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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6 (토)

    이슈 한미연합과 주한미군

    ‘한미동맹 산증인’ 김영규 전 주한미군 공보관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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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년 동안 주한미군사·유엔사·한미연합사의 언론 창구 역할을 맡아 ‘한·미 동맹의 산 증인’으로 불린 김영규 전 공보관이 26일 오후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8세.

    조선일보

    역대 최장 44년 복무를 마치고 은퇴를 앞둔 한미동맹의 상징 카투사 출신 주한미군 김영규 공보관이 23023년 10월 11일 오전 서울 용산의 옛 미 8군 사령부 앞에서 소감을 말하고 있다. / 오종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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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세대(67학번)에서 사학을 전공한 김 전 공보관은 1976년 카투사(KATUSA)로 입대해 주한미군과 인연을 맺었다. 그는 미2사단 공보실에서 미 2사단 기관지 ‘인디언 헤드’ 기자로 근무하면서 1976년 북한군의 판문점 도끼 만행사건 당시, 미군 장병들이 북한군과 대치하면서 판문점의 미루나무를 제거하는 ‘폴 버니언 작전’을 지켜보고 기록으로 남겼다.

    전역 후 1979년 주한미군 측 공보실 직원으로 정식 채용됐다. 이후 2023년 퇴임하기까지 44년 동안 한국군과 미군·유엔군의 가교 역할을 하며 내외신 기자들의 현장 취재를 지원했다.

    그는 2023년 퇴임 직전 본지 인터뷰에서 “한국 공보관은 주한미군 사령관의 ‘눈’과 ‘귀’ 역할을 한다”며 “국내 주요 뉴스를 정리해 영문으로 보고서를 만들어 사령관과 참모들에게 전달한다”고 했다. 그는 내외신 기자들과 함께 1000번 이상 판문점을 드나들었고, 1989년 임수경 밀입북 사건 당시에는 남북 업무도 했다.

    그는 주한미군지위협정(SOFA)과 관련한 오해가 한국사회에서 제대로 해소되지 않았다는 아쉬움도 표현했다. 과거 본지 인터뷰에서 “한국군도 외국에 파병되면 똑같이 주재국과 SOFA를 맺는다”며 “2002년 미선이·효순이 사건 때도 초기부터 미 장병들이 (추모) 촛불 집회를 열었는데 이런 점은 거의 부각되지 않았다”고 했다.

    한미연합사는 2023년 10월 20일 경기 평택 서부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한미동맹 70주년 기념음악회에서 김 공보관에게 한미동맹에 기여한 공로로 감사패를 전달하기도 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유족은 부인 이수진씨와 아들 홍석씨, 딸 민지씨, 사위 조덕연씨 등이 있다. 발인은 28일 오전 10시, 장지는 천주교 용인추모공원이다. (02)2258-5940

    [양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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