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맹활약한 ‘터스키기’ 흑인부대
2차 대전 참전 뒤에는 미국 내 인종차별 겪어
2021년 새로 발행된 25센트 동전의 뒷면. 터스키기 부대 소속 흑인 병사가 출격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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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조폐국은 지난 2010년부터 실생활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동전인 25센트의 뒷면 디자인을 주요 국립공원과 사적지 모습으로 꾸미는 ‘아메리카 더 뷰티플 쿼터스’ 프로그램을 통해 56종의 25센트 동전을 선보였다. 이번에 나온 동전은 이 프로젝트의 마지막 작품이다.
터스키기 부대는 2차 대전 때 맹활약했다. 1940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창설을 발표했고, 앨라배마주 터스키기 비행장에 훈련소를 세웠다. 1941년 첫 교육생 13명을 시작으로 파일럿 1000여 명과 항법사·정비사·포격수 등 1만5000명을 배출했다. 부대원들은 총 1만5000여 회 항공 임무를 수행했고, 실제 교전에도 332차례 출격해 독일군 전투기 36대를 공중에서 격추하고, 전차와 군수 차량을 1000여 차례 폭격했다. 이 과정에서 66명이 전사하고 32명은 포로로 잡혀갔다.
2차 대전 당시 활동하던 터스키기 대원들의 모습 /미 국립공원관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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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대의 설립 과정에는 인종차별의 아픔이 깔려 있다. 비행사 찰스 린드버그(1927년)와 어밀리아 에어하트(1932년)의 잇단 대서양 횡단으로 조종사에 대한 선망이 커지면서 공군 조종사를 꿈꾸는 흑인 젊은이도 많아졌다. 그러나 ‘흑인은 복잡한 전투기 조종술을 제대로 익히지 못할 것’이라는 인종적 편견과 미국 사회 곳곳에 만연한 공공연한 흑백분리정책 때문에 이들의 도전은 좌절됐다.
이에 반발한 민권단체들이 ‘흑인에게도 전투기 조종사 훈련 기회를 달라’고 요구했고, 루스벨트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부대 창설로 이어졌다. 2차 대전 종전 다음 해인 1946년 부대가 해산된 뒤 터스키기 부대원들은 군과 민간 항공 부문에서 활발하게 활동했지만, 인종차별의 설움에서 헤어나진 못했다고 한다.
터스키기 무명용사가 그려진 25센트 동전 뒷면에는 “그들은 두 번의 전쟁에서 싸웠다(They fought two wars)”라는 문구도 있다. 두 번의 전쟁이란 ‘2차 대전’과 ‘미국 내 인종차별’을 말한다. 부대가 있던 자리는 1998년 국가 사적으로 지정됐다.
[정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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