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나라, 두쪽 난 국민] [1] 가족·친구도 이념따라 갈라져
두쪽난 국민 여론조사 |
증권사에 다니는 최모(43)씨는 재작년 크리스마스 때 두 살 많은 누나네 가족을 집으로 초대해 가족 모임을 했다. 5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면서 모처럼 가족끼리 시간을 보내자는 취지였다. 후식으로 슈톨렌(독일식 빵)과 와인을 준비한 저녁 모임은 밥을 먹다 말고 40분 만에 끝났다. 자녀 입시 비리 혐의 등으로 기소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건이 화제에 올랐기 때문이다. 최씨는 “나는 혐의에 대해 팩트(fact)를 말하는데 누나는 ‘착하고 정의로운 사람(조 전 장관)을 정치 검찰이 괴롭힌다’고 하기에 ‘수험생 학부모가 어떻게 그런 순진한 소리를 하느냐’고 하다가 싸움이 됐다”고 했다.
조선일보가 케이스탯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10명 중 4명(39.1%)이 ‘3~4년 내 정치적 성향으로 가족·친구와 불편함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나이별로는 40대와 60대에서 45.8%로 높았고, 성별로는 남성(36.2%)보다 여성(41.9%)에서 불편을 경험한 비율이 높았다. 경남 지역의 한 초등학교 동문회는 매년 개최하던 송년회를 지난해 일주일 앞두고 취소했다. ‘동문회 채팅방에서는 정치적 의견 표명을 자제한다’는 룰이 있지만 일부 동문들이 대장동 사건과 관련된 친야(親野) 성향 동영상을 이틀에 한 번꼴로 올리자 “그만해라” “네가 뭔데 이런 말도 못 하게 하느냐”며 동문 간 싸움으로 번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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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친구를 멀어지게 하는 정치 논쟁을 피하는 방법도 가지각색이다. 출판사에 다니는 김모(41)씨는 가족 모임에서 정치 이야기가 나오면 속으로 열을 세고 화제를 돌린다. 김씨만의 ‘10초 룰’이다. 김씨는 “10년 전 무상급식이 이슈였을 때 형과 싸우고 2년간 말도 하지 않고 지낸 적이 있었다”며 “형은 안 바뀌는 것 같으니 내가 대화를 피하는 것”이라고 했다. 대학원생 김현진(25)씨는 소개팅에서 남성을 만나면 어떤 유튜브 채널을 좋아하는지부터 묻는다. 정치 성향 ‘필터’인 셈이다. 김씨는 “강경 보수 유튜브 채널을 즐겨 보는 남자를 만난 적이 있는데, 종교적 차이는 이해해도 정치적 차이는 극복할 방법이 없더라”고 했다.
[박수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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