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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7 (일)

    이슈 드론으로 바라보는 세상

    “집을 나서자, 지붕 위 기다리던 러시아 드론이 따라왔다”…우크라 민간인의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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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크라이나 탈환 헤르손

    민간인 겨냥한 러시아 드론 공격

    유엔 “반인도적 범죄”에도 지속

    조선일보

    24세의 아나스타시야 파블렌코가 자전거를 타고 가는 모습을 러시아군 드론이 찍어 텔레그램에 올렸다. 러시아군은 이 인물이 "군인"이라고 했지만 그는 군 복무 경험이 전혀 없는, 안토니우카 출신의 두 아이 엄마다. 결국 드론은 파블렌코를 폭격했다. /텔레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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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에 점령됐다가 우크라이나가 탈환한 헤르손 지역의 민간인들에게 지난 1년은 하늘에서 테러가 쏟아지는 나날이었다. 러시아가 단행하는 체계적인 드론(무인기) 공격은 24시간 내내 이어졌다. 지난 8~9월 헤르손 지역은 러시아 드론의 공격을 주당 평균 2500회 이상 받았다. 지역 군사 행정부에 따르면 올해 첫 7개월 동안 민간인 847명이 피해를 입었고 이 중 79명이 사망했다.

    드니프로 지구와 헤르손 같은 인근 마을들은 드니프로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러시아군 진지와 마주하고 있다. 러시아군은 이 지역을 계속 포격해왔는데, 1년여 전부터는 드론(무인기)을 대량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소셜미디어에 자신들의 ‘인간 사냥’ 장면을 게시해 왔다. 유엔 우크라이나 독립 국제조사위원회는 이러한 행위를 ‘반인도적 범죄’로 규정했다.

    66세 테티아나 카르마지나의 집은 강가 근처에 위치해 있다. 지난 3월 30일 그는 개를 찾으러 밖으로 나갔다가 머리 위를 날고 있는 조용한 드론과 맞닥뜨렸다. 집과 가까운 교차로 부근이었다. 그의 회상이다. “드론은 집 지붕과 나무 위에 있었어요. 제가 나오자마자 바로 이륙했습니다. 빨간 불빛을 보고 폭탄이 떨어질 것이라고 직감했고, 정말 그렇게 됐습니다.”

    폭탄은 카르마지나의 발밑에 정확히 떨어졌다. 오른발은 완전히 떨어져 나갔고, 왼쪽 발은 파편에 심하게 다쳤다. 집에 휴대전화를 두고 나온 탓에 기어서 돌아가야 했다. 그는 “한 시간 반 정도 기어간 것 같다”며 “개가 대문에서 저를 알아보지 못하고 손을 물었다. 문이 잠겨 있어서 한참 동안 열지도 못했다”고 했다. 그는 오른쪽 무릎 아래 다리를 절단해야 했다. 지금은 의족 장착을 준비 중이다. 부상 전 카르마지나는 매일 10㎞를 걸었다. 지금은 너무 먼 옛날의 이야기가 됐다.

    러시아는 민간인에 대한 드론 공격을 소셜미디어에 올리고 있다. 2024년 9월, 러시아 텔레그램 채널에 드론으로 촬영한 영상이 등장했다. 시골길을 자전거로 내려오는 한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자막에는 러시아 조종사가 드론으로 탄약을 투하하기 전 촬영한 ‘우크라이나 군인’이라고 되어 있다.

    조선일보

    러시아 드론 공격에 부상당한 아나스타시아 파블렌코가 상처를 보여주고 있다. /PIJL, 아나스타시아 파블렌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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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세 아나스타시야 파블렌코는 그 영상 속 인물이 자신임을 알아보았다. 그는 군 복무 경험이 전혀 없는, 안토니우카 출신의 두 아이 엄마다. 그날 그저 버스를 놓쳐 길에 서 있었을 뿐이다. “드론이 지붕에서 날아와 저를 쫓아왔어요. 저는 자전거 핸들을 좌우로 돌렸죠. 오른쪽엔 도랑이 있어서 왼쪽으로 핸들을 꺾은 순간, 드론이 옆으로 날아와 저를 카메라로 겨냥하고 탄약을 투하했습니다.”

    아나스타시야는 폭발로 심각한 부상을 입어 파편 제거 수술을 여러 차례 받았다. 한 조각은 아직 다리에 남아 있다. 걸을 땐 지팡이를 사용해야 하고 통증이 심해지면 휠체어를 탄다. 최근 의사들은 그녀의 폐에서 또 다른 파편을 발견했다.

    ◇공격의 규모와 방법

    2025년 첫 7개월 동안만 러시아군은 헤르손 지역의 우크라이나 탈환 지역에 다양한 유형의 공격용 드론 1만6322대를 투입했다. 총 847명의 민간인이 피해를 봤다. 이 중 79명이 사망했다. 768명이 다쳤는데 이 중 11명은 어린이였다. 지난 8월에는 공격 강도가 급격히 증가해 주당 최대 2500대의 드론이 투입됐다. 야간엔 드론이 열화상 카메라를 사용한다. 우크라이나군이 이 중 80%를 격추하는데도 지난 한 달 반 동안 드론 공격으로 15명이 사망하고 118명이 다쳤다. 그 이전인 2024년 하반기엔 주민 47명이 사망하고 578명이 다쳤다. 이 중 8명이 어린이였다.

    주민들은 러시아 드론이 종종 쌍으로 나타나는 ‘이중 공격’ 전술을 편다고 증언했다. 한 대가 사람에게 폭발물을 투하하면, 두 번째 드론은 부상자를 돕기 위해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을 방해한다. 이로 인해 응급 서비스가 제때 출동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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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군 드론에 공격당한 우크라이나 헤르손의 구급차. 러시아군 드론은 종종 쌍으로 움직이면서 한 대가 민간인을 공격하면 다른 한 대가 구급차 등을 폭격하며 구조를 방해한다고 주민들은 증언했다. /PIJ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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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5세 구급대원 올렉시 알페로프는 이를 직접 경험했다. 지난 4월 그의 팀은 드론 공격으로 다친 사람에 대한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그들은 부상자를 구급차에 태우고 병원으로 향했다. 약 300m를 주행했을 때 폭발이 발생했다. “아마도 우리를 타격한 드론은 대기 모드였을 겁니다. 차량 승객석에 정면으로 명중했어요. 차는 완전히 박살 났죠.” 차에는 명확히 구급차라는 표식이 붙어 있었다.

    ◇유엔 조사 결과 “반인도적 범죄”

    2024년 12월까지 헤르손 지역 암 병원은 약 3만4000명의 암 환자를 치료했다. 그러나 2024년 가을부터 러시아 드론들이 정기적으로 출몰해 직원과 환자를 노려, 진료에 차질을 빚고 있다. 2024년 11월 26일 한 연구원이 드론 공격으로 살해된 후 팀은 이전을 결정했다. 병원 관계자는 “러시아 측은 텔레그램 채널에 우리 병원 사진을 올리고 ‘그곳에 군인이 있었다’고 썼다. 하지만 우리 병원엔 암 환자와 의료진 외엔 아무도 없었다”고 했다.

    지난 5월 유엔 우크라이나 독립 국제조사위원회는 러시아군이 “공포를 확산시키고 수천 명의 주민이 집을 떠나도록 강요하기 위한 의도로 민간인 살해 및 공격이라는 형태의 반인도적 범죄를 저질렀다”고 결론 내린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공격 장면을 담은 영상과 추가 공격을 예고하는 위협적 문구의 공개적 유포가 대중의 공포를 증폭시켰으며, 러시아 텔레그램 채널에 게시된 민간인 살해 및 부상 장면 영상이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모독 형태의 전쟁 범죄”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이 기사는 우크라이나 및 국제 언론인, 분석가, 변호사들이 주도하는 프로젝트 ‘더 리커닝 프로젝트’ 산하 공익 저널리즘 연구소(PIJL)에서 작성했습니다. PIJL은 2022년 3월부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 자행된 전쟁 범죄를 기록하고 분석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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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르손=빅토리아 발리츠카(PIJL 기자 겸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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