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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25 (수)

    [최영미의 공놀이, 세상놀이] [4] 허공에 육체로 쓰는 詩, 스노보드 ‘빅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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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게임이다. 이것은 게임이 아니다. 이것은 총성(銃聲) 없는 전쟁이다. 이것은 예술이다. 창공을 향해 날아오르는 스노보드의 아찔하게 아름다운 연기를 보아라. 이것은 스포츠다. 움직이는 인간 육체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게 올림픽 아닐까. 밀라노 코르티나 동계 올림픽 공식 영상은 과학적인 인체 비례를 시도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드로잉 ‘비트루비안 맨(Vitruvian Man)’으로 시작된다. 최고 수준의 스포츠는 예술에 도달한다. 최상의 균형 감각을 보여주는 선수들은 살아 있는 예술품이라 할 만하다.

    밀라노 올림픽 개회식은 멋진 말들이 쏟아진 ‘말의 잔치’였다. “전통이란 타고 남은 재를 숭배하는 게 아니라 불꽃을 보존하는 것이다”라고 세르지오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이 말하자마자 박수가 터져 연설이 잠시 중단되었다. 커스티 코벤트리 IOC 위원장으로부터 “여러분은 우리 중 최고의 인간”이라는 찬사를 들을 때, 개막식에 참가한 선수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나라를 대표해 올림픽에 나온 선수들은 우리 중 최고의 육체를 가진 인간이다. 최고의 육체에 최상의 정신이 깃든다면 얼마나 멋질까.

    ‘두쫀쿠(두바이 쫀득 쿠키)’를 먹으려고 영하의 날씨에도 길게 줄을 선 10대들만 있는 줄 알았는데, 목숨을 걸고 하늘을 나는 10대들도 있었다. 밀라노 올림픽 경기를 보며 나는 스노보드에 매료되었다. 설상 종목은 실내 링크가 아니라 야외에서 경기를 치른다. 드넓은 하늘 아래 하얗게 펼쳐진 눈, 대자연의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스키나 스노보드 경기를 보노라면 눈이 다 시원해진다.

    가장 시(詩)적인 경기는 ‘빅에어(big air)’다. 단 한 번의 도약, 짧은 순간에 모든 것을 거는 찰나의 승부. 날아올랐나 싶으면 어느새 착지해 눈 위를 미끄러진다. 국내 최대 스노보드 대회인 ‘달마 오픈’을 호산 스님이 창설하고 후원해 왔다니. 이거 실화인가. 구형(舊型) 보드를 타고 동메달을 딴 유승은 선수의 보드 세리머니가 멋져 보고 또 보았다. 유승은 선수가 느끼는 ‘빅에어’의 매력은 내려왔을 때 관객의 환호일까, 허공에 떠 있는 느낌을 즐기는 걸까?

    수천억원의 돈을 내고 JTBC가 중계권을 따왔다는데, 스노보드 경기 중계에서 현장감을 느낄 수 없었다. 현지에 중계 인원을 파견하지 않고 영상을 받아 스튜디오에서 중계한 건가. ‘다채롭게’라는 슬로건이 무색하게 한국 선수들이 출전한 경기만 줄곧 틀어주고 아이스하키 경기는 거의 볼 수 없었던, 짜증 나는 올림픽 중계였다.

    [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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