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조별리그 C조 대한민국과 호주의 경기, 7-2 승리로 8강 진출을 확정지은 대한민국 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다./뉴스1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9회 말 도쿄돔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모두가 숨을 죽였다. 한국 야구팀이 앞서 있었지만 마냥 좋아할 수 없었다. 지난 9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호주전은 5점 차 이상으로 이기면서 실점은 2점 이하로 막아야 하는 ‘미션 임파서블’이었다. 점수판에는 7대2가 떠 있었지만, 그 숫자가 정말 끝까지 유지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
한국 야구는 이번 WBC에서 벼랑 끝까지 스스로를 몰아넣었다. 5일 체코를 11대4로 꺾고 순조롭게 출발했지만 7일 일본에 6대8로 졌고, 8일 대만에도 연장 10회 사투 끝에 4대5로 졌다. 마지막 날 호주전을 앞두고 1승 2패. 조 2위 싸움은 한국 뜻대로 풀 수 없었다. 일본이 조 1위를 확정한 상황에서 한국·대만·호주가 얽혔고, 한국은 승리만이 아니라 ‘어떻게 이기느냐’까지 따져야 했다. 냉정히 말하면 경우의 수를 자초한 셈이었다.
호주전은 한국 야구의 성격을 보여줬다. 문보경의 2점 홈런이 터지며 5대0까지 벌어졌을 때만 해도 ‘이게 되네’ 싶었다. 그런데 곧 1실점이 나왔다. 다시 6대1이 되자 계산은 살아났고, 또 1점을 내주자 경기장 공기가 달라졌다. 9회 초 7대2가 돼서야 비로소 원하던 그림이 맞아떨어졌다. 세상에 단숨에 되는 일은 없다. 풀리는 듯하다가 꼬였고, 다시 해결하는 듯하다가 또 흔들렸다.
이 대회에서 한국은 처음부터 끝까지 강했던 팀이 아니었다. 마지막 날이 돼서야 비로소 자기 야구를 한 팀에 가까웠다. 일본전은 홈런 3방을 맞고 무너졌고, 대만전은 다 잡은 경기를 놓쳤다. 그런 팀이 마지막 순간에 경우의 수를 뚫고 8강에 오른 것이다.
진짜 강한 팀은 기신기신 생존하는 팀이 아니라 일본처럼 복잡한 계산을 하지 않아도 된다. 이번 8강행은 환호와 함께 숙제를 안겼다. 승리의 의미를 축소하려는 게 아니다. 호주전은 한국 야구가 어떤 점에서 아직 쓸모 있는지 증명했다. 일본전, 대만전을 보고 “다 끝났다”며 멸시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틀린 지적도 아니었다. 하지만 호주전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교훈을 남겼다.
대표팀은 경우의 수를 붙잡고 불운을 한탄하지 않았다. 계산이 복잡하다며 주눅 들지도 않았다. 경기 전 선수들은 결의에 차 있었다. 김도영(KIA)은 “지나간 것은 잊고 기회가 남은 오늘 경기에만 집중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류지현 감독도 “우리에게 남은 기회를 잡겠다”고 했다. 2회초 선제 2점 홈런을 날린 문보경은 더그아웃을 향해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를 외쳤다. 그 주문처럼 마운드는 2실점으로 버텼고, 타선은 필요한 점수를 냈고, 9회 말엔 호수비가 나왔다.
벼랑 끝에서 포기하지 않고 자기 몫을 다한 대표팀의 모습은 결과 이상의 성취감을 남겼다. 스포츠가 사람들에게 주는 힘이 무엇인지를 새삼 일깨운다. 어렵더라도 마지막까지 해보겠다는 집념과 투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양승수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