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립여당 개헌 발의선 310석 이상 전망도
野, ‘물과 기름’ 합당으로 자멸 위기
요코하마시에서 유세하는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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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총리로서 적격인지 유권자 여러분께서 판단해 주십시오.”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65) 일본 총리가 유세에서 내내 외친 이 한마디는 8일 치러지는 제51회 중의원(衆議院·하원) 총선거의 성격을 가장 명확하게 규정한다. 이번 선거는 단순한 의석 다툼을 넘어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인 다카이치에 대한 ‘국민 신임 투표’이자, 일본의 국가 정체성을 ‘보통 국가’로 바꾸려는 거대한 실험의 첫 관문이다.
취임 3개월 만에 해산을 단행한 다카이치는 “연립이 과반을 못 얻으면 즉시 사임하겠다”며 배수의 진을 쳤다. 해산부터 투표일까지 16일.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단 선거전이다. 지지율이 꺾이기 전에 승부를 보려는 ‘대처(Thatcher)식 계산’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투표일을 하루 앞둔 7일 현재, 일본 주요 언론과 조사 기관들은 자민당의 압승과 함께 전후(戰後) 일본 정치의 근간을 뒤흔드는 지각 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①자민당, 300석 고지 넘나
이번 선거에서 집권 자민당은 2024년 총선 191석 참패를 딛고 화려한 부활을 예고하고 있다. 현재 198석인 자민당의 예상 의석수는 기관마다 차이가 있으나, 아사히신문은 총 465석 중 292석, 마이니치신문은 278석, Electoral Calculus는 291석(범위 260~320석)으로 전망했다.
특히 자민당은 이번에 연립 파트너를 공명당에서 오사카 등 관서 지역 기반의 일본유신회로 교체했는데, 현재 34석인 유신회가 이번 선거에서 45~60석을 확보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두 당의 의석을 합치면 300석을 훌쩍 넘기게 되며, 헌법 개정 발의가 가능한 3분의 2선인 310석(초다수) 달성 시나리오도 현실화되는 분위기다.
승리의 비결은 뭘까. 옥스퍼드대 크리스티 고벨라 교수는 “자민당이 과반을 얻는다면 그것은 거의 전적으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 개인 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다카이치 내각 지지율은 NHK 62%, 니케이 75%, JNN 78.1%로 자민당 정당 지지율(29~37%)을 압도적으로 웃돈다.
27일 도쿄에서 열린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선거 유세에서 사람들이 일본 국기를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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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에 매니아(Sanae-mania)’ 현상도 독특하다. CNN은 그녀의 유세장을 “J팝 스타의 콘서트”에 비유했다. 지지자들은 그녀의 핸드백과 분홍색 펜 복제품을 사고, SNS 짧은 영상이 젊은 층의 자민당 복귀를 견인했다. 특히 20~30대 지지율이 80~86%에 달한다.
또 다른 이유는 야권 분열이다. 2024년 정치자금 스캔들로 191석까지 추락했던 자민당이지만, 야당이 중도개혁연합·국민민주·참정당·레이와·공산당으로 산산이 쪼개지면서 한 지역구에서 한 명만 선출하는 소선거구에서 ‘어부지리’를 누리고 있다. 2009년 민주당이 308석으로 압승했을 때와 정반대 상황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전례 없는 공개 지지도 한몫했다. 선거 이틀 전인 2월 6일, 트럼프는 트루스 소셜에서 다카이치에 대해 “완전하고 전적인 지지(Complete and Total Endorsement)”를 표명하며 다음 달 19일 백악관 회동까지 발표했다. 현직 미국 대통령이 동맹국 선거에 이토록 노골적으로 개입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②중도개혁연합은 왜 절반 이하로 추락하나
자민당의 독주를 막기 위해 입헌민주당과 26년간 자민당의 연정 파트너였던 공명당이 결성한 ‘중도개혁연합(CRA·중도)’은 참패의 길을 걷고 있다. 결성 이전 두 당의 의석 합계는 172석(입헌 148+공명 24)이었으나, 이번 선거에서는 80~110석 수준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아사히신문은 더 낮은 74석을 예측하기도 했다.
실패의 가장 큰 이유는 ‘급조된 야합’이다. 1월 14일 결성, 1월 16일 정당 등록, 1월 27일 공시. 결당부터 공시까지 불과 13일. ‘중도개혁연합’이라는 당명조차 유권자에게 제대로 다가가지 못했다. 노다 요시히코 대표 자신이 “우리는 걸음마 떼는 아기 정당”이라는 자조 섞인 메시지를 내보냈을 정도다. 더 큰 문제는 ‘이념적 부정합’이다. 입헌민주당의 진보·호헌(헌법 9조 보호) 노선과 공명당(창가학회)의 중도·현실주의 노선 사이에는 안보 정책, 원전, 헌법 개정에서 근본적 괴리가 있다. 자민당 스즈키 간사장은 이를 “기본 정책은 뒷전인 상호 구제 선거 모임”이라고 조롱했다.
표의 이탈도 심각하다. 26년간 자민당 후보를 지원해온 창가학회 회원들에게 과거 적대했던 입헌민주당 후보를 지지하라는 요구는 심리적 저항을 야기했다. 한 회원은 “공명당이 영혼을 팔았나”라고 반응했다. 요미우리 조사에 따르면 공명당 지지층의 중도개혁연합 지지율은 90%에 미치지 못한다.
반대편에서도 이탈이 일어났다. 입헌민주당 지지층 중 진보·리버럴 성향은 “공명당과 손잡은 것은 이념적 배신”으로 느끼며 공산당·레이와 등 진보 성향이 강한 정당으로 이탈했다. 결과적으로 양쪽 모두에서 불신을 산 구조가 되었다.
CFR(미 외교협회) 분석에 따르면, 중도개혁연합이 끝까지 설명하지 못한 것은 “왜 이 조합이어야만 하는가”라는 대의명분이었다. “반(反)자민·반(反)다카이치”라는 소극적 정체성만으로는 유권자를 동원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③압승 시나리오: ‘보통 국가화’와 헌법 9조개정
다카이치 정권이 내일 선거에서 압승하면 일본은 ‘전후(戰後) 체제의 종언’을 선언할 것으로 보인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미 자위대를 헌법에 명기하는 개헌안을 3월까지 국회에 제출하겠다는 로드맵을 확정했다. 중의원 3분의 2 의석을 확보하면 참의원의 거부권을 무력화하고 사실상 무제한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일본 육상자위대의 공수부대 제1공정단 소속 이시하라 요시타카(오른쪽) 사령관이 공중 낙하 훈련에 앞서 장비 점검을 받고 있다./ /일본 육상자위대 제1공정단 페이스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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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9조는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 행사를 영구히 포기”하고, “전력은 보유하지 않으며, 국가의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명시한다. 2차 세계대전의 결과물이다. 그러나 자민당과 유신회는 여기에 자위대 존재를 명기하는 ‘3항 추가’를 추진 중이다. 다카이치는 선거 유세에서 “왜 자위대를 헌법에 명기할 수 없는가. 그들의 자긍심을 지키고 유능한 조직으로 인정하기 위해 개헌을 허락해 달라”고 호소했다.
동시에 대규모 재해나 무력 공격 시 내각에 입법 권한을 집중시키는 ‘긴급 사태 조항’ 신설도 추진된다. 야당은 이를 독재로 가는 길이라 비판하지만, 안보 위기감을 느끼는 여론은 우호적이다.
안보 정책에서도 거침없는 행보가 예상된다. 방위비를 GDP 대비 2%로 증액하는 계획을 1년 앞당겨 올해 3월부터 실행하고, 장거리 미사일 도입 등 ‘반격 능력’을 공식화하는 시나리오가 유력하다. 이미 토마호크 미사일 400발 구매, 사거리 1000㎞ 12식 지대함 미사일 개량형 배치, 자위대 통합사령부(JJOC) 설치(2025년 3월) 등을 완료했다.
더 나아가 유신회는 미국의 핵무기를 일본에 배치하는 ‘핵 공유(Nuclear Sharing)’ 논의를 공론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비핵 3원칙’을 견지한다는 입장이지만, 중국과 북한의 위협을 명분으로 억지력 차원의 논의 자체는 허용할 가능성이 높다.
경제적으로는 ‘사나에노믹스’를 전면 가동한다. 21조엔(약 210조원) 규모 경제 대책, 식품 소비세 한시적 제로화, 잠정 가솔린세 폐지 등 가계 직접 혜택 정책을 쏟아낼 예정이다.
④‘액셀러레이터’ 유신회와 공명당의 빈자리
이번 선거의 핵심 구조적 변화는 자민당의 파트너가 ‘브레이크’ 역할을 하던 공명당에서 ‘액셀러레이터’인 유신회로 바뀐 점이다. 유신회는 자민당보다 더 급진적인 헌법 개정과 규제 철폐를 주장하며 이번 선거에서 45~60석을 확보, 제1 야당 지위까지 넘볼 기세다.
로이터 연합뉴스 다카이치 사나에(오른쪽) 일본 자민당 신임 총재가 지난 17일 도쿄 국회의사당에서 후지타 후미타케 일본유신회 공동대표와 회담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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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부터 26년간 지속된 자민-공명 연립에서 공명당은 창가학회 조직을 기반으로 자민당의 장기 집권을 지탱했다. 동시에 공명당의 평화주의 노선은 자민당 내 강경 우파의 폭주를 제어하는 ‘브레이크’ 역할을 수행했다. 공명당은 수십 년간 9조개정, 대중국 강경 외교, 무기 수출 확대에 제동을 걸었다.
그러나 다카이치 총리는 취임 직후 정치자금 규제 강화와 헌법 개정안 발의 요건을 두고 공명당과 정면 충돌했다. 특히 기업 헌금 제한을 요구하는 사이토 데쓰오 공명당 대표의 요구를 다카이치가 거부하면서 양당의 신뢰는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파탄 났다.
결과적으로 자민당은 오사카를 기반으로 하는 우파 포퓰리즘 정당인 유신회와 새로운 연정을 구성했다. 유신회는 자민당보다 더 급진적인 ‘국방군(国防軍)’ 명기를 주장하고 있어, 전후 가장 매파적인 연립 정부가 탄생하는 것이다.
선거 후 유신회는 국회의원 정수를 465석에서 420석으로 감축하는 등 강도 높은 정치 개혁안을 연립 정부의 주요 과제로 제시할 계획이다. 니케이 조사에서 56%, 요미우리 조사에서 78%가 이를 지지하고 있다. 이는 비례대표 비율이 줄면서 소수 정당에 불리하게 작용, 사실상 자민-유신 양당 체제를 공고화하는 효과를 낼 전망이다.
과거 자민 연립에서 나타났던 견제 메커니즘이 사라지고, 보수·강경 우파 성향의 동질적 연합이 형성되면서 일본 정치의 우경화 속도는 더욱 빨라질 수밖에 없다.
⑤한·일 관계 향후 전망
다카이치 시대의 한·일 관계는 철저한 실리 위주의 ‘투 트랙(Two-track)’ 전략으로 전개될 전망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이재명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안보와 경제 안보 공급망 분야에서 실용적 협력에 합의했다. 두 정상이 드럼을 함께 연주하는 파격적인 모습을 보인 것도 이러한 실리 외교의 일환이다.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오른쪽)가 지난 1월 13일 일본 나라현 회담에서 푸른색 아식스 유니폼을 함께 착용하고 즉석 드럼 협주를 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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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회담에서 두 정상은 위안부나 강제 징용 문제와 같은 과거사 갈등을 ‘관리 모드’로 전환하고, 경제 안보(공급망)와 북핵 대응에 집중하기로 합의했다.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 희생자 유해 발굴을 위한 DNA 감식 협력 등 인도적 차원의 조치는 진행하되, 독도 문제나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같은 폭발적 이슈는 의도적으로 의제에서 배제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 수정주의 성향이 강한 다카이치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하거나 보통 국가화 과정에서 독도 영유권 주장을 강화할 경우, 양국 관계는 언제든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는 뇌관을 안고 있다. 다카이치는 부부 별성제 반대, 남계 천황 유지 등 전통적 우익 가치를 고수하는 초강경 보수로 분류된다.
대중 관계는 더욱 험악하다. 다카이치는 지난해 11월 국회에서 “중국이 군함으로 대만을 침공하면 일본의 존립 위기 사태로 간주될 것”이라고 답변해 10년 이상 최대의 중·일 외교 위기를 촉발했다. 중국은 항공편 감축, 방일 여행 자제 권고, 희토류 수출 통제, 일본산 수산물 수입 금지 등으로 보복했다. 그러나 이러한 중국의 강압적 태도는 오히려 일본 내 반중 정서를 자극하여 다카이치의 지지율을 결집시키는 역설적 결과를 낳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사진.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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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R의 시라 스미스 선임연구원은 “2026년 선거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안보 정책이 쟁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했다. 전후 일본 정치에서 방위 정책은 항상 논쟁의 중심이었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여야 할 것 없이 방위력 강화에 대한 이의 제기가 거의 없다. 심지어 중도개혁연합조차 2015년 안보 법제의 합헌성을 인정하고 방위비 증액을 수용했다. 방위비 삭감을 주장하는 정당은 사실상 없어졌다. 아사히 신문 조사에 따르면 이번 선거 후보자 중 3분의 2가 방위력 강화를 찬성한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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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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