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선 될 ‘LH권한 확대’ 법안들, 3월 국회통과 난망
‘6월 후보지 발표’ 목표도 순연 가능성
전문가 "LH 주도 공공 재개발 방식 전면 재검토해야"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직원들의 신도시 예정지인 광명·시흥지구의 땅투기 논란으로 신뢰도에 치명상을 입으면서, ‘LH가 주도하는 2.4 공급대책’이라는 큰 그림 자체가 흔들리는 양상이다. 공기업인 LH가 도심 정비사업 시행자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직원들의 땅투기로 인해 LH가 사업을 공정하게 추진할 수 있을 지 의심받는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일단 LH 등 공기업을 도심 정비사업 단독 시행자로 지정할 수 있도록 3월 중 개정을 마치려고 했던 공공주택특별법, 도시정비법, 도시재생법, 소규모정비법 개정 작업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법안 공포 후 3개월 뒤로 잡았던 후보지 공개 및 사업 개시 D-데이도 한 달 이상 순연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무엇보다도 대규모 공공택지 개발을 위한 후보지 선정, 도심정비사업지 발표 등의 일정이 공정성 시비로 늦어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달 22일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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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공도심재개발, LH땅투기한 ‘신도시’ 공급량의 1.8배···2.4 대책 主전장
4일 국토부에 따르면, 2.4 대책의 공급 방안은 크게 신도시 등 공공택지를 조성하는 방식과 LH 등이 나서 도심 지역의 밀도를 높이는 공공주도 재개발·재건축 방식으로 나뉜다. LH 직원들의 땅투기 의혹은 광명·시흥 일대에 조성하려던 신도시 부지에서 터졌다. 공공택지 조성 방식이 문제가 된 것이다.
그러나 2.4 대책 총 공급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도심 지역의 공공주도 재개발·재건축이 더 크다. 신도시 등 공공택지 공급 규모는 26만3000호다. 이에 비해 공공 직접시행 정비사업,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은 33만2000호에 이른다. 공기업 단독시행시 수용권을 주는 방식을 도입해 추진 속도를 높이려고 하는 소규모 재개발, 도시재생 등까지 더하면 등 공공주도 재개발·재건축 방식의 공급 목표는 47만3000호까지 올라간다.
공공주도 재개발·재건축 방식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LH 주도다. 지방 공기업인 서울주택도시공사(SH), 경기주택도시공사(GH), 인천도시공사(IH)를 제외하고 나머지 지방 공기업은 주택 관련 사업 개발이 사실상 전무하다. GH, IH는 물론 SH도 LH에 비하면 사업 경험이 일천하다.
이 때문에 2.4 대책에서 공공주도라고 표현된 사업 중에서 지방 공기업 단독으로 시행할 사업은 거의 없고 대부분 LH가 어떤 방식으로든 도움을 줄 수 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됐다.
정부는 LH 등 공기업이 조합 등 민간 시행자 없이도 단독 시행이 가능하도록 법을 개정해 사업 속도를 높이고, 재건축초과이익 부담금이나 2년 실거주 의무 등을 면제하는 등의 인센티브를 줘 기존 토지주의 참여를 끌어낸다는 구상이었다. 이 과정에서 LH는 ‘우선입주권’ 등의 당근을 써서 기존 토지주의 3분의 2 이상에게 소유권을 넘겨받아야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
반면 국토부는 도심 지역의 재개발·재건축에서 민간 사업자에게 매우 불리한 제약을 걸어둔 상태다. 정부가 기존 조합 등 민간 사업자에 대해 재건축초과이익 부담금, 2년 실거주 의무 등을 부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 소규모 정비 사업과 도시재생 사업 방식도 LH 등 공기업이 일정 비율(3분의2 ~ 5분의4) 이상의 토지주 동의를 확보할 경우 단독 시행이 가능하게 하고, 토지 수용을 가능하게 하는 등의 변화를 줘 추진 속도를 높일 계획이었다. 역시 속도를 높이기 위한 해결사로 LH 등 공기업이 빠지지 않고 있다.
◇ 공공도심재개발, ‘1년내 3분의2 토지주 동의’ 요건 충족 어려워지나
결국 모든 사업에서 기존 토지주들이 LH에 대한 강한 신뢰를 갖고 있어야 원활한 진행이 가능하다.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의 경우 예정지구로 지정된 뒤 1년내에, 공공 직접시행 정비사업은 정비계획 변경 신청후 1년내에 각각 토지등 소유자와 조합원의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확보해야 한다. 2025년까지 전국 6만호(서울 4만호)라는 공급 목표로 신설된 ‘소규모 재개발’ 사업도 사업시행예정구역으로 지정된 뒤 1년내 5분의4 동의를 확보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사업 자체가 원점으로 돌아가게 된다. 만약 LH 신뢰가 흔들릴 경우에는 정해진 시한 내 토지주 등의 동의를 확보하기가 어려워지고, 나아가 사업자체가 한없이 지연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정부는 LH 직원 땅투기 문제가 LH 신뢰 문제로 확대되는 것을 어떻게든 막으려고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LH가 재개발 사업 시행자 역할을 하지 못할 경우 2.4 대책 자체가 무용지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전날과 이날 두차례에 걸쳐 의혹의 철저한 조사를 지시하고, 국토교통부의 사실관계 확인이나 LH 사과 등이 이틀 사이에 일사천리로 진행된 배경도 부동산 정책 신뢰도를 지켜 2.4 공급 대책의 모멘텀을 잃지 않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란 분석이다.
◇ ‘LH 권한 확대’ 법안, 국정조사 벼르는 野 선거부담 與에 국회 문 좁아졌다
정부가 25번째 부동산 대책을 발표한 지난달 4일 서울 한 역세권 공공주택지구 공사현장 모습. 정부가 이날 발표한 도심 주택 공급방안의 핵심은 역세권·준공업지역·저층주거지에서 공공기관이 부지를 확보하고 사업을 추진하는 도심공공주택복합사업이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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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미 신도시 예정지에서 붙은 불신의 불은 도심 공공주도 재개발·재건축 사업으로 옮겨 붙고 있다. 2.4 대책이 계획대로 원만하게 추진되기 위해 필수적인 3월 국회 중 관련 법안 통과 여부가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2.4 대책 집행을 위해서는 LH 등 공기업이 주요 사업의 시행 주체가 될 수 있도록 관련 법안들을 손봐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논의가 필수적이다. 실제 국토부는 지난 2.4 대책 집행을 위한 추진 일정의 맨 앞에 3월내 공공주택특별법·도시정비법·도시재생법·소규모정비법 등의 개정하겠다고 내걸었다. 법적 근거가 마련돼 공포된 뒤에야 후보지를 선정하고 본격적인 사업을 추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야당은 LH 직원 땅투기 의혹 관련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토위 상임위 회의가 열리면 야당은 마치 국정조사를 연 것 처럼 국토부와 LH를 몰아부칠 기세다. 4월 보궐선거를 앞둔 여당 입장에서는 마치 LH를 감싸는 모습을 연출하며 LH에 막강한 권한을 몰아주는 법안 처리에 앞장서는 것이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정치권에서는 ‘3월중 법안 처리’라는 정부 시간표가 4·7 재보선 이후로 한 달 이상 밀릴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경우 정부가 법안 공포후 3개월 후인 6월로 잡고 있던 공공 직접시행 정비사업 등의 후보지 선정 일정은 한 달 이상 순연될 수 있다.
이 때문에 국토부 내에서는 "토지수용 및 현금청산에 따른 사유재산권 침해 논란도 어렵게 대응하며 어떻게든 2.4 대책을 집행하려고 애쓰고 있었는데 LH 직원의 땅투기 사건으로 골치 아프게 생겼다"는 불만이 터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애초에 LH 등 공기업 중심으로만 짜여진 2.4 공급대책 자체가 문제였으며, 공공 중심의 공급 대책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는 "LH는 웬만한 재개발·재건축은 물론 역세권 공공개발 등의 2.4 대책상 대부분 사업의 주체"라면서 "사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직원 땅투기 문제가 불거지면서 신뢰를 잃어 정책 방향이 크게 혼선이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자칫하다가는 전체 주택공급계획에 차질이 있을 수도 있다"면서 "제도적으로 다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박정엽 기자(parkjeongyeop@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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