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 올림픽 개회식은 멋진 말들이 쏟아진 ‘말의 잔치’였다. “전통이란 타고 남은 재를 숭배하는 게 아니라 불꽃을 보존하는 것이다”라고 세르지오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이 말하자마자 박수가 터져 연설이 잠시 중단되었다. 커스티 코벤트리 IOC 위원장으로부터 “여러분은 우리 중 최고의 인간”이라는 찬사를 들을 때, 개막식에 참가한 선수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나라를 대표해 올림픽에 나온 선수들은 우리 중 최고의 육체를 가진 인간이다. 최고의 육체에 최상의 정신이 깃든다면 얼마나 멋질까.
‘두쫀쿠(두바이 쫀득 쿠키)’를 먹으려고 영하의 날씨에도 길게 줄을 선 10대들만 있는 줄 알았는데, 목숨을 걸고 하늘을 나는 10대들도 있었다. 밀라노 올림픽 경기를 보며 나는 스노보드에 매료되었다. 설상 종목은 실내 링크가 아니라 야외에서 경기를 치른다. 드넓은 하늘 아래 하얗게 펼쳐진 눈, 대자연의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스키나 스노보드 경기를 보노라면 눈이 다 시원해진다.
가장 시(詩)적인 경기는 ‘빅에어(big air)’다. 단 한 번의 도약, 짧은 순간에 모든 것을 거는 찰나의 승부. 날아올랐나 싶으면 어느새 착지해 눈 위를 미끄러진다. 국내 최대 스노보드 대회인 ‘달마 오픈’을 호산 스님이 창설하고 후원해 왔다니. 이거 실화인가. 구형(舊型) 보드를 타고 동메달을 딴 유승은 선수의 보드 세리머니가 멋져 보고 또 보았다. 유승은 선수가 느끼는 ‘빅에어’의 매력은 내려왔을 때 관객의 환호일까, 허공에 떠 있는 느낌을 즐기는 걸까?
수천억원의 돈을 내고 JTBC가 중계권을 따왔다는데, 스노보드 경기 중계에서 현장감을 느낄 수 없었다. 현지에 중계 인원을 파견하지 않고 영상을 받아 스튜디오에서 중계한 건가. ‘다채롭게’라는 슬로건이 무색하게 한국 선수들이 출전한 경기만 줄곧 틀어주고 아이스하키 경기는 거의 볼 수 없었던, 짜증 나는 올림픽 중계였다.
[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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