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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7 (일)

    이슈 세계 속의 북한

    “트럼프, 회담 성사 자체가 목표… 김정은에게 체제 정당성만 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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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복 80년, 한국의 미래를 묻다]

    마이클 맥폴 스탠퍼드대 교수

    조선일보

    마이클 맥폴 스탠퍼드대 교수는 24일 본지와 화상 인터뷰에서 한국과 미국 등 민주주의 국가가 독재국가에 맞서 더욱 단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마이클 맥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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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고립주의로 되돌아가고 있는 미국이 앞으로 얼마만큼 국제 이슈에 개입하고, 다자주의를 회복하는지 여부가 새로운 국제 질서를 좌우할 것입니다.”

    학계와 외교 현장을 넘나들며 미국의 국제 안보·외교 전략에 영향력을 끼쳐온 마이클 맥폴(62) 미 스탠퍼드대 정치학 교수는 24일(현지 시각) 본지 화상 인터뷰에서 “미국이 민주적 리더십을 되살려 자유주의적 국제주의(Liberal Internationalism)를 재개해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번 인터뷰는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 회의 참석 등을 위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아시아 순방길에 오른 날 이뤄졌다. 그는 이달 말 정상회담을 하는 미·중이 향후 수십 년간 초강대국 지위를 유지하는 국제 질서가 유지될 것으로 예상하면서, 미국과 한국 등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권위주의 국가에 맞서 단결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APEC에서 트럼프 2기 들어 첫 미·중 정상회담이 열린다.

    “나는 두 초강대국이 지배하는 국제 체제가 앞으로 수십 년간 유지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 한 가지 변수는 트럼프의 외교 정책으로 미국이 현재 고립된 시기를 겪고 있다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공화당·민주당을 불문하고 대통령들이 국제 이슈에 적극 관여했을 때 안보도 보장되고 번영을 이뤘다. 그런데 트럼프처럼 미국이 발을 빼면 중국이 훨씬 강력해질 공간이 생긴다. 이는 미국의 큰 실수가 될 것이다. 트럼프가 비자유적 민족주의를 미국 외교 정책의 청사진으로 제시한다면, (우리는) 새롭게 개혁된 자유주의적 국제주의가 미국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더 나은 길이라는 점을 설명해야 한다."

    -트럼프가 APEC에서 북한 김정은을 만날 수도 있다는데.

    “(냉전 시절) 레이건 대통령과 당시 미 국무 장관은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도 소련 측 인사와 만났다. 나는 독재자나 권위주의자와의 회담 자체에 반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자체가 목표고, 회담이 곧 결과라고 생각한다는 점이 잘못됐다. 지난 8월 알래스카에서 있었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도 보여주기식 행사였고 구체적인 성과가 없었다. 김정은과도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 미국 대통령이 푸틴이나 김정은 같은 지도자와 같은 무대에 서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 (체제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해 주는 꼴이 될 수 있다.”

    미국 내 손꼽히는 러시아 전문가인 맥폴 교수는 오는 28일 현재 국제 질서에 대한 분석과 향후 미국 외교 정책에 대한 조언을 담은 ‘독재자 대 민주주의자들(Autocrats vs. Democrats)’이라는 책을 출간한다. 책에서 그는 ‘권력’ ‘정치 체제’ ‘개인적 리더십’이 국제 관계를 형성하는 세 가지 주요 요소라고 제시한다.

    -시진핑, 푸틴의 리더십이 끝나면 세계 질서에 중대한 변화가 생길 수 있나.

    “고르바초프가 소련 지도자가 됐을 때 미국과의 관계에서 역사적 방향을 틀었다. 닉슨 전 미국 대통령도 미·중 관계의 방향을 바꾸었다. 시진핑과 푸틴이 아닌 다른 지도자가 지금 각 나라에 있었다면 지금보다 덜 공격적이고 덜 호전적이며 덜 제국주의적인 외교 정책을 펼쳤을 수 있다.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시진핑과 푸틴 이후 국내외 정책에서 양국에 덜 공격적인 지도자가 등장한다고 해도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책에서 중국의 역량을 과대평가하지 말라고 했는데.

    “중국이 막대한 경제적, 군사적 역량을 갖고 있고 우리가 그것과 맞서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중국은 상하이협력기구(SCO), 브릭스(BRICS) 같은 새로운 클럽을 성공적으로 만들어 내고 있기도 하다. 다만 냉전 시대의 교훈은 우리가 소련의 미사일과 경제 규모를 과대평가했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민족주의와 공산주의를 혼동해 매우 비생산적이었던 베트남전에 개입했다. 1940~1950년대 이른바 ‘매카시 시기’엔 미국 내에서 공산주의자를 찾아 나섰다. 나는 오늘날 중국을 바라보며 우리가 그런 종류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란다.”

    조선일보

    2013년 당시 마이클 맥폴 주러시아 미국 대사가 존 케리 미 국무장관과 함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는 모습. 왼쪽부터 케리, 맥폴,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 푸틴./마이클 맥폴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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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면 러시아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했는데.

    “미·중·러를 비교했을 때 군사·경제력, 이념적 권력 등 지표에서 러시아가 가장 약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다만 우리는 능력만 보고 의도(intentions)를 보지 않는 실수를 한다. 러시아는 중국이나 심지어 현재의 미국도 하지 않는 방식으로 다른 나라를 침공하고 영토를 합병하려 하고 있다. 지금까지 시진핑도 시도하지 않은 푸틴의 의도다. 나는 푸틴처럼 체제 전복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지도자가 이끄는 약한 러시아가 얼마나 파괴적일 수 있는지 과소평가해 왔다고 본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러시아에 제재를 가하고 있다.

    “미국의 제재는 푸틴이 전쟁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돈줄을 조이고, 러시아로 유입되는 기술의 흐름을 줄일 수 있다고 믿는다. 다만 이번 제재가 푸틴이 전쟁을 멈추게 하거나 무기 제작을 중단시키기에 충분히 강력하지 않다고 보며 더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

    -북·러가 밀착해 북한이 러시아에 파병까지 했다.

    “매우 충격적인 일이었고 나는 세계가 그 문제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북한이 전선에 병력을 파병하고 있고, 이란은 러시아에 드론을 제공하고, 중국은 러시아산 석유를 구매하고 기술을 제공한다. 독재자들이 서로를 돕는 것이다. 한국은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시행하는 연합의 일원이며,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더 많은 경제적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맞서 승리하면 대만이나 남중국해,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도 더 낮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딜레마를 겪는 한국에 어떤 조언을 하겠나.

    “세상을 적색 블록과 청색 블록으로 나누는 것은 필요하지도 않고, 작동하지도 않는다. 나는 우리가 다른 전략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과 미국이라는 두 민주주의 국가는 경제적·군사적 관계는 물론이고 이념적인 유대까지도 더욱 심화할 수 있다. 이와 동시에 나는 한국이 중국과 관계에서도 경제적으로 이익을 늘려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냉전 때와는 달리 한국과 중국을 포함해 전 세계가 경제적으로 밀접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일본과의 관계는 어떻게 풀어 나가는 것이 좋을까.

    “독일 나치는 프랑스 등 유럽의 많은 나라를 침공했다. 그럼에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불과 4년 뒤인 1949년 우리는 다자간 동맹을 형성하는 데 성공했다. 전쟁이 끝난 지 10년밖에 지나지 않은 1955년엔 서독이 그 동맹에 가입했다. 나는 한국과 일본 사이의 역사적 어려움을 이해한다. 다만 유럽에서도 비슷한, 어쩌면 더 깊은 분열이 있었지만 집단 안보를 증진시킨다는 명분하에 극복해 냈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싶다.”

    -광복 80주년을 맞은 한국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한국은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고 그것은 미국에도 큰 영감을 주었다. 전 세계인이 그 과정을 지켜보았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아시아에서 우리가 가진 가장 중요한 동맹국 중 하나는 한국이다. 한국의 국력이 세기 때문이 아니라, 한국이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독재자들은 단결해 있다. 우리가 21세기에 독재 정권에 맞서 승리하고자 한다면 민주주의 국가들은 더 단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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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윤주헌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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