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국힘, 어쩌다 이 지경 됐나
안철수, 권성동, 권영세. /남강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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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언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8일 안철수 의원의 사퇴로 공석이 된 혁신위원장과 관련해 “조속한 시일 내에 신임 위원장을 모셔서 혁신위원회를 출범시키겠다”고 했다. 남은 혁신위원 4명 중에서 위원장을 임명하는 방안 등이 논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당 안팎에선 다음 달 중순 차기 지도부를 선출하는 전당대회가 열리는 상황에서 임기 한 달여인 혁신위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겠냐는 의견도 나온다.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혁신을 한다면서 비대위 해산, 혁신위 좌초 같은 황당한 일이 반복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픽=백형선 |
◇“공천은 3년 후” 절박감 없는 의원들
대선 패배 후에도 쇄신이 이뤄지지 않는 배경에 대해 “의원들이 절박감이 없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대선 1년 만에 치러지는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선 승리가 어렵다는 정서가 지배적이고, 총선은 3년 가까이 남아 의원들이 행동에 나설 유인이 적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의 한 의원은 “앞으로 불어닥칠 특검 공세를 걱정하며 지역구만 챙기는 분위기가 강하다”고 했다. 국회 규탄 대회나 대통령실 항의 방문 때도 모이는 의원은 40여 명 남짓이라고 한다. 한 재선 의원은 “의원들도 사석에선 인적 쇄신 필요성을 이야기하지만 ‘지금은 얻어맞더라도 기다려야 할 때’라는 게 일반적 정서”라고 했다.
영남에 편중된 의원 구성도 민심에 둔해지게 만든다는 지적이다. 21대 국민의힘 의원 107명 중에서 영남권 지역구 의원은 전체의 54%인 58명이다. 여기에 영남 출신 비례 의원, 옛 친윤계 의원 등을 합치면 60%가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당 지도부 역시 영남 위주로 짜여 있다.
영남에서 ‘국민의힘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공식이 작동하기 때문에 여론보다는 당내 정치의 중요성이 크다. 그러기 위해선 당내 분란을 일으키지 않는 편이 낫다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한 수도권 의원은 “영남권 의원들 중에는 ‘다음 지방선거에서 시원하게 져야 오히려 그 반동으로 총선에서 승기를 잡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더라”며 “영남과 인식 차가 너무 커 놀랐다”고 했다.
◇반이재명 지지층 의존
최근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은 대선 득표율의 절반 수준인 20%대까지 떨어졌다. 그런데 의원들 사이에서는 20% 지지층이라도 유지해야 한다는 정서도 작동하고 있다. 2017년 대선 패배 직후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은 지지율이 한 자릿수까지 떨어졌고, 당을 완전히 개편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반면 현재는 영남권을 중심으로 한 반이재명 정서가 20% 콘크리트 지지층을 유지시키고 있는 셈이다.
국민의힘의 한 보좌관은 “강성 지지층만 남는 ‘당의 짠물화’가 가속화될수록 대구·경북 당원들의 영향력이 세진다”고 했다. 국민의힘의 책임당원 중 40%가 영남권에 몰려 있다. 한 당직자는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는 심각한 위기 징후를 보고서로 만들어 돌려도 ‘지금은 이재명 정부 허니문 기간이라 민주당이 잘 나온다’ ‘원래 대선 지면 출렁인다’ 식으로 외면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파편화된 소장파
2000년대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시절엔 소장파 의원들이 ‘미래연대’ 등의 단체를 구성해 지도부를 상대로 정당 혁신, 공천 개혁 등의 어젠다를 관철시켰다. ‘천막 당사’, 지도부 퇴진 등 정풍(整風) 운동도 이들이 아이디어를 내고 당 주류가 수용하며 가능했다. 반면 현재 국민의힘 소장파, 비주류 의원들은 파편화돼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한 초선 의원은 “당을 바꾸려면 20명, 지도부가 귀를 기울이려면 10명은 모여야 하는데 지금은 5명 이상이 모여 선명한 입장문을 내기 힘들다”고 했다. 의원들 간에 정치 개혁이나 주요 정책 이슈에 대해 공감대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민주당은 인사나 정책을 놓고 당내 의원 그룹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반면 우리 당은 전당대회나 대선을 앞두고 누구 나오지 말라고 ‘연판장’을 돌리는 게 전부”라며 “이런 상황에 의원들에게서 혁신의 아이디어가 나오겠느냐”고 했다.
[양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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