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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9 (화)

    이슈 정치권 보수 진영 통합

    지지율 오르며 드러나는 李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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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쟁점 법안 속도 조절하더니…

    돌연 방송 3법 등 ‘속전속결’

    이재명 대통령이 방송 3법 등 쟁점 법안에 대한 입법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은 여당이 추진하는 각종 법안과 관련해 ‘신중한 접근’에 무게를 뒀는데, 취임 한 달여가 지난 현재 높은 국정 지지율을 바탕으로 자신감이 붙은 것으로 분석된다. 여권에선 “이념과 진영에 얽매이지 않는 실용주의 기조를 강조해 오던 이 대통령도 방송 3법 처리 문제 등에선 속마음을 드러낸 것 아니겠냐”는 말이 나왔다.

    이 대통령은 국정 기조를 ‘분열된 국론 통합’과 ‘안정적인 국정 운영’에 초점을 맞춰왔다. 내각 인선의 경우 ‘좌우 균형’을 유지하는 인선을 하며 대체로 무난하다는 평을 받았다. 사회적 이견이 큰 법안들도 ‘속도 조절’에 나서며 이 같은 입장을 유지해 왔다.

    대통령실은 KBS·MBC·EBS 등 방송사의 이사회 구성을 바꾸고, 법 시행 3개월 내 기존 사장·이사진 교체가 가능한 ‘방송 3법’에 대해서도 여당에 유보해 달라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애초 민주당 강경파는 방송 3법을 빨리 처리해야 한다며, 지난달 27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 소위에서 방송 3법을 심의·처리하려고 했다가 처리를 보류했다. 민주당은 “당·정·대(당·정부·대통령실) 협의를 더 거치겠다”고 했다.

    그런데 민주당은 지난 7일 돌연 방송 3법을 강행 처리했다. 이 대통령도 이날 민주당 소속 국회 상임위원장·간사들과 만찬을 하면서 방송 3법에 대해 “내 뜻과 같다”고 했다. 기류가 180도 달라진 것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대통령은 언론 노조, 강성 지지층의 불만을 무시할 수만 없고, 여당도 야당이 사분오열된 지금이 쟁점 법안 처리의 적기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다만 주요 사안에 대한 대통령의 입장이 갑자기 바뀐 듯 인식되는 것은 ‘신뢰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 ‘통합’ 강조하던 李의 태세 전환… 당내 “이게 진짜 속내”

    ‘방송 장악’ 논란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불거졌다. 진보 정권은 언론 노조 인사들을 중심으로 공영방송 인선을 꾸리고, 보수 정권은 그 반대로 행동하면서 양 진영 간 감정의 골이 깊었다.

    이 때문에 대통령실도 집권 이후 방송 3법을 바로 처리하면, ‘이재명도 방송 장악’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질 것이라 우려하며 법안을 정교하게 만들자고 민주당에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일부 민주당 과방위원은 ‘공영방송 사장추천위’를 100명 이상으로 구성하는 등의 장치를 마련하면 방송사 사장 인사에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될 수 없다는 취지로 대통령실에 설명하며 빠른 법안 처리를 요구했고, 대통령실도 이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여권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국민에게 방송을 돌려줘야 한다’는 뜻을 여러 번 밝혀왔다”며 “내용적으로 방송 장악이 아니라는 게 충분히 설명됐기 때문에 대통령도 ‘내 뜻과 부합한다’고 한 것 아니겠냐. 결국 이심(李心)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방송 3법 시행 후 3개월 내에 아직 임기가 남은 방송사 사장, 이사진까지 전부 교체가 가능하다”며 “어떻게 방송 장악이 아니냐”고 하고 있다.

    일각에선 이 대통령이 핵심 지지 기반인 친여 단체와 강성 지지층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란 말이 나왔다. ‘검찰 개혁’과 관련한 최근 기류 변화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는 분석이다. 대통령실은 취임 후 민생·경제 과제에 집중하기 위해 검찰 개혁은 신중하게 접근하는 분위기였다. 이 대통령이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민주당 내 온건파인 정성호 의원을 지명한 것도, 검찰 개혁의 충격을 최소화하겠다는 뜻으로 읽혔다. 정 후보자 역시 “야당과 협의해서 진행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강성 지지층들을 중심으로 정 후보자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당권 경쟁 중인 정청래·박찬대 의원은 강성 지지층을 의식해 ‘추석 전 검찰 개혁’을 외쳤다. 누가 당대표가 돼도 3개월 내에 검찰 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얘기다. 이후 이 대통령은 지난 3일 ‘취임 30일 기자회견’에서 검찰 개혁에 대해 “검찰 개혁은 국회가 하는 것”이라며 “제도 자체를 추석 전까지 얼개를 만드는 건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 3일 국회 본회의에 참석한 정 후보자가 휴대전화에 ‘검찰 개혁 시기, 하려면 신속히 선제적으로 하자’고 메모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이 대통령이 야당 대표 시절부터 해왔던 ‘굿 캅’ ‘배드 캅’ 전략을 이어가는 것이란 추측도 나온다. 이 대통령은 민주당 대표 시절 전(前) 정권 공직자들에 대한 탄핵소추 추진 등에 대해 목소리를 아끼고, 민생·경제·외교 등에 관한 메시지에 주력했다. 대신 원내 지도부가 윤석열 정부와 강경하게 싸웠다.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여당 강경파가 밀어붙이고 어쩔 수 없이 따라가는 모양새를 취한 것 아니냐는 얘기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여론 반응성이 뛰어난 이 대통령이 여론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했다.

    현재 이 대통령이 지지율 60%대를 유지하고, 민주당(50%대)과 국민의힘(20%대)의 지지율이 더블 스코어로 벌어진 점도 이 대통령이 ‘신중’ 모드를 조기에 벗은 배경이란 분석도 나온다. 이런 상황을 반영한 게 최근 국회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이란 분석이다. 상법 개정안은 1400만명 개인 투자자는 환호하지만 재계에선 우려를 표해 왔다. 이 대통령은 7일 만찬에서 상법 개정안에 대해 “아직 좀 부족하다”고 했다고 한다. 여야 합의로 처리된 상법 개정안에 집중 투표제,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 등의 내용이 빠졌는데 이를 추가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이 대통령이 이제 자신감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며 “여론 흐름을 보니까 국민의힘이 내분으로 인해 변화도 없고, 자신의 생각대로 정책을 추진해도 국민적 지지가 흔들릴 가능성이 별로 없다고 생각한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민주당은 방송 3법 등 전 정부가 재의 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법안들에 대해 “7월 중 처리하는 게 기본 원칙”이라며 이 대통령의 보조를 맞추는 모양새다. 진성준 정책위의장은 8일 KBS 라디오에서 노란봉투법, 양곡관리법, 지역화폐법 등에 대해 “우선 처리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강조해 온 실용주의 기조에 변화가 생기면 국정 지지율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대선 때 이 대통령을 지지한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8일 CBS라디오에서 “너무 자신감이 지나치면 실수하기 쉬운 법”이라며 “(레드팀 같은) 역할을 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아직 취임 한 달째인데 과거처럼 말이 바뀌는 듯한 모습을 다시 보이면,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김정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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