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우편투표·코로나19 등 놓고 입씨름
트럼프 끼어들기에 진행자 수차례 막느라 진땀
바이든도 “입좀 다물라” 공세적 태도
미 언론 “최악의 토론” “패자는 유권자”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민주당의 바이든 전 부통령이 29일(현지시각) 미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열린 첫 대선 후보 텔레비전 토론에 참석해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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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전체 분위기를 흐릴 정도로 끼어들기를 일삼았고, 바이든은 예상보다 실수를 범하지 않으며 트럼프를 공격했다.’
29일(현지시각) 밤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민주당의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의 첫 대선 후보 텔레비전 토론은 간단히 말해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대선(11월3일)을 35일 앞두고 마주 선 두 사람은 코로나19, 경제, 인종차별, 대법원, 의료보험, 기후변화, 우편투표 등의 주제를 놓고 90분 간 치열한 입씨름을 벌였다. 하지만 “지금껏 지켜본 대선 후보 토론 중 최악이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혼란스러움이 정책 내용을 압도한 토론이었다. 진행자인 <폭스 뉴스>의 앵커 크리스 월리스는 바이든의 발언 와중에 수시로 끼어드는 트럼프를 제지하느라 애를 먹었고, 토론은 수시로 주제를 벗어났다. 트럼프가 ‘졸린 조’라고 불러온 바이든은 이날 트럼프를 “거짓말쟁이”라고 하는 등 공세적인 태도로 임했다. 토론은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의 케이스웨스턴리저브 대학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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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주의 비판 안 한 트럼프
트럼프는 ‘백인우월주의자들과 민병대를 비난하고 그들에게 자제해달라고 말하겠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그들을 뭐라고 불러야 하냐”며 즉답을 주저했다. 바이든이 대표적 우파 그룹인 ‘프라우드 보이스’를 언급하자 트럼프는 “프라우드 보이스, 물러나서 대기하세요!”라고 하더니 곧장 “그러나 누군가는 안티파와 좌파에 대해 뭔가 해야 한다. 왜냐면 이건 우익이 아니라 좌익의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급진 좌파가 폭력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트럼프의 발언 뒤 ‘프라우드 보이스’ 회원들은 온라인에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더러 가서 그들을 부수라고 했다. 아주 기쁘다”, “대통령님, 우리는 준비돼 있습니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인종차별 반대 시위대에 총기 등으로 대항하는 백인우월주의자들을 트럼프가 오히려 옹호해준 셈이 된 것이다. 바이든은 “트럼프는 인종차별주의자”라고 정면으로 공격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시카고, 포틀랜드 등에서 벌어지는 인종차별 반대 시위 과정에서의 폭력 양상을 언급하면서 “법과 질서”를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현지시간) 미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열린 조 바이든 미 민주당 후보와의 대선 토론에 참석해 지지자들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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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투표에 트럼프 “대법원 갈 수” vs. 바이든 “투표하라”
트럼프가 “사기로 이어질 수 있다”며 비난해온 대선 우편투표도 뜨거운 쟁점이 됐다. 트럼프는 우편투표로 인해 대선 개표가 길어질 경우, 그 사이 승리 선언을 하지 않고 평정을 유지하겠느냐는 질문에 즉답을 하지 않은 채 “내 지지자들에게 투표장에 가서 매우 주의깊게 지켜보라고 촉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 주에서는 원하지 않더라도 우편투표를 할 기회를 주는 보편적 우편투표에 부정이 생길 수 있다는 주장을 되풀이 하면서, 대법원이 그 투표용지를 살펴보는 경우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전에 볼 수 없던 사기가 될 것”이라며 “우리는 몇달 동안 (대선 결과를) 모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반면, 바이든은 “그것(대통령 당선자)이 나든 아니든 그 결과를 지지하겠다”고 대답했다. 바이든은 우편투표 논란과 관련해 선거의 온전함을 보장할 수 있는 방안에 관한 질문에, 유권자들을 향해서 “투표장에 가서 투표하라”고 말했다. 바이든은 “우편투표가 사기라는 증거는 없다”며 “그(트럼프)는 당신이 이 선거의 결과를 결정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그는 그저 개표하는 게 두려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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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아들 놓고 충돌
가족 문제는 토론의 주제가 아니었지만, 다른 사안을 논의하는 와중에 바이든의 아들 문제가 나왔다. 바이든은 트럼프가 1차 세계대전 미군 전사자를 “호구”라고 비하했다는 언론 보도를 활용해 트럼프를 공격했다. 바이든은 뇌암으로 숨진 장남 보 바이든이 이라크에서 2년간 복무했다면서 “그는 패배자가 아니었다. 애국자였다. 거기 남겨진 사람들은 영웅”이라고 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나는 보를 모른다. 헌터는 안다”며 바이든의 차남 헌터 바이든 의혹으로 화제를 돌리려 했다. 트럼프는 그동안 헌터가 바이든 부통령 시절에 우크라이나와 중국에 취업해 거액의 돈을 받았다며 “헌터는 어디 있냐”고 공격해왔다. 트럼프는 이날 바이든이 중국과의 무역 적자 심화 문제로 자신을 공격하자, 대뜸 헌터가 중국에서 거액을 받았다며 주제와 무관하게 공세를 폈다. 바이든은 평정심을 유지하려는 듯 눈을 감기도 하면서 “사실이 아니다. 내 아들은 잘못한 게 전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내 아들은 마약 문제를 겪었다”며 그가 문제를 극복해 자랑스럽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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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지나간 트럼프 ‘88만원 소득세’ 이날 토론을 이틀 앞두고 <뉴욕 타임스>가 보도한 트럼프의 세금 문제도 다뤄졌다. 하지만 최대 쟁점이 될 것이라는 일부의 예측과 달리, 이 문제는 집중적인 논쟁 대상이 되지 못 했다. 바이든은 “수백만 달러를 냈다”고 주장하는 트럼프를 더 물고 늘어지는 데 실패했다. 바이든은 경제 정책 순서에서 “억만장자들은 트럼프를 좋아한다”며 트럼프가 소득세를 750달러(약 88만원) 냈다고 언급했다. <뉴욕 타임스>는 지난 27일, 트럼프가 지난 15년 가운데 10년은 소득세를 내지 않았으며, 대통령에 당선된 2016년과 2017년에 각각 소득세를 750달러만 냈다고 보도했다. 바이든은 이날 토론을 앞두고 납세 자료를 공개한 터였다. 바이든 부부는 2019년에 약 98만5000달러(약 11억5천만원)의 소득에 대해 연방세금과 기타 지불금으로 34만6000달러(약 4억447만원) 이상을 납부했다. 진행자인 월리스가 ‘2016년과 2017년에 소득세를 얼마 냈느냐’고 묻자 트럼프는 “수백만 달러”라고 답했다. 바이든이 “납세 자료를 공개하라”고 하자 트럼프는 “(국세청 감사가) 끝나는대로 보게 될 것”이라고 기존 답변을 되풀이했다. 바이든은 “트럼프가 학교 교사보다도 세금을 적게 낸다”며 트럼프가 세금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고 주장한 뒤 “그래서 내가 트럼프 세금(제도)을 없애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트럼프는 “당신이 47년 동안 한 일보다 내가 47개월 동안 한 일이 많다”며 딴소리로 화제를 돌렸다. 그 뒤 트럼프 세금 문제는 더 거론되지 않았다. 바이든으로서는 큰 공격 포인트를 하나 놓친 셈이다.
두 사람은 코로나19 대응과 경제 실적, 기후변화 대응, 의료보험 등을 놓고도 논쟁을 벌였다. 트럼프는 바이든이 의료를 사회주의화하려 한다고 하는 등 바이든에게 ‘사회주의’ 인상을 씌우려 시도했다.
조 바이든 미 민주당 대선 후보가 29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첫번째 대선후보 텔레비젼 토론회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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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앵커도 진땀 뺀 트럼프의 ‘끼어들기’
이날 토론을 지배한 것은 정책 내용보다도 트럼프의 끊임 없는 끼어들기였다. 트럼프와 바이든, 때로는 진행자 월리스까지 2~3명의 말이 동시에 부딪치는 순간들이 잦았다. 트럼프는 작심한 듯 토론 시작부터 바이든이 발언하는 중간에 옆에서 “바이든은 코로나19로 중국에 미국 입국 차단 조처를 내리는 데 반대했다”는 등 자신의 주장을 폈다. 각자에게 2분씩 발언 시간을 주고, 상대방이 발언할 때는 끼어들지 않기로 사전에 합의해놓고 이를 지키지 않은 것이다. 트럼프의 이런 행태가 반복되자 경륜의 진행자 월리스가 트럼프를 향해 “바이든이 발언을 끝내도록 해달라”며 수차례 제지했다. 트럼프는 월리스가 질문하는 것마저 무시하고 자신의 말을 계속 하려 했고, 월리스는 “대통령님, 나는 이 토론의 진행자이고, 나는 당신이 내 질문을 할 수 있도록 해주길 바란다”고 말하기도 했다. 월리스는 또 사전에 양 캠프가 약속한 것을 지켜달라고 호소했다. 트럼프가 “바이든한테도 그렇게 하라”고 하자 월리스는 “당신이 더 많이 끼어들었다”고 답하기도 했다. 바이든 또한 트럼프가 자꾸 끼어들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 좀 다물겠냐”(Will you shut up, man?)라고 말했다. 바이든은 “계속 떠들어라”는 말도 했다.
인신공격도 난무했다. 바이든이 코로나19 대응과 관련해 “그(트럼프)가 더 똑똑하고 더 빨라지지 않는다면 더 많은 사람이 죽을 것”이라고 말하자 트럼프는 “똑똑하다는 단어를 썼느냐”며 “당신은 반에서 꼴찌거나 최하위권으로 졸업했다. 나에게 다시는 그 단어를 쓰지 말아라. 당신에게 똑똑한 것은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당신은 델라웨어주립대에 다녔다고 했는데, 자신의 대학 이름도 까먹었다. 당신은 거기에 안 다녔다”고 말했다. 바이든은 최근 유세에서 과거 상원의원 출마를 델라웨어주립대에서 선언한 것을 일컬어 “나는 델라웨어주립대에서 시작했다”고 말했는데, 이를 두고 일부 보수 언론은 ‘델라웨어대를 나온 바이든이 델라웨어주립대를 다녔다고 주장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바이든 또한 정면 공격을 피하지 않았다. 그는 일방적 주장을 펴는 트럼프를 “거짓말쟁이”, “광대”라고 면전에서 일컬었다. 또 트럼프를 “이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트럼프가 말해온 ‘슬리피 조(졸린 조)’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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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 없는 토론…최대 피해자는 유권자”
이날 토론을 놓고 <시엔엔>(CNN) 앵커 제이크 태퍼는 “내가 본 대선 토론 중 최악이었다. 이건 토론이 아니라 망신이다”라고 평했다. <뉴욕 타임스>의 한 기자는 “최대 패배자는 유권자”라고 촌평했다. 이 매체의 기자 네이트 콘은 실시간 중계에서 “오늘 밤 승자는 없다. 그러나 승자가 없다는 것은 조 바이든이 승자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트럼프가 그동안 바이든의 정신건강을 문제 삼으며 바이든의 토론 실력이 형편 없을 것처럼 말해왔는데, 이날 트럼프가 토론에서 승리하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바이든이 선방했다는 뜻이라고 본 것이다. 반면, 보수 성향의 <폭스 뉴스>는 이날 토론 직후 바이든이 대법관 구성의 보수 우위 구도를 깨기 위해 대법관 인원을 늘릴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 확답을 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하고, 바이든이 몇 차례 말을 더듬는 장면을 내보냈다. 이 매체는 트럼프를 ‘껑충 뛰는 야생마’라고 표현했다.
<시엔엔>과 여론조사 기관인 에스에스아르에스(SSRS)가 공동으로 이날 토론회를 시청한 56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바이든이 잘 했다는 응답이 60%로, 트럼프가 잘 했다는 평가(28%)보다 높게 나왔다.
이날 토론은 코로나19 때문에 두 사람이 무대에 올라서 악수나 팔꿈치 인사조차 하지 않은 채 곧바로 시작됐다. 방청석에는 사전에 코로나19 검사를 받은 수십명이 거리를 둔 채 앉았다.
대선 후보 토론은 10월15일과 22일 두 차례 더 열린다. 10월7일에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이 부통령 후보 토론에 나선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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