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팔레스트인 테러집단 하마스 소속 대원들은 가자 시티의 한 건물 안에서 흰색 천을 씌운 한 시신 한 구를 들고 나왔다. 이스라엘 측에 반환할 남은 인질 시신 14구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들은 이 시신을 건물 곁에 중장비를 동원해서 파 놓은 거대한 구덩이의 한 켠에 놓았다. 그리고 삽으로 그 위에 흙을 덮고는, 국제적십자사 직원들에게 연락해 새 시신이 처음으로 “발견”됐다고 신고했다.

그러나 하마스가 이 시신을 애초 건물에서 꺼내서 웅덩이 흙에 다시 묻고 ‘발견’을 연출하기까지의 전(全)과정은 이스라엘방위군(IDF) 드론에 찍혔고, 이스라엘 국방부는 28일 오후 이 영상을 공개했다.

이 시신은 2023년 10월7일 가자 지구에서 가까운 곳에서 열린 노바 음악제에 참석한 오피르 차츠라피였다. 자츠라피는 27세 생일 기념으로 친구들과 이 음악제에 갔다가, 하마스의 기습 테러를 받았고 친구들과 함께 가자 지구로 끌려갔다.

27일 저녁 아들의 시신이 담긴 관을 넘겨 받은 유족은 차츠라피의 시신이 다시 매장되고 ‘발견’되는 IDF 드론 촬영 동영상을 보고는 더 깊은 분노에 휩싸였다.

차츠라피의 시신 중 일부는 이미 2023년 12월 1일 이스라엘군 작전에서 수거됐고, 작년 3월에도 추가로 시신이 발견됐다. 이 역시 나중에 차츠라피의 것으로 확인됐다.

팔레스타인 테러집단 하마스에 납치 살해된 지 2년 여만에, 시신이 모두 3차례 나뉘어 가족의 품에 돌아오게 된 오피르 차츠라피(사망 당시 27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결국 이날 하마스가 ‘발견’했다며 넘겨준 것은 차츠라피 시신의 나머지 부분에 해당한다. 가족은 이날 시신의 마지막 일부를 받으면서, 아들의 무덤을 세번째 열게 됐다.

유족은 28일 성명을 내고 “하마스는 우리가 치유하려고 애쓰는 동안에, 또다시 우리 가족을 속였다”며 “극도로 혐오스러운 조작”을 비판했다. 유족은 “이제 오피르의 무덤을 세번째로 다시 열고 아들을 다시 매장하게 됐다. 우리는 2023년 12월에 ‘마침표’를 찍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결코 찍힌 적이 없었다. 도대체 아들을 몇번씩 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했다.

IDF 드론이 촬영한 영상에서 하마스 인부들은 차츠라피의 시신 위에 흙을 덮은 뒤에, 굴착기를 동원해서 이를 주변 흙과 함께 떠서 건물 옆 바닥에 놓았다. 이후 적십자사 직원들이 와서 아직 흙에 묻혀 있는 이 시신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했다.

이스라엘 국방부는 하마스가 이런 ‘발굴’ 조작 영상을 통해서 “합의에 따라 반환하기로 한 인질 시신을 계속 붙잡고 있으면서, 국제사회에는 마치 시신을 찾아 발굴하는 노력을 다하고 있다는 거짓된 이미지를 만들고 있다”고 비난했다.

국제적십자사(ICRC)도 “우리 팀은 시신 수습처럼 보이는 장면을 목격했지만, 그 과정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사전에 알지 못했다”며 “합의에 많은 것이 달려 있고 수많은 가족이 아직도 사랑하는 가족에 대한 정보를 애타게 기다리는 상황에서, 이러한 조작된 인질 시신 수습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 영상이 공개된 뒤, 이스라엘 정계에선 하마스와의 휴전 합의를 유예하고 하마스의 지연 작전에 즉각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하마스는 불도저와 같은 중장비가 부족해 시신 발굴과 수습이 늦어지고 있다며, 이들 장비의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공영방송 KAN은 28일 “하마스는 시신을 발굴하기 보다는, 땅에 묻으려고 중장비를 요청한 것 같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하마스가 현재 반환하지 않은 13구의 인질 시신 중 최소 9구 이상을 확보하고서도 계속 ‘협상력’을 유지하고 국제사회에 조작된 ‘이행 노력’을 보여 제재ㆍ압박을 완화하려고 시간 끌기 작전을 하는 것으로 본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실은 대응 작전의 방안으로, 가자 지구 내 이스라엘군 통제 면적을 확대해서 하마스를 압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며, 이스라엘 언론은 미국도 이 ‘압박 작전’에 공감을 표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부 과격파는 최근 미국이 중재한 하마스와의 합의에 따라 이스라엘 정부가 석방한 250명의 팔레스타인인 종신형 복역수와 2023년 10월7일 하마스의 기습테러 이후 체포했다가 석방한 1700여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을 도로 잡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강경파로 내년 총선에서 네타냐후의 강력한 적수가 될 전(前) 총리 나프탈리 베네트는 성명을 내고 “하마스는 암으로, 박멸돼야 한다”고 밝혔다.

조선일보 국제부가 픽한 글로벌 이슈!

원샷 국제뉴스 더보기

[이철민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