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40대 차세대 감독 포진… 한국은 ‘포스트 봉준호·박찬욱’ 없어
그래픽=이진영 |
◇일본 영화 부상… “40대 감독층 탄탄해 기세 지속”
칸의 싸늘한 성적표를 받아든 영화계는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다. 본지가 전문가 11인에게 설문한 결과, “수년간 누적된 문제점이 수면 위로 드러난 사건”이라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국내 대표 투자배급사인 CJ ENM만 봐도 확연하다. 영화 ‘기생충’과 ‘헤어질 결심’ 투자배급사로 한국 영화 글로벌 진출에 앞장섰던 CJ ENM은 올해 칸 출품작을 못 냈을 뿐 아니라 해외 바이어를 불러 모을 부스조차 못 차릴 형편이다. “판매할 영화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 영화 부진이 일본 영화 부상과 정확히 엇갈렸다는 점에서 더욱 뼈아프다는 지적이 많다. 경쟁 부문에 진출한 ‘르누아르’는 지난해 ‘플랜75’로 방한한 하야카와 지에 감독의 작품이다. 심야상영 부문을 가져간 호러 게임 영화 ‘8번 출구’는 ‘스즈메의 문단속’ 프로듀서인 가와무라 겐키가 연출했다. 쓰마부키 사토시 주연의 ‘한 남자’로 국내에도 알려진 이시카와 게이 감독은 ‘창백한 언덕 풍경’으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됐다. 세 감독이 모두 40대라는 사실은 ‘포스트 봉준호·박찬욱이 없다’는 한탄이 나오는 한국 영화 현실과 대조된다.
◇CJ, 중급 영화, 모험심… 3대 지지대 사라지며 ‘비틀’
한국 영화는 1990년대 후반 호황기에 접어들며 점차 안일해진 데다 코로나 이후 투자 축소, 제작 편수 감소로 상황이 악화됐다. 2024년 국내 영화영상 산업 규모는 3조3322억원으로 전년 대비 4% 성장했다. OTT 시장은 2조719억원으로 11% 늘었으나, 극장 매출이 1조2603억원으로 5.5% 줄었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에 비해 53% 수준이다. 줄어든 시장에서 모험심은 사라지고 안전한 투자만 이뤄졌다. 검증된 감독과 스타 배우에 매달려 대형 자본이 들어갔다. 흥행 공식에 맞추다 보니 새로움과 개성을 보기 어려워 관객도 등돌리고 영화제도 외면하게 됐다. 김형호 영화시장 평론가는 “한국 영화는 돈도 못 벌고, 예술적 도전도 못하는 이중의 늪에 빠졌다”고 했다.
2022년 칸 감독상(박찬욱) 수상작 '헤어질 결심'. /CJ EN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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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늪에서 빠져나오려면 대형 상업영화와 저예산 독립영화로 양극화된 체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남동철 전 부산국제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는 “20억~30억원 규모의 중급 영화를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 영화 약진은 10억~20억원으로도 탄탄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제작 환경이 뒷받침했다는 것이다.
신인 감독과 기획 프로듀서를 적극적으로 키워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2023년 송강호 주연의 ‘거미집’으로 칸에 초청받은 최재원 엔솔로지스튜디오 대표는 “천만 영화 ‘변호인‘은 양우석 감독의 데뷔작이었다”며 “이제는 신인 감독에게 투자하는 패기가 사라진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박종원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영화에 국고 지원을 할 때 시혜 베풀 듯 기계적으로 나눠주지 말고 다양한 작품이 나오는 방향으로 전략을 짜야 한다”고 말했다.
영화인들의 글로벌 시각을 강조하는 의견도 있었다.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초대 집행위원장은 “젊은 감독이라면 국내 투자에만 의존하지 말고 동남아 등 다국적 공동 제작에 눈을 돌려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도움말 주신 분들 강혜정 외유내강 대표, 김도훈 평론가,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초대 집행위원장, 김형호 영화시장 분석가, 남동철 전 부산국제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 박기용 단국대 공연영화학부 교수, 박종원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 교수, 이정하 콘텐츠판다 총괄이사, 정성일 평론가, 주희 엣나인필름 이사, 최재원 엔솔로지스튜디오 대표 (가나다순)
[신정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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