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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6 (토)

    이슈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

    [News&View] 李의 E.N.D 구상, ‘남북 두 국가론’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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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가 “관계 정상화는 수교 의미, 헌법과도 배치”

    김정은 “비핵화 절대 없다”… 북핵만 용인 가능성

    조선일보

    이재명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 총회장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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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대통령이 23일(현지 시각)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교류(Exchange), 관계 정상화(Normalization), 비핵화(Denuclearization)로 한반도 냉전을 종식하겠다며 제시한 ‘E.N.D 이니셔티브’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주장하는 ‘두 국가론’을 수용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김정은이 “비핵화는 절대 없다”고 하는 상황에서 교류와 관계 정상화가 진전되면 북핵만 용인될 위험성도 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국가 간의 외교 관계 수립을 의미하는 ‘관계 정상화’가 대북 구상에 포함된 데 대해 “(남북) 두 국가론을 지지하거나 인정하는 입장에 서 있지 않다. 정부의 입장은 ‘남북 관계는 통일될 때까지의 잠정적인 특수 관계’라는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의 입장”이라고 했다.

    하지만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24일 “남북은 오랫동안 사실상의 두 국가 형태로 존재했다”며 “유엔에 동시 가입했고 국제법적, 국제정치적으로 두 국가였고 지금도 두 국가”라고 말했다. 정 장관은 동·서독이 서로 영토와 주권을 존중하자며 체결했던 ‘동·서독 기본 조약’을 언급하며 “남북도 새로 규범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정 장관이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을 ‘평화적 두 국가’로 전환하자고까지 했다. E.N.D에 두 국가론이 깔려 있다는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주재우 경희대 교수는 “관계 정상화는 ‘수교’를 의미하고, 한반도에 ‘두 국가’가 있다는 뜻”이라며 “헌법과 배치된다”고 했다. 헌법 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라고 규정하고 있다.

    ‘북핵 용인’ 논란과 관련해 위 실장은 “(교류, 관계 정상화, 비핵화에) 우선순위와 선후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상호 추동하는 구조를 추진”한다고 했다. 하지만 전직 고위 당국자는 “북한이 비핵화를 안 하겠다는데 교류와 관계 정상화에만 시동을 걸면 결국 핵 문제는 뒷전이 될 것”이라고 했다.

    ◇“E·N 하려다 D는 빠질 수도… 北 핵보유국 인정, 문 열어줄 위험"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이재명 대통령의 대북 구상인 ‘E.N.D 이니셔티브’에 ‘관계 정상화’가 포함된 데 대해 ‘두 국가 인정’은 아니라며 그것이 “우리 헌법에도 맞는 관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면 24일 통일부가 주최한 ‘북한의 2국가론과 남북기본협정 추진 방향’ 세미나에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김정은의) 적대적 두 국가론을 평화적 두 국가로 전환해야 한다”고 했다.

    ◇“北 ‘관계 정상화’ 원치 않을 것”

    정치권에서는 ‘사실상 두 국가로 굳어진 한반도 상황을 인정하자’는 여권 내 분위기가 E.N.D에 반영됐다는 반응이 나왔다. 여권 관계자는 “북한의 핵 보유를 부정하면 남북 관계 진전이 불가능하다는 현실론이 적지 않고, 실용을 중시하는 이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였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위 실장과 정 장관이 ‘역할 분담’을 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통령실이 ‘두 국가’를 인정하면 위헌 논란 등이 커질 수 있지만, 남북 관계 주무 부처인 통일부는 다르다는 얘기다.

    ‘공격적 현실주의’를 주창한 석학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는 “이 대통령은 한반도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북한과의 우호 관계 구축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면서도 “관계 정상화는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그는 “북한은 남한과의 관계 정상화가 주민들의 남한 접근 욕구를 부추겨 통일로 이어질까 두려워한다”며 “이는 김정은이 원하지 않는 바이기 때문에 관계 정상화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김정은 계산 바꿀 요소 없었다”

    이 대통령의 ‘E.N.D 이니셔티브’ 중 교류와 관계 정상화가 강조되면, 비핵화는 어려워진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위 실장은 “(관계) 정상화라는 것은 지금 남북 관계가 극도의 대립과 긴장으로 점철돼 있기 때문에 긴장 완화, 신뢰로 바꾸겠다는 것이고, 그 과정은 교류를 통하여 시작해 보겠다”며 “궁극적으로는 비핵화 과정을 추동하는 구조”라고 했다.

    이에 대해 남성욱 숙명여대 석좌교수는 “D(비핵화)가 가장 앞서야 하는데 반대로 돼 있다”며 “북한의 핵 개발로 인한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가 그대로 있는데 어떻게 E(교류)를 할 수 있겠느냐. 실현되기 어려운 얘기”라고 했다. 셀레스트 에링턴 조지워싱턴대 한국학연구소장은 “E.N.D 구상에서 비핵화를 교류와 관계 정상화 이후에 배치한 것이 김정은 정권에 더 매력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김정은이 남북 관계와 비핵화를 거부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비관적”이라며 “이번 연설에 김정은의 계산을 바꿀 만한 구체적 요소는 거의 없었다”고 했다.

    이 대통령이 제시한 ‘중단→축소→폐기’ 3단계 비핵화 해법이 북핵 용인으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도 크다. 위 실장은 “중단은 핵과 미사일에 관련된 모든 프로그램을 스톱시키는 것”이라며 “이것을 어떻게 검증하느냐는 문제는 중요한 과제다. 또 북한과 협의를 해야 하는 문제”라고 했다. 하지만 에번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 수석부차관보는 “평양이 검증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란 점은 이 대통령도 알 것”이라며 “북한은 검증 없는 중단을 제안하면 한미가 이를 수용하리라 생각할 것이고 이는 북한의 숙원인 미국과의 ‘군축’에 들어맞는다”고 했다.

    ◇美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재확인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캐나다 등 G7 외교 장관들은 23일(현지 시각) 유엔총회 고위급 회기를 계기로 만나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재확인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 국무부 고위 당국자는 “미국의 정책은 여전히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이며 현재로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지도자를 만날 계획이 없다”고 했다

    김정은은 최근 “미국이 허황한 비핵화 집념을 털어버리면 미국과 마주 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했는데, 미국은 ‘비핵화 없는 대화’ 계획이 없다는 취지다. 10월 말 경주 APEC 정상 회의를 계기로 한 미·북 정상 회동도 아직 추진되는 바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톱다운(Top-down)’식 의사 결정을 하는 미·북 정상의 성향상 완전히 그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못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뉴욕=박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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