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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01 (목)

    ‘빛의 혁명’이 지켜볼 7공화국 [똑똑! 한국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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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지난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인근에서 열린 ‘내란 종식, 사회대개혁을 위한 시민행진’ 참가자들이 ‘윤석열 재구속’ 등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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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희 |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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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란 수괴의 탈옥’ 사건 직후, 내가 재직하는 대학에서는 윤석열 구속 취소 규탄 학내집회가 열렸다. 초조하게 탄핵을 기다리던 시기였다. 내란의 밤이 그토록 깊은 분노와 좌절을 안겨준 것은 바로 다음날, 마주한 학생들의 얼굴에 남아있던 공포의 그림자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모든 세대는 다음 세대에 더 나은 세상을 남기길 원한다. 점점 더 나빠지는 사회를 물려주는 것 같아 걱정스러웠지만, 그래도 국가 폭력이 난무하던 그런 참담한 시대는 우리만 겪어서 다행이었다는, 그런 시대는 우리 세대에서 끝냈다는, 작은 안도감마저 무너져 내렸었다.



    연대 발언 요청을 받고 무거운 마음으로 함께했던 그 집회에서 나는 크게 위로받았다. 내가 보호에 실패했다고 생각했던 학생들은 이미 자신들이 살아갈 세계를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차별과 착취가 없는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을 함께 만들자는 대학 청소 노동자인 산별노조 분회장의 따뜻한 발언을 차가운 계단에 앉아 들으며, 나는 확신했다. 우리가 물려줄 세상은 불완전하겠지만, 이들은 완전하다. 여의도에서, 남태령에서, 이 대강당 계단 앞에서 밝혀진 희망의 불빛들이, 혐오와 폭력으로 뒤덮인 대한민국을 구하겠구나.



    그러나 모든 혁명이 그러하듯이, 중요한 것은 그 이후이다. 이제 다시 행정부와 국회의 시간이 도래하여 이전처럼 광장의 목소리가 먼지처럼 흩어져버릴 것이라는, 밝은 빛 뒤에 숨은 어두운 의구심에 주목할 시간이다.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던 가족을 둔 학생이 가족에게서 들었던 말이다. “(시위는) 아무도 안 들어주는 말 하려고 가는 거야. 백번쯤 말하면 한번은 들어줄 거야.”



    윤석열은 단지 무능하거나 시대착오적인 범죄자가 아니다. 파농의 말을 빌리자면, 그는 국제자본에 종속되어 스스로 헤게모니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존재의 불안정성을 과시적 소비로 보상하며, 민주주의 국가를 1인 독재국가로 만들려 한, 미완으로 끝난 민족 해방운동의 불행한 부산물 같은 존재이다. 일상의 파시즘을 실천하며 그를 둘러쌌던 세력은 아직도 건재하며, 자성은커녕 대선에까지 출마하고 있다. 제6공화국 헌법이 부과하는 정언적 명령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이들이 완전히 청산되어야 한다. 헌정 파괴 세력 덕에 얻은 유일한 개인적 성과는 현행 헌법의 장엄한 가치를 깨닫게 된 것이었다.



    헌법 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우리 사회의 소수자들이 과연 동의할 수 있을까? 11조 1항,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무뢰한 검찰과 지귀연들의 사법부가 개혁되지 않는 한, 무의미한 조항이 되었다. 32조 3항,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 우리 법률은 이미 한참 전부터 정규직 외의 노동 인구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 119조 2항,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 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그간 일말의 존재감조차 느낄 수 없었던 조항이다.



    이런 상황이니, 우리 사회의 윤석열들은 계엄과 관련된 헌법 77조만 위반한 것이 아니었다. 내란 동조 세력으로 의심되는 후보들이 개헌을 가장 크게 외치는 게 역겹게 들리는 이유다. 국정이 장난인가? 왜 억지로 선거 시기를 맞추어 국회의 견제 권한을 뺏으려 하는가? 3년으로 줄여 대통령 자리를 많이 만들고 싶은 것인가?



    나는 제7공화국이, 표류했던 제6공화국이 국민과 함께 광장을 지켰던 정권에 의해 완성된 이후에, 국민의 염원을 담아 시작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제7공화국을 여는 개헌의 핵심은 급변하는 기술 및 노동시장 환경을 반영한 사회권의 보완과 확대이다. 빛의 혁명 이후에도, 광장의 목소리가 새 정권을 감시하고 독려해야 한다. 이번만은, 백번이나 되풀이해 소리칠 필요가 없으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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