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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25 (수)

    “사라지고 싶다”… 간병 맡은 4050 우울감, 일반 성인 4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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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병의 늪에 빠진 한국]

    <3> 부모 돌보느라 무너진 삶

    조선일보

    지난달 19일 경기 안산의 한 요양병원에서 하선규(60)씨가 치매에 걸린 어머니의 다리를 주무르는 모습. 그는 지난 10년간 대출을 받아 어머니 간병비를 감당해왔다. /박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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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에 사는 한모(56)씨는 2022년부터 5년째 신장 투석 중환자인 아버지를 요양 병원에 모시고 있다. 매달 병원비(간병비 포함) 140만원을 낸다. 또 그의 아버지는 1~2개월에 한 번꼴로 염증 수치가 높아져 인근 대학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가는데, 하루만 응급실을 이용해도 100만원 정도가 든다고 한다. 이뿐 아니라 한씨는 장모의 요양 병원비도 매달 130만원씩 내고 있다. 그는 “적금과 개인연금, 실손 의료보험까지 다 깼고, 아내는 3년 전부터 식당 일을 나간다”며 “언제까지 (간병을) 해야 할지 기약이 없으니 무기력해진다”고 했다. 한씨 부부에겐 대학생 딸과 아들이 있다.

    40·50대는 ‘샌드위치 세대’로 불린다. 자녀와 연로한 부모를 동시에 돌봐야 하기 때문이다. 교육부 조사 결과, 6세 이하 영유아 한 명을 키우는 데만 월평균 111만원(2024년 기준)이 소요된다. 여기에 사교육비, 집세, 대출 이자 등을 더하면 같은 해 임금 근로자 평균 소득(373만원)으로도 생계가 빠듯하다. 여기다 장기간 부모 간병비까지 부담하면 “정작 40·50대 자녀 본인은 아무런 준비 없이 노후를 맞아 ‘빈곤 노인’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산층에 해당되는 소득 3분위(소득 상위 40~60%) 가구의 실질 흑자액(여윳돈)은 계속 줄고 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국내 3분위 가구의 월평균 ‘여윳돈’은 2020년(4분기) 84만원에서 2024년 65만원으로 급감했다. 70만원 아래는 2019년 이후 5년 만이다. 소득 3분위 가구의 가구주는 40·50대다. 여윳돈을 모두 저축해도 노후 준비에 빠듯할 수밖에 없다. 중산층 40·50대의 노후 준비가 점점 취약해지는 셈이다.

    조선일보

    그래픽=박상훈


    남상요 인하대 정책대학원 교수(노인학과)는 “주요국 중 한국처럼 모든 간병 부담을 개인에게 지우는 나라는 없다”며 “큰 부담에 눌린 가족들은 우울증에 빠지기 쉽다”고 했다. 대전에 사는 직장인 이모(46)씨는 병원비 부담에 1년째 집에서 치매 걸린 아버지를 간병하고 있다. 그의 아내가 아버지 기저귀를 갈고 식사 수발을 든다. 이씨는 “집에 가면 아내가 자꾸만 ‘사라지고 싶다’면서 운다”며 “저도 아내도 우울증 약으로 버티고 있다”고 했다.

    간병 가족 인터넷 커뮤니티에도 ‘우울증 호소’ 글들이 수두룩하다. 지난달엔 ‘아버지 등을 때렸습니다. 죽고 싶네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그는 “최근에 새벽에만 치매 아버지의 기저귀를 다섯 번 넘게 갈았다”며 “협조도 안 해주시고 저를 발로 차시는데 맞는 순간 ‘아 제발 좀’ 하면서 아버지 등을 세게 쳤다”고 했다. 이어 “바로 무릎 꿇고 울었다. 제가 점점 괴물이 돼가는 것 같다”고 했다. 건강보험공단 등이 지난해 가족 돌봄 제공자 1700여 명을 조사한 결과,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의 우울감을 경험했다”는 응답자가 절반에 가까운 47.6%에 달했다. 국내 성인의 우울감 경험률(11.3%)보다 4배 이상 높았다.

    가족 간병 기간이 길어질 때 일부 가정에서 나타나는 극단적 형태가 바로 ‘간병 살인’이다. 실제로 지난해 경기 고양에선 50대 아들이 아버지와 함께 10년간 뇌졸중을 앓아오던 어머니를 숨지게 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일본은 지난 2007년부터 ‘개호(介護·돌봄) 피로’에 의한 간병 살인 통계를 집계(매년 평균 46건 발생)하고 있지만, 현재 우리나라에는 이런 통계 자체가 없다.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 연구 결과, 2007년부터 2023년까지 17년간 간병 살인 유죄 판결문은 총 228건이었다. 연평균 13건이다. 판결문에 살해 동기가 구체적으로 담기지 않은 경우 등을 감안하면 실제 발생 건수는 더 많을 가능성이 크다. 이마저 증가 추세다. 유죄 선고 건수가 2012년까진 매년 5~6건 정도였는데 2020년엔 30건이 선고됐다.

    또 가해자 75.8%가 주변 도움 없이 혼자 간병하는 ‘독박 간병’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 가해자 중 가장 많은 35%는 ‘아들’이었다. 피해자 절반은 70·80대였고 대부분은 만성 질환을 앓고 있었다. 피해자가 앓았던 만성 질환 중에선 치매(52%)가 가장 많았고, 그다음은 뇌졸중(19%)이었다.

    [조백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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