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12 (금)

    이슈 세계 속의 북한

    “한미회담, 충돌 피한 걸로 성공… 김정은 ‘中도 있다’ 보이려 베이징行”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광복 80년, 한국의 미래를 묻다]

    <5> 리처드 하스 美외교협회 명예회장

    조선일보

    리처드 하스 미국외교협회(CFR) 명예회장은 본지 인터뷰에서 “이미 사실상 핵 보유국인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핵 억지력 강화와 군비 축소가 현실적”이라고 했다. 사진은 하스 명예회장이 과거 서울 한 호텔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는 모습. /조선일보DB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리처드 하스 미국외교협회(CFR) 명예회장은 지난달 30일 본지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북한 김정은의 전승절 참석은 러시아뿐만 아니라 중국과의 연결 고리도 과시하려는 의도”라면서도 “미국 대통령이 미·북 대화에 관심이 많지만 합의를 도출할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라고 했다. 그는 “북한은 사실상의 핵 보유 세력이고, 핵을 포기할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도 했다. 그는 “전략보다 경제적 이익을 앞세우고 과거보다 변덕스러운 미국의 등장으로 인해 세계는 더 혼란스러워졌고, 역사에서 매우 어려운 순간에 직면했다”며 “특히 미국의 동맹국엔 험난한 시간이 도래할 것”이라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미 대통령의 첫 한미 정상회담은 어떻게 봤나.

    “외교에선 성취뿐 아니라 어떤 결과를 피했느냐를 놓고 성공 여부를 판단하기도 한다. 이번 회담은 후자 쪽에 더 가까운데 중요한 합의나 성과는 도출하지 못했지만, 양국 지도자들이 공개적인 충돌은 피했다는 점에서 꽤 괜찮은 결과를 냈다고 본다.”

    −한국은 막대한 대미(對美) 투자를 하기로 했는데.

    “한국이 트럼프와 그런 협상을 한 유일한 나라는 아니다. 한국의 의사 결정자들은 정치적·경제적 타당성 두 기준을 놓고 결정할 텐데, 나는 낙관론자에 가깝다. 민간 부문과 협력해 양국 관계에 도움이 되면서도 한미 모두에 경제적으로도 합리적인 투자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김정은은 왜 이 시점에 전승절에 참여하기로 했을까.

    “북한 지도자는 종종 관심을 받는 걸 즐기는 듯하다. 최근 몇 년간 러시아와 가까워진 듯 보이지만 중국과의 연결 고리도 있음을 대내외에 시사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트럼프가 미·북 대화에 관심이 많은데 실제로 만나서 논의할 내용이 많을지는 회의적인 입장이다. 미·북이 어떤 합의를 도출할 수 있을지 근거가 별로 없다. 물론 나는 (전통적 방식을 중시하는) ‘올드 스쿨’이기 때문에 한국이든 미국이든 외교가 안보의 수단이자 도구라고 생각한다. 원칙적으로는 대화를 환영하지만, 대북 대화의 역사를 생각하면 신중한 걸 넘어 회의적인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다.”

    −북한 비핵화는 여전히 현실적인 목표일까.

    “미 조야에선 ‘비핵화’ 대신 ‘군축’을 주장하는 사람도 많아졌는데 안타깝게도 그 의견에 동의한다. 나는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것으로 믿지 않는다. 핵·미사일에 막대한 투자를 해 상당한 무기고를 구축했고, 핵을 단순한 안보 수단이 아닌 국가의 지위와 연결된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나는 현실주의자다.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공인해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사실상 그렇지 않은가. 한미는 억지력 구축을 포함해 모든 대안을 생각해야 하고, 북한과 대화도 그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조선일보

    리처드 하스 미국외교협회(CFR) 명예회장이 30일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의 국제 질서는 가치·규범보다는 힘에 좌우되는 것 같다.

    “그건 트럼프가 재집권하고 나서 미국이 동맹·무역 접근 방식을 바꾼 현실과 관련이 크다. 과거 미국은 강력한 동맹 관계를 기반으로 외교를 했고, 적대국·경쟁국 접근 방식을 수립했다. 반면 트럼프는 전임 대통령들만큼 동맹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또 지금은 거시적인 전략적 목표보다는 무역 불균형 해소, 국내 투자 유치 같은 경제적 목표가 미국 외교정책의 우선순위가 됐다. 미국은 더 일방적이게 변했고 동맹과 유대도 약해졌다. 나는 이걸 분석하는 사람이지만 이런 변화들이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한국 같은 나라는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나.

    “미국 동맹들에는 어렵고 힘든 시기가 도래했다고 본다. 지난 70~80년 동안 동맹들은 미 외교정책 방향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그렇지 않기 때문에 모든 나라가 외교 포트폴리오를 재검토하는 중대한 논의를 거치고 있다. 앞으로 외교정책을 얼마나 미국에 의존할 것인지, 다각화가 필요한지 등이다. 미국과 유대는 지속되겠지만 그렇게 지배적이지는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정치·경제 파트너를 추가로 찾고, 일부 분야에서는 자급자족을 강화하는 등 선택지는 다양하다.”

    −한일 협력의 필요성은.

    “두 나라 사이의 역사 문제의 근원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인상적인 진전이 있었고 미국에서 큰 주목을 못 받았지만 바이든 정부와 한일의 이전 정부가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정부들이 이를 계승하고 있어 정말 좋은 신호라 생각한다. 두 나라는 한반도가 됐든 대만이 됐든 그 지역과 세계에서 막대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미·중 경쟁은 어떻게 전망하나.

    “이 시대를 정의할 경쟁이다. 관건은 미·중이 전략적인 차이를 평화적으로 관리할 수 있느냐다. 이는 곧 남중국해와 대만 문제로 이어지는데 우리가 중국의 역량 신장 자체를 막을 수는 없지만 그들의 계산, 의사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다. 학생들을 가르칠 때 ‘역사에 필연 같은 건 없다’고 말한다. 미·중이 필연적으로 전쟁을 하고 끔찍한 결과에 이를 것이란 일부 학자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미·중이 직면한 도전 과제에 대응할 수 있느냐는 역사가 보여줄 것이다.”

    −규범·제도가 약화돼 세계가 점점 더 혼란스러워졌다고 했는데.

    “나는 10~20년 전보다 오늘날 세계가 더 큰 혼란 속에 있다고 말하고 싶다. 유럽과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끔찍한 전쟁을 보라. 한국 주변 상황도 마찬가지다. 미국이 과거에 비해 예측 불가능해졌다는 점도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는 요인이다. 역사에서 매우 어려운 순간이라 생각한다.”

    −민주주의의 미래는 어떻게 보나.

    “분명히 여러 나라에서 도전을 받고 있지만 앞으로도 계속해서 우월한 체제로 남아 있을 것으로 본다. 경제성장이 부진하고 기술·무역 문제로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소셜미디어가 가져오는 부작용도 있다. 어려운 통치 형태지만 지난 80년을 돌이켜보면 민주주의가 있어 평화가 있었고 경제적 부(富)도 창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거저 주어지는 없기 때문에 우리는 이를 유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광복 80년을 맞은 한국이 앞으로 고려해야 할 우선순위는.

    “한국 역시 최근 몇 달간 시험대에 오른 민주주의를 견고하게 유지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 경제성장도 지속해야 한다. 인공지능(AI)을 비롯해 급진적인 기술 혁신이 일어나는 시대에 일자리가 사라지고 또 새로 생겨날 텐데 이 역동적인 시기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는 사실 우리 모두가 마주할 과제다. 또 중국·북한의 잠재적인 위협을 안고 있는데 자국 노력에 더해 미국·일본과 관계를 통해 이를 풀어나가야 한다. 이렇게 까다로운 안보 환경에서 어떻게 안전성을 유지할 것인가는 25년 전에도 유효한 물음이었다. 한국 정부는 쉽지 않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정책 조합들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조선일보

    리처드 하스 미국외교협회(CFR) 명예회장이 2021년 5월 이수혁 당시 주미대사로부터 수교훈장 광화장을 받고 있다. 광화장은 한국과의 외교 관계에 크게 기여한 외국의 인사에게 수여하는 최고 등급 훈장이다. /주미한국대사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