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 연방대법원에서 2022년 10월 7일 촬영된 미국 연방대법관 단체 사진. 앞줄 왼쪽부터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 클래런스 토머스 대법관, 존 G 로버츠 주니어 연방대법원장, 새뮤얼 A 얼리토 주니어 대법관, 엘레나 케이건 대법관. 뒷줄 왼쪽부터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 닐 M 고서치 대법관, 브렛 M 캐버노 대법관, 커탄지 브라운 잭슨 대법관. /로이터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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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방대법원이 20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 관세에 위법 판결을 내린 것은 단순한 행정 조치 취소를 넘어, 미국 건국 정신과 헌법적 가치인 3권 분립의 견제와 균형을 다시 한번 확립한 결정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대법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 안보를 이유로 꺼내 든 무제한적인 관세 부과 조치에 대해, 헌법이 의회에만 부여한 ‘과세권’을 행정부가 자의적으로 침해할 수 없음을 명확히 했다.
대법원은 판결문 서두부터 과세권의 본질과 무게를 짚으며 행정부의 권한 남용을 엄중히 꾸짖었다. 재판부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인 알렉산더 해밀턴의 말을 인용해 과세권을 “연방에 부여되도록 제안된 권한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이 권한은 ‘파괴할 수 있는 권력(power to destroy)’이자 ‘국가의 존재와 번영에 필요한 위대한 권력’”이라며, 이처럼 막강한 힘을 함부로 휘둘러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대표 없는 과세’에 반발해 독립혁명을 치른 건국의 아버지들이 ‘국민의 지갑에 접근할 권한’을 오직 의회에만 부여함으로써 행정부의 ‘비대해진 특권’을 제어하려 했다는 헌법적 배경도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 측은 1977년 제정된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명시된 ‘규제하다(regulate)’와 ‘수입(importation)’이라는 단어에 근거해, 어떤 국가의 어떤 제품이든 원하는 세율과 기간으로 관세를 부과할 독자적 권한이 있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대법원은 “그 두 단어는 그만한 무게를 감당할 수 없다”고 단호히 일축했다. 의회의 명시적이고 엄격한 위임 없이, 비상사태 관련 법률에 적힌 일상적인 단어 몇 개를 조합해 헌법이 의회에 독점적으로 부여한 과세권을 대통령이 행사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판결문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엿가락처럼 휘어지며 수시로 바뀌었던 관세 정책의 난맥상도 정면으로 비판했다. 대법원은 2025년 한 해 동안 중국, 캐나다, 멕시코 등을 상대로 관세율이 10%에서 단기간에 125~145%까지 폭등하고, 수많은 품목이 면제와 부과 대상을 오갔던 상황을 구체적으로 열거하며 “대통령은 다른 관세법에 존재하는 중대한 절차적 제한을 받지 않으며, 원하는 대로 현기증 날 정도의 수정 조치들을 수시로 내렸다”고 지적했다.
또한, 역대 그 어떤 미국 대통령도 비상경제권한법을 이용해 이토록 광범위한 관세를 부과한 적이 없다는 점을 들어 “이러한 ‘역사적 선례의 부재’는 대통령이 주장하는 권한이 정당한 범위를 넘어섰다는 유력한 징후”라고 판시했다. 이번 관세 정책으로 미국이 ‘부유한 나라’가 될지 ‘가난한 나라’가 될지가 결정된다며 관세의 성과를 자랑한 행정부의 주장에 대해서도, 대법원은 “국가 경제에 대한 광범위한 법정 권한을 주장하는 것은 어떤 기준으로 보아도 과도하다”며 쐐기를 박았다. 합리적인 해석자라면 의회가 국가의 명운을 가를 이런 ‘거대한 정책 결단’을 행정부에 입맛대로 쓰라고 떠넘겼을 리 없다는 것이다.
결국 대법원은 “대통령이 관세 부과라는 비상한 권한을 정당화하려면 ‘명확한 의회 승인’을 제시해야 하지만, 그는 그러지 못했다”며 트럼프 행정부의 폭주를 멈춰 세웠다.
판결문은 마지막으로 사법부의 권한과 그 한계를 명시한 ‘미국 헌법 제3조’를 언급하며 울림을 남겼다. 재판부는 “우리는 경제나 외교 문제에 대해 특별한 전문성을 주장하지 않는다. 우리는 오직 헌법 제3조가 우리에게 부여한 제한된 역할만을 주장한다”고 밝혔다.
여기서 언급된 ‘헌법 제3조’는 연방 대법원을 포함한 사법부의 권한을 규정하는 조항이다. 대법원이 굳이 이 조항을 스스로 인용한 것은, 이번 판결이 대통령과의 정치적 싸움이 아니라 ‘법이 무엇인지 선언하라’는 헌법적 소명을 이행한 것뿐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라는 해석이 나온다. 경제나 외교라는 ‘고도의 정치적 영역’일지라도, 그것이 헌법이 정한 삼권분립의 경계를 침해할 때에는 사법부라는 최후의 보루가 개입할 의무가 있다는 선언이다. 대법원은 “그 역할을 수행하며, 우리는 법률이 대통령에게 관세 부과 권한을 부여하지 않는다고 판시한다”는 문장으로 행정부의 독주에 마침표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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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박국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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