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 자격증으로 일할 수 없는 현실에 회의감”
“해고는 시스템의 문제…다양한 연구 진행돼야”
이스타항공 직원들이 2020년 9월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이스타항공 대량 정리해고 통보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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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타항공 직원 605명이 2020년 10월14일 공식 해고됐다. 국내 항공업계 첫 대규모 구조조정이었다. 코로나19 이전, 항공업계는 ‘위기’란 단어와 어울리지 않았다. 특히 조종사는 미래가 보장된 ‘철밥통’(해고당할 염려가 없는 직장인을 이르는 말)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스타항공의 대량해고 결정은 조종사조차도 취약한 존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조종사의 해고 뒤 삶은 어떠했을까. 김현숙(성균관대 사회복지연구소 연구원)·강준혁(을지대 중독재활복지과 교수)·이혁구(성균관대 사회복지과 교수) 연구팀이 이스타항공에서 해고된 조정사들의 삶을 추적한 ‘항공사 해고노동자의 삶에 관한 질적 사례 연구’ 논문을 내놨다. 논문은 지난 11일 발간된 ‘보건사회연구 제41권 제4호’에 실렸다. 연구팀은 “해고 노동자의 고통을 개인의 문제로 보기보다 사회 문제로 주목하고자 했다. 해고 전후의 삶 속에서 어떤 경험을 하는지 깊이 있게 보여주려고 했다”고 연구에 나선 배경을 설명했다.
17일 논문을 보면, 연구팀은 이스타항공 해고를 경험한 조종사 중 자발적으로 참여한 4명의 전직 조종사들과 심층 인터뷰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이들의 해고 뒤 삶을 분석했다. 항공사가 코로나19 여파로 무급휴직과 순환휴직을 반복하는 상황이라 이들은 여전히 회사로 돌아가지 못하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고 있다. 일부는 새로운 직장을 알아보는 중이나 쉽지 않다고 했다.
“예전 같은 경우에는 조종사라면 확실히 철밥통이라 했겠죠? 훈련에서 탈락하거나 비상 상황에서 실수하지 않는 한 끝까지 가겠구나. 돈 모아서 집도 사고 앞으로의 계획을 세울 수 있었죠. 지금은 계획이라는 게 다 날아가 버렸어요. 조종사라는 직업이 철밥통이 아닐 수 있겠구나. 언제든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참여자2)
참여자2는 30대 미혼 남성으로 비행학교를 졸업한 뒤 어렵게 이스타항공 조종사로 취업했다. 7년간 잦은 낙방을 이겨내고 겨우 얻은 합격의 기회였다. ‘불행 끝 행복 시작’이라는 환호도 잠시, 회사로부터 해고 결정을 받은 뒤 그의 삶은 무너졌다. 그간 조종사가 되기 위한 교육비를 저축과 은행대출금으로 충당했는데, 해고되니 대출 연장도 어려워졌다. 그는 “정년이 보장됐던 조종사가 돈을 모을 계획조차 세울 수 없는 직업으로 전락했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낙담했다.
30대 기혼 남성 조종사 참여자3는 공군사관학교 졸업 뒤 공군 조종사로 근무하다 전역 뒤 이스타항공에 취직했다. 그는 항공사 해직 뒤 오히려 취업의 어려움을 경험했다. 다른 업계에 일자리를 구하려고 지원해도 이력서에 비행 자격증과 비행 경력 밖에 작성할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고급 자격증을 갖고도 일할 곳이 없다는 현실로 인해 회의감을 느꼈다고 했다. “지인이 하는 식당에서 일을 도와드리고 있어요. 항공 쪽 회사에 지원을 해봤고, 작은 중소기업에 사무직 지원도 해봤어요. 하지만 서류심사에서 떨어지고, 통과해서 면접을 보더라도 ‘조종사 하셨네요? 코로나19 상황이 끝나면 다시 그쪽으로 가시겠네요?’ 하면서 탈락시켜요.”
참여자4는 대형 항공사를 거쳐 이스타항공으로 이직했다. 그는 해고 뒤 부당해고 철회 소송에서 승소해 복직한 경우다. 하지만 복직은 했어도 월급을 받을 수 없어 실제로는 해고 상태나 다름없다. 그는 “비행만 믿고 있다가는 초라한 인간이 될 수도 있다”라고 생각했다. 현재 그는 공인중개사 공부를 병행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인생을 개척하겠다고 마음을 다잡아도 우울해질 때가 많다.
연구팀 분석에 따르면, 조종사들은 해고 전의 삶에 대해 ‘꿈꿔왔던 일’, ‘자부심 가득했던 일’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해고당한 뒤의 삶은 ‘상대적 박탈감’, ‘아르바이트 전선으로’, ‘망망대해에 내던져짐’, ‘깨진 철밥통’ 등으로 표현했다.
연구팀은 “해고 이슈를 해당 항공사만의 문제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항공업계가 위기를 마주했을 때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시스템의 문제로 보아야 할 것”이라며 “안정적인 직종의 노동자들도 정치・경제・환경적 위기를 마주했을 때는 취약한 대상이 될 수 있다”라고 했다. 특히 항공업계가 그간 호황이었던 탓에 복지에 관한 연구나 관련 기관이 부족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항공업계에서도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시스템과 프로그램을 구축할 필요성이 있다. 항공업계, 정부, 관련 학계에서는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항공 노동자에 대한 폭넓은 연구를 통해 항공업계에 알맞은 통합기관을 만들고 복지정책을 개발해 나가야 한다”는 제안도 내놨다.
곽진산 기자 kj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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