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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0 (토)

이슈 추가경정예산 편성

작년 추경사업 40%가 돈 다 못썼는데… 또 6조7000억 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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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규모부터 정해놓고 사업 끼워넣기… "수요 예측 않고 돈 풀기 급급" 비판론

"예산은 있어요. 그런데 철새가 날아가야 공사를 시작할 수 있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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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지난 22일 정부 세종청사에서 열린 추가경정예산안 사전 브리핑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으면서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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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의 쪽빛 바다 절경을 즐길 수 있도록 추진되는 '해안 거님길' 조성 사업은 작년 5월 정부의 추가경정예산(추경) 사업으로 추진돼 69억원이 배정됐지만, 아직 공사 첫 삽도 못 떴다. 조선업 구조조정으로 어려움 겪는 거제 지역에 관광객도 유치하고 지역경제도 살리는 데 보탬이 되라고 지원됐으나, 지금껏 12억원(17%)만 썼다. 거제시는 "철새가 막았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해안 거님길은 거제 망치마을 일대에서 구조라~와현 해수욕장까지 산책로를 만드는 사업이다. 그런데 이 구간에 철새 '아비'가 겨울이면 집단으로 찾아오는 도래지(천연기념물)가 포함돼 진척이 늦어졌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철새 도래지인지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돈부터 배정하는 바람에 철새가 떠날 때까지 예산 집행도 못한 셈이다. 거제시 관계자는 "겨울 철새인 아비가 다 날아간 올 4월 이후에 공사를 시작해서, 연말에 철새가 다시 날아오기 전엔 완공하려 한다"고 했다.

◇작년 추경도 3200억원 집행 못 했는데

작년 5월 편성된 추경이 해를 넘기고도 3000억원 넘게 집행되지 못했는데, 정부가 또다시 6조원 넘는 추경안을 확정해 돈 풀기에만 급급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추경호(자유한국당) 의원이 분석한 '2018년 추경 사업 집행률' 자료에 따르면, 3조8000억원 규모의 지난해 추경 총 136개 세부 사업 가운데 100% 집행이 안 된 사업은 59개에 이르렀다. 집행 액수로 보면 전체의 8.6%에 해당하는 3252억원(2월 말 현재)이 풀리지 못하고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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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24일 국무회의를 통해 6조7000억원 규모의 '미세 먼지·민생' 추경 예산안을 의결하고, 25일 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미세 먼지 대응 등 국민 안전 투자에 2조2000억원, 선제적 경기 대응과 민생 경제 긴급 지원 명목으로 4조5000억원을 투입한다는 게 골자다.

◇규모 정해놓고 억지로 사업 끼워넣기도

최근 추경은 '선심성' 재정 살포 성격이 강한 데다, 규모부터 정해두고 사업을 억지로 끼워넣느라 몸살을 앓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난해 5월 받은 추경 예산 58억6600만원으로 조성키로 한 블록체인·인공지능(AI) 교육장 'ICT 이노베이션 스퀘어'도 추경 예산 집행에 난관을 겪었다. 이 교육장은 당초 서울 마포 신용보증기금 건물에 마련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신용보증기금 건물에 리모델링 결정이 내려지는 바람에 작년 8월 말까지 추경 예산 집행 실적이 제로(0)였다. 그러다가 대안으로 인근 마포의 포스트타워 건물에 임시 교육장을 만들어 추경 집행 11개월 만에 겨우 예산을 소화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 교육장을 원래 조성하려던 신용보증기금으로 다시 옮긴다는 것이다. 결국 추경 예산 타서 엉뚱한 빌딩에 교육장 만들고, 왔다 갔다 이사비까지 들여 수십억원을 추가로 날리게 된 셈이다. 교육부도 국립대병원을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전북대병원 군산 분원 건립 지원비 80억원을 추경 사업비로 타 갔다. 그런데 올 2월까지 군산 분원 사업엔 25억원만 집행했다가, 최근에야 겨우 추경 예산 집행을 마쳤다. 교육부 측은 "병원 부지가 총 33필지로 나뉘어 땅 주인마다 개별적으로 접촉하다보니 진척이 더뎠다"고 해명했다.

◇"재정살포 브레이크 걸어야"

이 같은 '억지 추경' 문제점은 올해에도 되풀이될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예컨대 작년 추경으로 어린이집 공기 청정기 사업 명목으로 248억원의 예산을 배정했지만, 작년 말까지 199억원만 쓰였고 49억원은 불용(不用) 예산으로 남았다. 복지부는 "어린이집 공기 청정기 수요 조사 결과, 추경 예산보다 적게 신청돼 불용액이 생겼다"고 밝혔다. 수요 예측도 제대로 안 한 채 돈부터 풀려 했던 것이다. 그런데 올해도 학교·복지시설 등 공기 청정기 사업 명목으로 추경 예산이 309억원 잡혔다.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는 "추경을 하고도 집행조차 안 되는 사업은 사후 검증을 확실히 해야 한다"며 "마구 재정이 살포되는 행위엔 브레이크를 걸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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