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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이슈 동아시아 영토·영해 분쟁

"남중국해 줄게, 백신 다오" 中에 굴복한 필리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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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테르테, 의회 연설에서 공식화

조선일보

/조선일보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중국 정부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을 인정하겠다는 뜻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미국은 지난 13일 남중국해 거의 대부분이 자국 영해라는 중국 주장에 대해 불법적이라고 규정했다. 그런 상황에서 그간 미국 편에 서서 중국의 주장에 맞서왔던 필리핀이 자신들의 영유권 주장을 돌연 포기한 것이다. 미국의 강력한 우방으로 인식됐던 필리핀의 태도 변화로 동남아시아에서 미·중의 힘의 균형추가 기우는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온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27일 의회 연설에서 "중국도 (남중국해 영유권을) 주장하고, 우리도 (서필리핀해의) 영유권을 주장한다"며 "그들(중국)은 무기가 있고 우리는 무기가 없다. 그들(중국)은 남중국해에 부동산(property)을 소유하고 있다"고 했다.

중국은 1994년 필리핀으로부터 남중국해의 스프래틀리군도(중국명 난사군도) 일부를, 2012년엔 스카버러 암초(중국명 황옌다오)를 빼앗았다. 필리핀은 국제상설중재재판소에 제소했다. 중국 측 주장이 법적 근거가 없다는 판결이 나왔지만 중국은 요지부동이었다. 이후 중국은 섬들에 활주로와 미사일 기지 등을 설치해 요새로 만들었고, 현재까지 필리핀뿐 아니라 남중국해에 인접한 각국과 영유권 다툼을 벌이고 있다.

두테르테는 "(중국으로부터 섬을 돌려받기 위해선) 전쟁을 해야 하는데, 나는 그것을 감당할(afford) 수 없다"며 "나는 이 상황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전했다. 사실상 남중국해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접겠다는 것이다. 이번 연설을 두고 미 인터넷 매체 바이스는 "너무 중국에 굴종적"이라고 했다.

두테르테는 대신 이날 연설에서 "나흘 전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통화하며 (중국이 백신을 개발하면) 우리가 먼저 맞을 수 있게 해달라고, 아니면 우리가 먼저 구입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간청했다"고 말했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필리핀에선 8만명 넘는 코로나 환자가 나왔고, 이 중 2000명 가까이 사망했다. 격화하는 코로나 사태를 수습하고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남중국해 영유권을 포기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2016년부터 재임한 두테르테 대통령은 그동안에도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 왔다. 하지만 이번 연설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난 두테르테의 친중(親中) 행보는 남중국해를 둘러싼 미·중 갈등 국면에서 중국에 희소식이다. 미국은 필리핀과 1951년에 상호방위조약을 맺고 오랜 동맹 관계를 유지해 왔으며, 지금도 수비크만 해군기지, 클라크 공군기지에 배치된 200여명의 미군이 있다. 숫자는 많지 않지만 남중국해와 관련한 작전에 투입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전략적 중요성이 작지 않았다.

두테르테 발언에 대해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필리핀 국민의 기대와 평화 발전의 흐름에 부합한다"며 "우선적으로 필리핀 측의 (코로나 백신 공급) 요구를 고려할 것"이라고 했다.

[이현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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