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보적이라고 여겼던 반도체마저 관련 전략 기술 5개 중 ‘첨단 패키징’만 우위를 지켰을 뿐 나머지 4개는 중국에 추월당하거나 격차가 사라졌다. 한국은 현재 세계 최고의 반도체 양산(量産) 기술과 수율 관리 능력이 있다. 지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고공 행진은 여기에 힘입은 것이다. 하지만 양산 기술이 숙련된 ‘공정의 영역’이라면 산업의 판을 짜고 표준을 설계하는 전략 기술은 산업 주도권을 쥐는 영역이다. 여기서 밀린다는 사실은 차세대 반도체 전쟁에서 중국에 밀릴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인간 뇌를 모방한 미래 반도체 칩의 핵심인 ‘고집적·저항기반 메모리’는 2년 전 평가에선 중국에 앞서 있었지만 이젠 중국과 격차가 사라졌다. AI의 방대한 연산을 처리하는 ‘고성능 AI 반도체’와 에너지 효율을 좌우하는 ‘전력 반도체’, 자율 주행의 눈에 해당되는 ‘차세대 센싱’에선 중국이 우리를 앞서 나간 것으로 평가됐다. AI 시대의 두뇌와 심장에서 동시에 밀리는 것이다. 이미 첨단 메모리 반도체에서는 중국 창신메모리(CXMT)가 LPDDR5 등으로 우리 안방을 위협하고 있다. 낸드플래시에선 중국 YMTC가 한국이 잘하는 ‘단수 쌓기’ 경쟁을 단숨에 뛰어넘는 ‘본딩(Bonding)’ 공법을 들고 나와 판을 뒤집으려 한다.
한국을 추월한 중국은 한국과의 기술 격차를 벌려나가는 단계다. 조사 기준 2년 전 한국과 중국의 50대 전략기술 수준 차이는 4.8%포인트였으나 이제는 8.6%포인트로 두 배 가까이 벌어졌다. 우리가 놀고 있었던 것도 아닌데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지금 수준의 우리 노력으로는 현상 유지도 어려울 것이란 현실을 보여준다.
반도체는 개별 기업의 차원을 넘어 나라의 사활이 걸린 문제다. 중국 화웨이 연구소나 명문 공대를 방문한 사람들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다고 한다. 규모도 방대하지만 핵심은 무섭도록 열심히 일한다는 것이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은 청와대 직원들이 살인적인 근무를 하고 있다며 불가피하다고 언급했다. 청와대만이 아니라 반도체 연구원들도 이렇게 일할 수 있어야 한다. 원하는 사람, 불가피한 사람은 일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반도체특별법 개정을 통해 R&D 인력에 대한 ‘주 52시간제 예외’를 도입해야 한다. 핵심 인재의 해외 유출을 막기 위한 파격적 보상 체계와 법적 보호 장치도 강화해야 한다. 반도체 공장 신설을 위해서라면 정치권이 앞장서 민원도 해결하고 지원도 해야 한다. 남은 시간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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