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는 지난 4월4일 오전 11시22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만장일치로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을 선고했다. 사진공동취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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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영재 | 의정부지방법원 남양주지원 판사
2025년 4월4일 헌법재판소가 만장일치로 윤석열 전 대통령을 파면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헌법적 판단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발발한 지 123일 만이었다. 헌법재판소는, 실체적 요건을 충족하지 않은 상태에서 절차적으로도 위법하게 진행된 비상계엄 선포가 그 자체로 위법할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진행된 일련의 상황들(국회에 대한 군경 투입, 국회 등의 활동을 전면 금지하는 포고령,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한 압수·수색, 법조인에 대한 위치 확인 시도 등)을 통해 윤석열 전 대통령이 헌법 수호 의무, 법치주의와 민주주의 원칙, 권력분립 원칙, 사법 독립 원칙, 선거의 자유 및 공정성 보장 원칙 등을 위반했고, 표현의 자유, 신체의 자유, 정당 활동의 자유,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 등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선고에 걸린 약 20분 남짓, 한 문장 한 문장을 주의 깊게 들었고, 주문 낭독이 끝난 뒤엔 절로 한숨이 나왔다. 우습지만, 앞으로도 좀 더 법조인으로서 살 수 있겠다는 안도에서 나온 한숨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2시간30분 만에 국회가 해제 요구 결의를 했고 6시간 만에 계엄이 해제되었으므로 사실상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그날 밤엔 실로 많은 일이 일어났다. 규범적으로 우리의 정치적 기본권은 일시 중단되었고, 군이 국회와 중앙선관위에 투입되었으며, 군과 시민이 대치했던 밤이었다. 헌법재판소는 12·3 비상계엄 사태가 희생 없이 6시간 만에 종결된 것은 과거 민주주의를 쟁취하고자 목숨을 버렸던 수많은 죽은 자들의 양심과 그 양심을 이어받은 산 자들의 양심, 즉 그날 밤 국회 앞으로 달려 나간 시민들과 소극적 저항으로 군사명령을 무력화한 군인들의 양심 덕분이었음을 밝혔는데, 이 부분은 많은 이들에게 백미로 꼽힌다.
12월3일 이후에는 더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비상계엄을 반성하고 성찰하기는커녕 이를 정당화하고 옹호하는 목소리가 정치권과 법조계에서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비상계엄의 위헌·위법성을 밝히고 헌법이 정한 대로 이 사태를 해결하고자 하는 생각들이 정치적 진영 논리로 분류되었다. 탄핵 절차에서도 위와 같은 정치 구도가 그대로 반복되어 ‘계엄 찬반세력’, ‘탄핵 찬반세력’, ‘(대통령) 체포 찬반세력’, ‘(대통령) 구속 찬반세력’이라는 표현이 사용되었다. 그 와중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해 체포영장 및 구속영장을 발부한 서울서부지방법원은 소위 ‘체포 및 구속 반대 세력’에 유린당했다. 그들에게 서부지법은 그저 ‘계엄 반대 및 탄핵 찬성 세력’이자 ‘대통령 체포 및 구속 찬성 세력’의 본거지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12·3 비상계엄 당시 가능한 한 신속하게, 최대한 공개적으로 비상계엄의 위헌·위법성을 밝혀온 나로서는 법조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전문성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것 같은 기간이었다. 성공한 군사독재 시절의 비상계엄들에 대해서도 꾸준히 위헌·위법 판단을 내려온 나라에서 벌어지는 계엄 및 탄핵 찬반 논란이라니, 헌법 찬반 논란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이런 상황에서 헌법재판소가 드디어 12·3 비상계엄의 위헌성을 명백하게 밝혀주었으니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올 수밖에.
한숨 돌리고 나니 다른 문제가 눈에 들어온다. 정치적 결단이었다고는 하나 명백히 규범적 영역으로 넘어온 12·3 비상계엄 사태를 123일간 정치 진영 간 대립 구도로 끌고 온 탓에 헌법재판관들은 탄핵 심판 단계마다 어느 진영에 포섭되었다는 의심을 강하게 받았다. 헌법재판소의 결정도 법적 판단이 아닌 정치적 판단으로 받아들여졌다. 헌법재판소는 어느덧 정치 진영 간 대결의 장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탄핵 결정 이후 승리했다고 자부하는 파면된 대통령이나 헌법재판관을 무리하게 임명 시도한 권한대행의 태도도 여기에서 비롯된 것일 테다. 법원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원래도 그랬다곤 하나 12·3 사태 이후 한층 극심해졌다. 사람들은 이미 각자의 결론을 정해놓고 그 결론에 부합하지 않는 재판에 대해 어느 진영에 포섭된 판단이라고 단정 짓고 판사를 낙인찍어 공격한다. ‘사법의 정치화’, ‘사법의 정치개입’이라고도 비난하는데 과연 그 개념이 정밀하게 사용된 것인지 의심이 든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라도 법원에 오면 두말 않고 재판해야 하는 판사의 입장에선 고민이 깊어져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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