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켈 “발트 3국 등이 협상 반대”
前 폴란드 총리 “생각 없는 발언”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가 작년 11월 26일 독일 베를린 도이체 극장에서 열린 자신의 회고록 '자유, 1954~2021년의 기억' 출판 기념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메르켈 전 총리는 지난 1월 자신의 뒤를 이어 기독교민주연합(CDU)의 지도자가 된 프리드리히 메르츠 현 독일 총리가 강경 우파 포퓰리즘 지지에 의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AF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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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가 3년 8개월째 진행 중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유럽연합(EU)·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내 일부 동유럽 국가들의 책임론을 제기해 논란이 일고 있다. 재임 중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함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상대로 전쟁을 막기 위한 직접 협상을 진행하려 했지만, 폴란드와 발트 3국(라트비아·리투아니아·에스토니아)의 강력 반발로 무산돼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막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에 메르켈이 언급한 국가 전현직 고위 인사들이 일제히 반발하면서 EU·나토 내부의 감정싸움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메르켈은 지난 3일 공개된 헝가리 유튜브 채널 파르티잔과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책임이 동유럽 국가들에 있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그는 “2021년 6월 당시 푸틴은 민스크 협정을 준수하는 데 더 이상 관심이 없어 보였고 EU 차원에서 푸틴과의 새로운 형식의 대화가 필요했다”며 “마크롱과 함께 푸틴과의 직접 협상을 EU에 제안했다”고 말했다. 민스크 협정은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프랑스와 독일이 중재해 체결된 휴전 협정이다. 푸틴이 이 협정을 무력화할 것으로 보여 자신이 새로운 대화 체제 구축에 나섰다는 것이다. 메르켈은 여기에 일부 동유럽 국가들이 제동을 걸었다고 했다. 그는 “주로 발트 3국이 이를 지지하지 않았고, 폴란드 역시 반대했다”며 “그들은 러시아에 대한 공동의 정책을 도출하지 못할까 봐 두려워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쟁을 억제하기 위한 직접 협상이 불발됐고, 자신의 사임 이후 푸틴의 침공이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메르켈 퇴임 두 달 뒤 우크라이나 침공에 나섰고, 이후 정권 교체로 집권한 올라프 숄츠 사민당 정권은 우크라이나를 적극 지원했다.
인터뷰 내용이 공개되자 메르켈이 언급한 국가 인사들이 강력히 반발했다. 크리샤니스 카린시 전 라트비아 총리는 6일 “당시 메르켈의 독일을 비롯해 대부분 국가들이 러시아를 이해하지 못했다”며 “우리(발트 3국)는 ‘푸틴을 선의로 대할 수 없다’고 계속 주장했지만, 메르켈은 우리가 틀렸다고 봤다”고 했다. 이어 “푸틴 앞에서 서방의 선택지는 굴복하거나 저항하는 것뿐이었다”며 “메르켈이 여전히 그런(푸틴과 대화가 통한다는) 생각을 한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했다.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전 폴란드 총리도 X에 “메르켈은 생각 없는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지난 세기 유럽에 가장 해로운 정치인의 선봉에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고 비판했다. 당시 집권했던 제1 야당 ‘법과 정의’는 “메르켈의 직접 협상 제안이 우크라이나 분열을 가져왔을 것”이라고 했다. 마르구스 차크나 에스토니아 외무장관도 “침략 행위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러시아에 있다”며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메르켈은 퇴임 이후인 2022년 11월 독일 주간지 슈피겔 인터뷰에서 비슷한 취지로 발언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가능성이 있다는 첩보를 받았고, 푸틴과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보려 했으나 임기 말 레임덕으로 지지를 받지 못해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로 취임해 16년간 재임하며 최장수 기록을 세운 메르켈은 러시아에 지나치게 유화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2008년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반대해 러시아에 침공 여지를 줬다는 비판이 일었고,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하고 동부 돈바스를 침공했을 때도 러시아산 가스를 자국으로 연결하는 프로젝트를 강행해 논란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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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보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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