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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4 (일)

    관세폭탄 맞은 ‘세계의 마트’ 중국 이우…겉은 “항전” 속은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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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중국 저장성 이우시에서 미국에 중국산 미용용품을 수출하는 김아무개씨는 4월부터 미국 주문이 끊겨 공장에 원자재를 쌓아두고 있다고 말했다. 김아무개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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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에 중국만 굳건하게 대항하고 있다. 한국은 저항을 안 하고 있다. 중국은 단결해 싸워나갈 수 있다. 미국의 관세가 잘못됐다는 건 확실하고, 분명하다.”



    세계 유통업체에 갖가지 생활용품을 공급하는 중국 저장성 이우시의 궈지상마오청(국제상무성). 이곳에서 30년 넘게 일한 상인 리우씨(가명)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그 행정부가 중국산 제품에 145%의 고율 관세로 압박하는 것에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중국 정부 입장을 빼다 박은 주장이다. 뒤편에는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숨죽여 고통을 감내하면서 “하루빨리 이 전쟁이 끝나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1982년 처음 세워진 상마오청은 “세계 최대 규모 잡화 도매시장”으로 자리잡았다. 200만종이 넘는 중국산 생활잡화의 ‘쇼룸’역할을 한다. 1~5구로 나누어진 상마오청 건물 면적을 합치면 640만㎡, 축구장 896개 면적과 같은 거대 시장이다. 세계의 마트, 온라인쇼핑몰에서 팔리는 장난감, 문구, 속옷, 장식품, 장신구 등이 거래된다. 4월 들어 미국의 상호관세 공격과 중국의 맞대응이 이어지며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하자 세계는 이곳을 주목했다. 들끓는 반미 감정을 상인들은 쏟아냈고, “우리는 몇 년은 거뜬히 견딜 수 있다”며 자신감을 드러낸다. 21일 만난 리우씨도 그 중 한명이었다. “트럼프는 오만한 행위를 하고 있다. 어떻게 한 나라 대통령이 저럴 수 있느냐. 중국은 그런 짓을 하지 않고, 중국인은 애국하는 마음으로 진심을 다한다.”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반복해서 내는 미국 관세 정책에 대한 반대 메시지와 한치도 다르지 않았다.



    정부 입장과 ‘다른 목소리’는 공개적으로는 없지만, 비공개적으로는 있다. 통제의 결과다. 한 상인은 기자의 질문에 손사래를 쳤다. “운영팀에서 지난주에 공지를 내렸다. 언론과의 접촉, 인터뷰는 승인을 얻어서 진행하라고 했다.” 상인과 언론 접촉의 차단에 나선 것이다. 그는 “우리는 미국 관세 영향이 별로 없다. 다른 상인들도 잘 견디고 있다”며 “인터뷰는 곤란하다”고 했다. 지난 9일 미국 상호관세 발효 뒤 가시권에 든 중국 수출업체들의 어려움을 서방 언론들이 전하자, 차단막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중국 수출 하락세는 수치로도 드러나고 있다. 수출품의 주요 운송 경로인 해상운송 시황을 보여주는 중국컨테이너운임지수(CCFI)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전인 1월17일 1557.76에서 지난 18일 1110.94로 29% 감소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해운 정보 분석기관 라이너리티카가 15일 보고서를 내어 “앞으로 3주간 중국에서 화물 예약이 30∼60%, 아시아 나머지 지역에서는 10∼20%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고 보도했다. 반면 중국 관영 언론들은 이우 상인들이 미국 관세 공격에도 미국 외 다른 국가, 내수 등으로 판로를 개척하며 시장이 활기를 띠고 있다는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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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일 중국 저장성 이우시 도매상인 궈지상마오청에 장난감 등을 파는 상점엔 해외 바이어들 발길이 이어졌지만, 할로윈·성탄절 등 미국인들이 중시하는 기념일 관련 제품을 파는 상점엔 손님이 거의 없었다. 이우/이정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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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 통제에도 새어 나오는 목소리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상점 90만곳을 오가며 상마오청의 모세 혈관 역할을 하는 배달·물류 노동자들 얼굴엔 수심이 가득했다. “물건 부치실래요?”라고 물으며 상마오청을 내내 누비던 정씨(가명)는 한숨을 크게 쉬었다. “여기 상인들과 우리는 입장이 다르다. 그들은 버틸 수 있는지 모르지만, 거래가 줄면 당장 타격을 입는다. 하루 벌이가 10~20%는 줄었다.” 지난 15일부터 중국 광둥성 광저우시에서 열리는 중국의 최대 수출입박람회 캔톤페어가 열렸다. “그곳에 들렀다가 이우를 찾는 미국인들이 많았는데, 올해는 거의 없다. 하루라도 빨리 관세전쟁이 끝났으면 좋겠다”고 정씨는 말했다. 4~5㎥ 상점을 빌리는 데 1년 임대료 200만위안(4억원)을 낼 수 있는, 자본력이 튼튼한 상인들은 “쓴맛도 먹을 수 있다”며 관세 전쟁에서 결전 의지를 밝히지만, 정씨 같은 단기 노동자들은 당장 생활고를 걱정했다.



    미·중 무역전쟁에서 미국의 관세 공격에 중국이 “버틸 수 있다”“저력을 키웠다”는 평가가 중국 안팎에서 나온다. 중국 정부와 이우 상인들은 중국 잡화 수출시장도 미국 외 시장 및 내수 판로 개척을 통해 위기를 타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중국의 대표 전자상거래 업체들은 중국 수출기업의 어려움을 나누겠다고 나섰다. 파이낸셜타임스는 20일 알리바바가 수출업체 상품 조달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고 전했다. 온라인 쇼핑몰 징둥닷컴은 2000억위안(38억9000억원)을 들려 중국 업체의 제품을 구입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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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일 세계의 도매시장으로 불리는 중국 저장성 이우시 궈지상마오청엔 중동과 중앙아시아에서 온 바이어들이 많았다. 이우/이정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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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미국 수출 비중이 큰 기업들에 다른 판로의 개척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무역업체들은 설명했다. 미용용품을 한국과 미국에 수출하는 김아무개씨는 한숨을 크게 내쉬면서 “관세가 철회되거나 유예될 수도 있다. 실제로 그렇게 되면, 발주를 미뤘던 오래된, 신뢰를 쌓은 미국 고객이 연락을 할 텐데 그때 다른 데 팔아서 물건이 없다고 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더구나 미국 물량을 소화할 소비시장은 없다고 봐도 된다”라고 덧붙였다. 김씨가 계약을 맺은 오이엠(OEM·주문자상표부착) 공장엔 상호관세 발효 뒤 주문이 연기되면서 원·부자재가 고스란히 쌓여있다. 김씨는 “많게는 500~1000명 직원을 둔 중국 회사들은 공장을 한두 달 멈추면 운영이 어려워질 것”이라며 “아직 본격적인 감원 소식은 없는데, 힘들어지면 무급 휴직 등을 고려할 것”이라고 했다.



    기업인들은 불확실성이 하루빨리 해소되길 바랐다. 이우에서 20년 넘게 무역업에 종사한 이상조 이우한국인상회 회장은 “이번엔 지나가는 소나기가 될지, 오랜 재난이 될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곳에 진출한 1300여명의 한국 상인 가운데 80%는 무역업에 종사하고 있다. 이 회장은 “상황이 심각하다”며 미국 의존도가 높은 여러 한국 업체들이 당장 발송 연기, 주문 중단 등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미국 안팎에서 관세 부과 부작용으로 인플레이션 위험을 많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 부분이 영향을 아무래도 끼쳐 불확실성이 몇 년 지속하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회원사들이 겪는 어려움이 하루라도 빨리 해소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우/이정연 특파원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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