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브런슨 사령관, 취임 첫 간담회
브런슨 사령관은 지난해 12월 취임 후 처음 가진 이날 간담회에서 “전략적 유연성은 병력과 장비를 필요한 때에 필요한 곳에 배치할 수 있는 능력”이라며 “내 일은 동북아와 인도·태평양 전체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인데, (주한 미군의) 역량을 묶어둔다면 군사적으로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미군 병력·장비를 한반도에만 고정적으로 배치하는 것은 효율적이지 않다는 뜻이다.
다만 브런슨 사령관은 “미국 측이 ‘미군이 대만으로 가면 한국도 가야 한다’고 할 것이 뻔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사실 그렇지 않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한국에 요청하는 것은 한국이 대북 억제력을 강화해서 동맹이 현대화됨에 따라 우리가 다른 일을 하러 갈 수도 있는 유연성을 갖추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대만 유사시 한국의 지원보다는 대북 억제력 강화를 기대한다는 취지로 볼 수 있다.
중국의 서해 구조물 설치와 군사 활동 증가에 대해 브런슨 사령관은 “오싹할 만큼 남중국해에서 목격했던 일들을 연상시킨다”고 했다. 서해의 상황이 중국이 90% 이상의 영유권을 주장하며 필리핀·베트남 등과 자주 충돌하는 남중국해와 비슷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의 주권이 다른 국가의 행동에 의해 도전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분명히 인식해야 하고, 우리는 이를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전작권 전환, 지름길 택하면 한반도 대비 태세 위태로울 수 있다”
경기 평택시의 주한 미군 기지 캠프 험프리스에서 기자들을 만난 브런슨 사령관은 “북쪽 경계선 너머에 핵무장한 적(북한)이 있고, 북한과 밀착한 러시아의 개입이 늘고 있으며, 중국이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에 야기하는 위협이 있다”고 역내 안보 환경 변화를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미 동맹은 어떤 문서에서도 적을 명시하지 않고 있다. 우리가 북한을 주시하는 것은 보트에 가장 가까이 있는 악어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태평양 지역에 있어서의 무력 공격’에 대한 공동 대처를 규정했을 뿐, 북한을 특정하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중·러의 위협도 조약상의 ‘공통한 위험’이란 뜻이다.
그는 “역내의 여러 적을 볼 때 경제적 측면도 인식해야 한다”며 “도쿄와 서울과 마닐라를 연결하는 삼각형을 그린다면 세계 무역의 52%는 그 지역을 통과한다”고 했다. 또 “만약 이 지역에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각국은 그에 맞게 대응해야 한다는 요구를 받게 될 것”이라며 “때로 사람들은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어떤 일이 고립적으로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매우 위험한 생각”이라고 했다. 동중국해·남중국해·한반도에서 일어나는 일은 서로 영향을 줄 수밖에 없으며, 한반도 밖에서 일어나는 일이 한국과 무관하다는 생각은 위험하다는 뜻이다.
이런 환경을 설명하며 브런슨 사령관은 “사령관으로서 주한 미군 내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환경을 탐지하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다영역 임무군(Multi-Domain Task Force)의 배치를 고려한다”고 했다. 다영역 임무군은 미 육군이 중·러의 위협에 대응해 개발한 개념으로, 육해공과 우주·사이버·정보까지 여러 영역에서 작전할 수 있는 기술·무기·병력을 갖춘 부대를 뜻한다. 그는 “우리는 전구(theater)를 지상, 상공, 우주에서 전체적으로 바라보려고 한다”며 “사실 (남북) 군사분계선도 우주에서 보고 있고 그래서 더 자세히 볼 수 있다”고 했다. 최근 미군 다영역 임무군이 호주에서 최신예 극초음속 미사일(LRHW) ‘다크 이글’을 전개했는데, 한반도에도 이런 무기 체계가 전개될 수 있다는 취지다.
브런슨 사령관은 또 “5세대 전투기의 한반도 배치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올봄 주한 미군 패트리엇 포대가 이스라엘로 이동된 후 억지력 유지를 위해 5세대 전투기 F-35를 순환 배치했다며 “전략적 유연성은 패트리엇 재배치와 크게 다르지 않은 맥락”이라고 했다. 또 “예를 들어, 5세대 전투기 한 대는 4세대 전투기 몇 대와 같다든가 하는 계수가 있다”며 “그러니 숫자가 아니라 역량이 제일 중요한 것 아니냐”고 했다. 다만 “정상회담에서 무엇이 논의될지는 모른다”는 단서를 붙여,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 미군 병력 감축에 방점을 둘 가능성은 남아 있다.
이날 그는 “설령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같은 것이라도, 상황을 더 안전하게 만든다면 변화를 향해 움직이는 일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전작권 전환을 빠르게 앞당기기 위해 지름길을 택한다면 한반도 전력의 준비 태세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새 계획이 협상되지 않는 한 기존 계획을 따라야 한다”며 한미가 2014년 합의한 전작권 전환의 조건을 준수해야 한다고 했다. 또 “(재협상 시에도) 군사적으로 한반도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고 보장하기 위한 조건들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고 했다.
한미는 18~28일 열리는 정례 연합 훈련 ‘을지 자유의 방패’ 기간 예정된 야외 실기동 훈련의 절반쯤을 9월로 연기했다. 이에 대해 브런슨 사령관은 “기록적으로 더운 7월이었고 남부 지방 홍수로 지원 나간 병력도 있었다”며 “한국인들이 군을 필요로 한다면 훈련을 조금 변경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중국군이 훈련을 할 때마다 그것은 (실전을 위한) 리허설이란 점을 안다.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훈련”이라며 “무슨 일이 일어나든 대비돼 있도록 공동 작전을 연습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한국과 미국의 비대칭적 우위는 한미 동맹”이라며 “이는 북한·중국·러시아가 가진 모든 것(비대칭 무기)을 상쇄한다. 한미 동맹은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것”이라고 했다.
☞제이비어 T 브런슨
지난해 12월 주한미군사령관으로 취임해 한미연합사령관, 유엔사령관, 주한 미군 선임장교를 겸직 중이다. 아버지가 베트남전 참전 용사인 군인 집안 장남으로 남동생 2명도 미 육군 장교다. 예비역 육군 대령인 아내와 1남 2녀를 두고 있으며, 딸이 교환학생으로 서울대에서 한국어를 배운 적 있다. 취임 후 ‘동해’ ‘서해’ 등 한국식 지명을 사용하고 있다.
[평택=양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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