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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2 (월)

    [매경춘추] 침략을 지운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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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경제

    일본 나가사키 평화공원에는 1955년 건립된 세계평화상이 서 있고, 원폭자료관에는 원폭 투하 당시의 참상이 상세히 전시돼 있다. 그러나 그곳에서 일본이 왜 그런 비극을 맞이하게 되었는지, 침략과 전쟁에 대한 가해 책임을 성찰하는 흔적은 찾기 어렵다. 독일 함부르크 광장에 세워진 유대인 학살 추모 조형물이 가해자의 참회와 반성을 전면에 드러내는 것과는 분명한 대비를 이룬다. 피해의 기억만 강조하고, 가해의 역사는 지운 채 평화를 말하는 태도는 여전히 불편하다. 일본은 패전 이후 히로시마, 나가사키, 오키나와, 오사카부 돈다바야시, 그리고 미야자키 등지에 '평화의 탑'과 '대평화기념탑'을 세웠다. 필자는 이 가운데 미야자키 헤이와다이 공원의 '팔굉일우(八紘一宇) 탑'을 직접 보고 작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이 탑은 제2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일본이 아시아 침탈과 세계 지배의 야욕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1940년 완공한 시설이다. 높이 37m의 이 탑은 6만6000여 명의 인력을 동원해 건립됐고, 1789개의 석재 중 364개는 아시아 각국의 일본군 점령지에서 수탈해온 돌이었다. 그 안에는 우리나라 경상도에서 가져온 돌도 포함돼 있음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

    '팔굉일우'는 "온 천하를 하나의 집, 한 지붕 아래 둔다"는 뜻으로, 천황을 중심으로 세계를 통합한다는 제국주의 침략 이데올로기를 미화한 구호다. 그러나 일본은 패전 후 미군정의 요구에 따라 탑 정면의 '八紘一宇' 글자를 철거하고 명칭을 '평화의 탑'으로 바꾸었다.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는 성화 봉송 출발지로까지 활용하며 이 탑을 '평화국가 일본'의 상징처럼 연출했다. 침략의 역사와 피해국의 고통에 대한 설명은 배제한 채 상징만 바꿔 과거를 희석시킨 것이다. 이는 반성이 아니라 포장에 가깝다.

    이러한 태도는 전후 일본의 안보 정책 변화에서도 반복된다. 일본은 1947년 시행된 평화헌법 제9조를 통해 전쟁과 전력 보유를 포기했지만, 1950년 한국전쟁을 계기로 7만명 규모의 경비대를 창설했고, 이는 보안대를 거쳐 1954년 자위대로 발전했다. 이후 헌법 해석을 확장해 해외 파병과 유엔 평화유지활동, 미·일동맹의 군사적 역할까지 수행하게 됐다.

    2014년 아베 내각은 집단적 자위권을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해석을 내렸고, 2015년 안보법 통과로 자위대의 무력 사용 범위는 크게 넓어졌다. 헌법 제9조는 그대로 둔 채 해석만으로 현실을 바꾼 셈이다. 물론 자위대 창설의 계기에 북한의 남침이라는 국제정세가 작용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자국 치안을 명분으로 출발한 조직이 이제는 미·일동맹을 넘어 미국·호주와의 안보 협력, 남중국해까지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다는 점은 결코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 과거를 직시하지 않는 국가의 군사적 확장은 언제든 주변국에 불안을 남긴다. 한일 관계는 해불양수(偕不兩守)의 현실 속에서 경제와 안보 협력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영토와 위안부 문제처럼 역사에 깊이 새겨진 상처까지 덮어둘 수는 없다. 구존동이(求存同異)의 자세로 협력은 하되, 기억해야 할 문제는 분명히 남겨두는 전략적 지혜가 지금 우리에게 요구된다.

    [라종억 통일문화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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