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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6 (토)

    이슈 주목 받는 아세안

    “韓은 동티모르 눈물 닦아준 의형제… 번영의 길 같이 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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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티모르 ASEAN 가입 기념식

    “동티모르 독립에 韓 상록수 부대 헌신 결정적”

    “韓은 가장 기댈 수 있는 파트너이자 교과서”

    가입식에선 펑펑 울었지만, 축하연에선 활짝 웃었다. 지난 17일 오후 서울 중구 노보텔 앰배서더 서울 동대문에서 열린 동티모르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가입 기념 리셉션 현장은 지난달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보인 눈물바다와는 전혀 다른 축제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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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7일 서울 중구 노보텔 앰배서더 서울 동대문에서 열린 동티모르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가입 기념 리셉션 현장. /안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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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샤나나 구스망 동티모르 총리는 아세안의 11번째 정회원국 가입이 확정되자 연단에서 감격의 눈물을 쏟아내며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하지만 이날 서울 행사장은 동티모르의 새 출발을 축하하는 한국인들과 동티모르인들의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주한 동티모르 대사관이 주최한 이날 행사에는 아세안 국가 대사들을 비롯해 외교관 출신인 김건 국회의원, 동티모르국립대에서 한국학센터장을 지낸 최창원 고려대 아세안센터 연구위원 등 외교·학계 전문가들이 참석해 동티모르의 아세안 가입을 축하했다.

    남녀가 발을 구르며 손을 맞잡는 동티모르 전통 춤 ‘테베(Tebe)’가 연회장을 달구자 국경을 초월한 박수가 쏟아졌다. 이날 행사는 단순한 축하 자리를 넘어 한국과 동티모르가 맺어온 25년의 끈끈한 ‘혈맹(血盟)’ 관계를 재확인하는 자리였다. 권기환 외교부 글로벌다자외교조정관은 이날 축사에서 “1999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APEC 정상회의에서 동티모르 독립 문제를 공식 제기한 순간부터 두 나라는 특별한 인연을 맺어왔다”며 “동티모르의 성장 여정 속 결정적인 순간마다 한국이 함께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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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나나 구스망 동티모르 총리가 26일 열린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동티모르의 가입이 승인된 직후 취재진 앞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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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스망 총리가 흘린 눈물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동티모르의 비극적인 현대사를 들여다봐야 한다. 동티모르는 ‘21세기 첫 독립국’이라는 영광스러운 타이틀 이면에 수백 년의 피눈물을 간직한 나라다. 16세기부터 450년 넘게 포르투갈의 식민 지배를 받으며 백단향과 같은 자원을 수탈당했다. 1975년 포르투갈이 물러가며 잠시 독립을 선언했지만, 기쁨은 고작 ‘9일’뿐이었다.

    당시 베트남의 적화 통일 등 동남아 지역을 휩쓸던 공산주의에 “공산화를 막겠다”는 명분을 내세운 인접국 인도네시아가 곧바로 무력 침공을 감행했기 때문이다. 이후 24년간 이어진 인도네시아의 강점기 동안 당시 동티모르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약 20만명이 학살과 기아로 목숨을 잃었다. 남자가 보이면 사살하고 마을을 불태우는 ‘초토화 작전’ 속에서도 동티모르인들은 정글로 숨어들어 끈질기게 저항했고, 1991년 딜리 시내에서 벌어진 산타크루즈 대학살로 수많은 젊은이가 희생된 끝에야 국제사회의 관심을 얻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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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티모르의 평화유지를 위해 파견된 상록수 부대 장병들이 오는 현지 주민들에게 구호품을 증정하고 있다. /조선DB


    이 비극의 땅에 평화의 씨앗을 뿌린 결정적인 산파가 바로 한국의 김대중 정부와 상록수 부대였다. 1999년 8월 동티모르가 유엔 주관 투표를 통해 독립을 결정하자, 패배를 인정하지 못한 친인도네시아 민병대들이 주민들을 무차별 학살하는 ‘킬링 필드’가 재현됐다. 당시 미국과 호주 등 서방 강대국들은 인도네시아와의 외교 관계를 우려해 개입을 주저했다. 이때 김대중 대통령이 1999년 9월 뉴질랜드 APEC 정상회의에서 “인권은 국익보다 우선한다”며 각국 정상들을 설득해 다국적군 파병을 이끌어냈다. 한국 외교사가 기록하는 가장 빛나는 인도주의적 결단 중 하나다.

    한국은 말뿐 아니라 직접 군대를 보내 헌신했다. 1999년 10월 파병된 한국군 상록수 부대는 동티모르 오쿠시 지역에 주둔하며 4년간 치안 유지와 구호 활동을 펼쳤다. 상록수 부대는 단순한 경비 병력이 아니었다. 내전으로 무너진 학교와 교회를 다시 짓고, 의사가 없어 죽어가던 주민 4만여 명을 치료했다. 군복 입은 한국 군인들이 아이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고 구호품을 나눠주는 모습에 현지인들은 그들을 ‘말라이 무틴(Malai Mutin·다정한 하얀 천사)’이라 부르며 따랐다.

    이 과정에서 2003년 3월 오에쿠시주 에카트강에서 임무 수행 중 급류에 휩쓸려 순직한 민병조 중령·박진규 중령·백종훈 병장·김정중 병장·최희 병장 등 장병 5명의 숭고한 희생은 동티모르 땅에 한국에 대한 영원한 고마움을 새겼다. 이날 행사에서 만난 동티모르 관계자들이 한국을 “피를 나눈 형제”라고 부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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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나나 구스망 당시 동티모르 대통령 부인인 커스티 구스망 여사가 2003년 동티모르에서 순직한 상록수부대 최희 병장의 집을 방문, 어머니의 손을 잡고 위로의 말을 전하고 있다. /조선DB


    이제 한국은 총 대신 행정 노하우라는 새로운 무기로 동티모르를 돕고 있다. 한국 정부는 동티모르가 아세안의 온전한 일원이 될 수 있도록 ‘동티모르 아세안 회원국 승격 역량 강화(KICKSTART)’ 사업을 본격 추진 중이다. 오랜 식민 지배와 내전 탓에 텅 비어버린 행정 시스템을 채우기 위해 공무원 교육, 제도 개선 등 소프트웨어를 전수하는 것이다. 권 조정관은 “한국은 아세안의 포괄적 전략 동반자(CSP)로서 동티모르가 아세안 체제에 원활히 통합될 수 있도록 기후변화 대응과 미래 지향적 분야에서도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안토니오 데 사 베네비데스 주한 동티모르 대사는 “국가 재건과 민주주의 정착 과정에서 한국은 가장 기댈 수 있는 파트너이자 교과서였다”며 한국을 장기적 전략 자산으로 평가했다. 그는 “이제 동티모르는 아세안 가족의 일원이자, 한국과 함께 지역의 번영을 만들어 갈 파트너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포부를 다졌다.

    [안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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