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이 난방비 대란을 겪고 있는 31일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서 한 입주민이 보일러 연통을 바라보고 있다. 성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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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오전, 서울 은평구의 한 다세대주택에 사는 김종언씨(57)가 내내 보일러 앞을 서성였다. 바깥 기온이 영하 7도 가까이 떨어졌으나 보일러 전원은 켜지 않았다. 그는 전날 가스요금 고지서를 받고 한참 눈을 떼지 못했다고 했다. 고지서에 찍힌 요금은 6만6130원. 지난해 같은 달의 세 배가 넘는 액수다.

“깜빡 잊고 하루 이틀 안 끄고 나가서 그런가….” 잠시 바닥에 앉았던 김씨가 한기를 이기지 못하고 전기장판 위로 몸을 움직이며 중얼거렸다.

일하던 플라스틱 공장이 부도난 후 노숙 생활을 한 김씨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매입임대주택을 지원받아 2007년부터 이곳에 산다. 지자체 공공일자리를 구해 청소를 하며 생계를 꾸렸는데 지난해 초·중순 계약이 만료됐다. 두 달 전 실업급여 기한도 끝났다. 김씨는 정부의 에너지바우처 지원 대상에서도 빗겨나 있다. 그는 “일을 구할 때까지는 가스비를 연체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지난 28일 오전 서울 은평구 다세대주택에 사는 김종언씨(57)가 보일러 전원기 앞에 서 있다. 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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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방비 대란’의 충격파를 가장 크게 받은 이들은 취약계층이다. 김씨처럼 소득이 적은 이들은 총 지출에서 난방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확연히 커졌다. 정부의 에너지바우처 지원 대상은 국민기초생활 수급 가구 중 일부로 제한돼 있다. 정부는 31일 에너지바우처 지급 대상을 확대하겠다고 했다.

여형범 충남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에는 에너지 취약계층이 어떻게 난방을 사용하고 있는지, 에너지 지원 사업으로 인해 각 가구에서 비용이 얼마나 줄었는지, 이들이 난방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는지 등 에너지 빈곤 현황에 대한 대한 실태조사가 전혀 없다”면서 “이런 상태에서 에너지 정책을 짜다 보니 지원 대상도 한정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했다.

지어진 지 30년이 넘은 노후아파트 주민도 에너지 복지 사각지대에 있다. 1970년대 지어진 성북구 종암동의 한 아파트에서 만난 주민 최모씨(57)는 “난방비가 오르기도 올랐지만 원래도 단열이 잘 안 돼서 늘 춥다”며 “따뜻하게 지내지도 못하는데 난방비만 많이 나오고 있다”고 했다. 20평 조금 안 되는 인근 노후빌라에 아내와 함께 산다는 전승만씨(75) “가스 요금이 두 배 올라 15만원이나 나왔다”면서 “나이 든 사람들은 난방을 마냥 안 할 수도 없어서 걱정”이라고 했다.

지난 28일 오전 서울 은평구 다세대주택에 사는 김종언씨(57)가 1월 가스요금 고지서를 보여주고 있다. 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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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중앙난방’ 방식으로 관리되는 쪽방·고시원 주민들은 다가올 임대료 인상이 걱정이다. 서울 용산구 동자동의 2평(6.6㎡) 쪽방에 사는 임종순씨(80)는 “2년 전 이곳에 처음 왔을 때는 훈훈하다 싶을 정도로 난방을 잘 틀어줬다”면서 “요즘에는 잘해봐야 미적지근한 정도”라고 했다. 그는 한파에 속수무책인 쪽방에서 내복과 패딩을 겹겹이 껴입은 채 지낸다.

임씨는 현재 20만원인 임대료 인상에 대비해 지난해 11월부터 주 6일 전단지 돌리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는 “(가스요금이) 계속 오르고 있으니 조만간 임대료를 올리거나 난방을 줄이겠다는 통보가 올 것 같다”고 했다.

주거급여를 받는다고 해도 임대료 인상은 큰 부담이다. 구모씨(53)는 매달 월세 30만원을 내고 용산구의 한 고시원에 산다. 최대 32만원까지 지원되는 주거급여를 받지만 임대료가 그 이상으로 오르면 고스란히 구씨가 부담해야 한다. 구씨는 “난방비 오름세가 계속되면 결국 월세도 오를 것”이라며 “3월부터는 일자리를 구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난방비 폭탄, 임대로 인상이 다가 아니다. 전기세·교통비 등 공공요금과 각종 물가 줄인상이 이들을 기다린다. 용산구 고시원 주민 김인균씨(53)는 “지출을 줄이기 위해 과일이나 달걀은 적게 사고 하루 한 번씩 무료급식소에 가서 밥을 먹으려 한다”고 했다. 전씨는 “가스요금이 더 오른다고 하고 지하철 요금, 버스 요금까지 오른다고 들었다”면서 “집에서 샤워하는 횟수를 줄여서 온수라도 덜 쓰는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했다.

강은 기자 eeun@kyunghyang.com, 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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