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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25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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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년 전과 같은 날에… 美, 중남미 대통령 또 압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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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 파나마 노리에가 이어

    베네수엘라 마두로 마약, 체포

    역사는 정확히 36년이라는 시차를 두고 정교한 평행이론을 완성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체포해 미국으로 압송했다고 발표한 2026년 1월 3일은 파나마의 군사 독재자 마누엘 노리에가(1934~2017)가 미군에 공식 투항해 미국으로 이송된 1990년 1월 3일과 날짜가 정확히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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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8년 파나마시티의 한 집회에서 정글칼 마체테를 휘두르는 노리에가(왼쪽)와 지난 10월 카라카스 집회에서 마체테를 손에 든 마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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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나라의 현직(또는 실질적) 국가원수가 자국 영토에서 미군 특수부대에 의해 신병이 확보되어 제3국으로 강제 이송된 사례는 1989년 미국의 파나마 침공 작전인 ‘정의로운 대의(Operation Just Cause)’ 이후 처음이다. 외교가에서는 이번 사건을 21세기에도 여전히 작동하는 ‘미국의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의 결정적 사례로 주목하고 있다.

    CIA 정보원에서 공적(公敵)으로, 노리에가는 누구

    마누엘 노리에가는 본래 미국의 친구였다. 1980년대 파나마의 실권자였던 그는 냉전 시기 중남미의 공산화 세력을 막아내려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핵심 정보원으로 활동하며 미국으로부터 자금과 정치적 후원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밀월 관계를 악용해 콜롬비아 마약 카르텔과 결탁, 미국으로 유입되는 코카인 밀매의 중계지 역할을 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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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 1월 3일 미국 마약단속국 직원들이 압송된 파나마의 독재자 마누엘 노리에가 장군을 호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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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이 그를 제거하기로 결심한 것은 그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기 때문이다. 그는 마약 범죄가 드러나자 반미(反美) 노선으로 급선회했고, 1989년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이 승리하자 선거 무효를 선언하며 권력을 놓지 않았다. 결정적인 방아쇠는 그해 12월 파나마 주둔 미군 장교가 파나마 방위군에게 사살당하고, 또 다른 미군 장교 부부가 폭행당하는 사건이었다. 자국민 보호와 마약 전쟁이라는 명분을 쥔 조지 H.W 부시 대통령은 1989년 12월 20일 2만6000명의 병력을 투입해 파나마를 침공했고, 노리에가는 쫓기듯 바티칸 대사관으로 피신했다가 1990년 1월 3일 미군에 항복했다.

    ‘대통령’ 아닌 ‘범죄자’로 규정

    미국이 노리에가와 마두로를 체포한 명분과 방식은 유사하다. 미국은 두 사람을 외교적 면책특권이 있는 ‘국가원수’가 아닌 미국법을 위반한 ‘마약 사범’으로 규정했다. 다만 노리에가는 대통령이 아닌 파나마 방위군 사령관으로, 대통령 뒤에서 군림한 실권자였다는 차이가 있다. 1988년 미 플로리다 연방 대배심이 노리에가를 마약 밀매 혐의로 기소했듯, 미 법무부는 지난 2020년 마두로를 마약 카르텔의 수장으로 보는 ‘나르코 테러리즘(Narco-terrorism)’ 혐의로 기소하고 1500만달러의 현상금을 걸었다. 노리에가처럼 마두로도 대선에서 부정 선거를 저질렀다는 의심을 사기도 했다.

    이는 미국 사법부의 기소장이 미군 군사 작전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근거로 작동하는 전형적인 ‘하이브리드 전략’이다. 두 사건 모두 표면적으로는 독재 타도를 내세웠으나, 실질적으로는 미국의 안보 이익과 국내 사법권을 타국 영토에 물리적으로 투사한 ‘치외법권적 집행’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군사력은 정권 교체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기소된 범죄자의 신병을 확보하기 위한 강제 집행 수단으로 동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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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나마 운하. /위키피디아


    소국 파나마와 자원 부국 베네수엘라

    체포의 형식은 같지만, 대상 국가의 규모와 지정학적 환경은 큰 차이를 보인다. 1989년 당시 파나마는 인구 200만명의 소국이었으며 노리에가는 국제적으로 고립된 상태였다. 반면 베네수엘라는 세계 최대 원유 매장량을 보유한 자원 부국이며, 러시아·중국과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혀 있다.

    작전 형태 또한 다르다. 파나마 침공이 2만6000명의 대규모 지상군을 투입해 수도를 장악하고 군대를 해산시킨 전면전이었다면, 이번 작전은 정밀 타격과 특수부대를 이용해 지도부만 제거하는 ‘참수 작전(Decapitation strike)’ 형태로 진행됐다. 이는 마두로라는 구심점은 제거됐으나, 그를 지지하던 방대한 정규군과 ‘콜렉티보(Colectivo)’로 불리는 친정부 무장 민병대 조직은 여전히 건재함을 의미한다.

    두 국가의 미래는

    가장 큰 관심사는 체포된 마두로의 운명과 베네수엘라의 미래다. 노리에가는 체포 직후 미 마이애미로 이송되어 연방법원에서 마약 밀매와 돈세탁 혐의로 40년 형을 선고받고, 감형되어 17년을 복역한 뒤 프랑스와 파나마 감옥을 오가다 생을 마감했다. 마두로 역시 노리에가와 유사한 사법 절차를 밟아 미국 내 교도소에서 사실상의 종신형을 살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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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판을 받고 있는 노리에가의 모습 /미 의회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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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국가의 운명은 노리에가 때와 다를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파나마는 노리에가 축출 후 군대를 해체하고 파나마 운하 운영권 회수와 금융 개방을 통해 중남미 부국으로 성장하며 안정을 되찾았다. 반면 베네수엘라는 이미 경제 시스템이 붕괴한 상태고, 친정부 무장 민병대가 사회 곳곳에 포진해 있다. 그래서 베네수엘라가 파나마 모델보다는 권력 공백 속에서 무장 세력이 난립했던 ‘아프가니스탄 모델’이나 장기 내전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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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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