미디어캐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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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번째 키스’라는 제목부터 미스터리한 터널을 통해 15년 전 남편을 처음 만난 날로 돌아간다는 설정까지… 15년 전 작품을 재개봉했나 싶은 이 영화를 믿고 보게 만드는 건 각본가 사카모토 유지(58)의 이름이다. 영화 ‘괴물’(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로 2023년 칸 국제영화제 각본상을 받은 사카모토는 일본을 대표하는 스타 작가다. 그는 이번에도 평범한 인물을 통해 시간 앞에서 나약해지는 인간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좋은 이야기는 사소한 일상에 깃들어 있음을 증명한다.

    이혼을 준비하던 중, 갑작스러운 사고로 남편을 잃게 된 아내 칸나(마쓰 다카코)는 우연히 과거와 연결된 터널을 발견한다. 15년 전으로 돌아간 칸나는 젊은 남편과 다시 사랑에 빠지고 남편이 죽는 미래를 바꾸기 위해 수차례 시간을 되돌린다. 26일 한국 개봉을 앞두고 서면으로 만난 사카모토 유지는 “인간은 시간에 지배당한다. 인간의 감정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이번에는 사람의 감정을 시간의 흐름과 함께 그려내고 싶었다. 어쩌면 시간의 흐름에 휘둘리지 않는 인간의 마음을 그리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조선일보

    과거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바꾸고 싶으냐는 질문에 사카모토 유지는 “무엇을 바꾸기보다는 세상을 떠난 사람이나 반려동물을 다시 한번 만나고 오고 싶다”고 했다. /미디어캐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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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에선 ‘사랑에 빠지면 눈이 멀지만, 결혼을 하면 못 봤던 결점들이 4K 화질로 보이기 시작한다’처럼 유쾌하지만 가볍지 않은 대사가 돋보인다. 생활 밀착형 대사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비결이 있나.

    “주변의 사소한 것들을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그것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를 고민한다. 예를 들어 경제적인 문제로 연애 감정이 사그라질 수 있는 것처럼, 개인적인 고민이라 생각했던 게 실은 사회적 문제일 수도 있다. 우리가 어떠한 거대한 문제를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누군가에게 공감하기도 훨씬 쉬워진다.”

    –실제 경험이 반영된 부분도 있나. 아내는 영화를 보고 어떤 반응을 보였나.

    “아내는 한국 드라마를 보느라 내 작품을 볼 일이 없을 것 같다! 아마 많은 부부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을 것이다. 부부 관계란 깊으면서도 단순하다고 생각한다.”

    –데뷔작 ‘도쿄 러브 스토리’를 시작으로 청춘 드라마를 많이 썼다. 최근 영화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에서도 현실에 부딪힌 20대 연인을 실감 나게 묘사했다. 젊은 감각을 유지하는 비결이 있나.

    “인류가 등장한 이래로 다툼의 원인이나 고민거리, 울고 웃는 이유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고 믿는다. 시대에 따라 변하는 옷차림이나 소품은 의상팀과 미술팀이 준비해 주니, 나는 그냥 사람을 그려낼 뿐이다.”

    조선일보

    2023년 칸 영화제 각본상을 받은 영화 '괴물'. /미디어캐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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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된 육아 경험을 계기로 쓰게 된 ‘마더’(2010) 이후 ‘사회파 드라마 작가’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낙인을 견디며 살아가는 범죄자의 가족(‘그래도, 살아간다’·2011), 늦은 나이에도 꿈을 포기하지 못하는 삼류 음악가(‘콰르텟’·2017) 등 사회 변두리에 있는 인물들을 주로 그려왔다. 칸 각본상 수상작인 ‘괴물’ 역시 어른들의 오해와 편견에 갇힌 두 소년의 이야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좋은 의미로 관객을 불편하게 하는 각본”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칸 영화제 수상 이후, 작가로서의 책임을 느낀다고 말했다. 어떤 의미였나.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어떤 일이든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작가의 책임이란 인간을 긍정적으로 그려내는 것이 아닐까. 물론 마감일을 잘 지키지 못한다는 점에선 무책임한 면도 있다.”

    조선일보

    영화 '첫번째 키스' /미디어캐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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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로서 어떤 인물에게 매력을 느끼나.

    “자신을 불쌍하게 여기지 않는 인물을 좋아한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것을 웃어넘기거나, 그럼에도 누군가를 위해 살아가려 하거나, 항상 더 앞으로 나아가려는 인물을 그리고 싶다. 누군가를 원망하거나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게 당연한 상황에서도 스스로 삶을 손에 쥐려는 인물을 그리고 싶다.”

    –시간 여행을 통해 칸나가 15년간의 결혼 생활을 다시 써 내려간 것처럼, 관객도 이야기라는 터널을 통과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당신이 생각하는 좋은 이야기는 무엇인가.

    “등장인물을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다. 화려한 이야기보다 등장인물이 마음에 오래 남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야기가 끝나고 나서도 ‘그 사람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떠올리게 되는 인물을 만드는 게 변함없는 목표다.”

    ☞사카모토 유지(58)

    영화 ‘괴물’로 제76회 칸 국제영화제 각본상을 받은 일본의 영화·드라마 각본가. 1991년 24세에 ‘도쿄 러브 스토리’로 신드롬을 일으키며 데뷔했다. ‘마더’(2010)를 시작으로 아동 학대, 싱글맘, 달라진 결혼관 등 사회문제를 예리한 시각으로 그려내며 ‘사회파 작가’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대표작 ‘마더’와 ‘최고의 이혼’은 한국에서도 리메이크됐다.

    [백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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